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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2' 살인의 1인자 꿈꾼 정남규, "천 명 죽일 수 있었는데…살인 후 성취감" 육성 최초 공개

'꼬꼬무2' 살인의 1인자 꿈꾼 정남규, "천 명 죽일 수 있었는데…살인 후 성취감" 육성 최초 공개

SBS 뉴스

작성 2021.04.16 08:09 수정 2021.04.16 09: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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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연쇄살인마 정남규는 누구일까?

15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에서는 '악마를 보았다 : 정남규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부제로 연쇄살인마 정남규를 조명했다.

이날 방송에는 꼬꼬무 우등생인 배우 이이경, 그리고 개그맨 김용명, 가수 조정치가 이야기 친구로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2004년 5월 9일 새벽 1시를 넘긴 시각, 한 여대생은 지하철 2호선 막차를 타고 신대방역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함께 지하철에 타고 있던 그의 남자 친구가 전화를 걸어 무사히 귀가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이때 휴대폰 너머로 여대생의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오빠 나 칼 맞았어. 보라매 공원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이를 한 남성이 발견했고, 여대생은 모르는 사람이 칼로 찔렀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곧바로 병원으로 여대생을 이송했지만 결국 사망. 인적이 드문 장소에 목격자도 없고 밤새 내린 비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런데 이 사건이 벌어지기 2주 전 약 7km 떨어진 구로구의 고척동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해 피해자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건 모두 새벽 시간 여성을 상대로 한 범행이었으며, 목격자도 범인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경찰은 연쇄 살인의 가능성을 두고 인근 지역을 수사했고 구로동과 신길동 등에서 5건의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의 2 사건과 달리 다행히도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았으나 연쇄 사건이라 볼 수 있는 유사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이를 서남부 부녀자 연쇄 피습 사건이라 불렀고, 이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었다.

서울 전역이 공포에 휩싸이며 특히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에 여고에서는 야간 자율학습이 중단됐고 호신용품 판매가 급증했으며 홈쇼핑을 통해 경호원들을 활용한 경호 상품까지 판매했다. 또한 이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2만 8천여 명이라는 숫자의 경찰들이 투입되었다.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생존자들은 범인을 점퍼와 운동화 차림의 신장은 170m가량의 3, 40대 남성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범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서남부 지역에는 CCTV가 전무했고, 범행 도구나 지문, 족적 등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도 전혀 찾을 수 없어 수사는 난항을 빠졌다. 특히 금전, 원한, 치정, 복수 등 범행 동기도 특정할 수 없어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범인은 피해자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몸을 돌려 몸 정면을 칼로 찔렀다. 이에 생존자들은 "술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고, 시선만 불안할 뿐 하는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수사에 당시 경찰은 프로파일링 수사를 이 사건에 적용하기로 했다. 2000년 처음 국내에 도입된 프로파일링. 당시 서울 지방 경찰청의 프로파일러팀에는 단 1명 만의 팀원이 존재했다. 5년간 혼자 근무를 해온 그는 바로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

당시 경사의 신분이었던 권일용 경사는 수사 기록을 통해 범인이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유형이라 판단했다. 이에 권 경사는 "직접 살인자가 되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매일 퇴근하고 서남부 지역으로 출근해 범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추적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범인의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범인은 피해자를 미행한 것이 아니라 골목에 숨어서 피해자가 나타나길 기다렸고,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피해자를 돌려세워서 공격했다. 이에 피해자들의 상처는 모두 몸 앞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권일용 경사는 이러한 범인의 행동이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에서 드러난 범인의 시그니처는 바로 엄청난 공격성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엄청난 공격석을 가졌음에도 소심한 구석도 있었다. 작은 소리에도 잽싸게 도주했고, 헤드라이트 불빛만 비춰도 움츠렸다. 그리고 범행 타깃을 약한 상대로만 고른 것도 소심함이 보이는 것.

서남부 부녀자 연쇄 피습 사건의 범인의 시그니처는 바로 소심한 공격성이었다. 그리고 권일용 경사는 범인의 범행 수법은 바뀌어도 시그니처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무렵, 경찰은 생존자들에게 최면 요법을 통해 범인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렇게 뚜렷한 범인의 몽타주가 완성됐다.

이어 얼마 후 영등포역에서 수상한 용의자가 체포됐다. 170미터 정도의 키에 보통 체격을 가진 30대 남자. 그는 바로 10개월 동안 20명을 살해한 유영철이었다. 그리고 그는 서남부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 주장했고 이후 1년의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그런데 어느 날 프로파일링 팀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군포 경찰서의 형사 계장이 자신의 관내에 연쇄 살인이 일어난 것 같다며 프로파일링을 요청해 온 것. 40대 여성 우유 배달원이 새벽에 배달을 하는 도중 살해당했다. 그리고 1년 전에도 20대 싱글맘인 우유 배달원이 칼에 찔려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약 1킬로 떨어진 지역에서 범행을 당했고, 두 사람 모두 몸 안 쪽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남부 사건과 닮은꼴 사건에 권 경사는 집중했고, 사건 기록을 살피다 크게 놀랐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의 2층에서 범인이 도망간 것을 정면으로 바라본 목격자가 있었는데 그가 그린 몽타주 속 인물이 서남부 연쇄 사건의 몽타주가 소름 끼치게 닮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미제사건을 뒤지자 살인미수 사건이 3건이나 더 있었다. 그러나 서남부 사건과는 달리 가정집을 침입해 쇠몽둥이를 둘러 상대를 공격했고, 피해자 중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있었으며 범죄 후 방화를 저지르는 일도 있었던 것. 이에 경찰은 이 사건들이 같은 범인의 소행이라 쉽게 추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파일러의 생각은 달랐다.

프로파일러는 이는 모두 동일범의 소행이며 범행 수법이 진화한 것으로 판단한 것. 그리고 이와 비슷한 수법의 사건을 찾아보니 서울에서만 6건이 발생했고 그중 4건이 서남부 지역에 밀집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문이 잠겨있지 않은 집을 노렸고, 피해자가 자고 있을 때 공격을 했다. 또한 집안에 남은 족적을 따라가니 모든 사건의 족적이 작은 방에서 멈춰있어 눈길을 끌었다. 거실과 안방 다른 큰 방은 두고 작은 방만 공격했던 범인. 이는 약한 상대를 노리기 위함이었고 서남부 사건 범인의 시그니처와 동일한 소심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이후 2006년 4월 신길동, 한 남성은 작은방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갔고, 그곳에서 아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범인을 함께 제압해 경찰에 신고했다. 키도 작고 왜소한 체격에 현장에서 훔친 것은 현금 2만 4천 원 문화상품권 1만 원 짜리 하나였던 범인. 이에 경찰은 이를 단순한 강도로 보고 강도 현행범으로 그를 체포했다.

그러나 범인은 경찰차에 타려던 순간 경찰을 밀치고 도주했고, 이에 근처 잠복중인 형사들까지 모두 출동해 2시간 반 만에 주택 옷상에 숨어있던 범인을 체포했다.

경찰서로 향하는 길, 범인은 차창에 머리를 처박으면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자 "에이씨 끝났네. 천 명 죽일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의 소리를 해 이를 보던 형사들을 경악하게 했다.

또한 당시 현장에서 수거한 범행 도구 중 파이프렌치에 주목했다. 길이 40센티에 무게는 2.18킬로로 단순 강도가 소지하기에는 다소 크고 무거운 범행도구. 이에 형사들은 이 범인의 목적이 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시 형사는 "파이프렌치의 나사를 돌리면 끝 부분이 움직인다. 그것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나사 톱니바퀴 사이에 무슨 이물질이 꽉 껴있는 것을 봤다. 이것을 가만 보니 피더라. 피가 응고돼서 완전히 딱딱하게 굳은 혈흔이었다"라며 "이것은 오늘 사건 피해자의 혈흔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용한 범행도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에 붙잡혀 온 범인은 자신의 범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특수강도, 성폭행, 절도 등 전과 5범의 흉악범인 남성의 입을 열기 위해 등장한 이는 바로 권일용 경사였다.

그는 범인을 향해 "도와주려고 왔어요. 교도소에서 많이 힘들었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범인은 고개를 스윽 들며 눈을 맞추고 "어떻게 알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많이 맞았거든요"라며 입을 열었다.

권일용 경사의 이어진 질문은 "불은 왜 질렀어요?" 앞뒤 설명 없이 던진 질문에 그는 "내가 한 게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이에 권일용 경사는 그가 방화 사실을 알고 있음에 주목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들이 연결되었음을 직감했다.

강력반 형사들이 나서 취조를 시작했고, 범인은 사형 제도에 대해 묻더니 세 자매 살인 사건부터 밤새 4건의 살인사건에 대해 진술했다. 이에 형사는 그가 자신들이 그토록 찾던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2004년부터 2년간 서울을 공포에 떨게 한 연쇄살인범은 바로 정남규. 그는 첫 자백 이후 담담하게 자신의 범행을 진술해나갔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그가 범행을 자백한 육성을 최초로 공개했다.

담담하게 자신의 범행을 이야기하는 정남규. 그는 왜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을 죽였냐고 묻자 "죽이겠다고 나갔으니까 그랬다. 죽이려고 그랬는데 나를 막 발로 차고 반항이 심하니까 목도 조르고 그랬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피해자의 인상착의를 묻자 "사건이 많아서 그거까지 기억을 못 한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마치 살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영웅담이나 무용담 이야기하듯 하고 있었던 것. 이에 당시 수사관은 범행을 이야기할수록 즐기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특히 범행을 떠올릴 때 추억이나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는 것.

그는 사망자 13명, 중상자 20명의 총 24건의 사건에 대해 자백했고, 진술 내내 단 한 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는 바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었다. 그의 이런 태도는 현장 검증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자신의 행동을 당당하게 증언하고 재현했으며 분노하는 유가족에 발길질을 하며 같이 덤볐다.

그리고 그는 피해자에 미안하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미소까지 지어 충격을 안겼다. 이에 프로파일러는 "나 같이 사는 사람을 왜 비난하지? 너희는 나보다 나아? 이런 비난이다"라며 "그렇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게 좋은 게 아니라 너희가 그래 봤자 나와 다를 바 없잖아. 왜곡된 자기의 사고를 동일시하는 비난일 뿐이다"라고 분석했다.

어려서부터 혼자였던 정남규는 학교에 가기 싫을 때면 산속 동굴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모와의 대화도 단절되어 있었고 어려서부터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마치 섬 같은 존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막바지 강력팀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힌 정남규는 "유영철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내가 한 걸 자기가 했다 하지 않냐"라며 2년 전 이문동 살인 사건이 유영철의 범행이 아닌 자신의 범행이라 주장했다. 이미 유영철이 현장 검증까지 마친 사건의 진범이 자신이라는 것. 이에 정남규도 현장 검증을 진행했고 이후 그 사건의 진짜 범인은 정남규인 것으로 밝혀졌다.

스스로 자신의 범행을 추가로 밝힌 정남규. 이에 당시 형사는 "'유영철 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의 범행 수법이 유영철의 범행 수법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유영철보다 더 완벽하게 죽이고 싶어 했고 살인에서는 일인자가 되고 싶어 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살인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 갖은 노력했던 그의 흔적은 집안 곳곳에서 드러났다. 집안에서 발견된 총 9켤레의 운동화는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밑창을 모두 제거한 상태였다. 또한 그는 도주 시 잡히지 않기 위해 주 1회 이상 10km 달리기 훈련을 했다. 이에 그는 10km를 37분 만에 주파하는 것이 가능했고, 이는 아마추어 선수급의 실력이었다.

그리고 정남규는 보다 많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심신 건강에 누구보다 신경 썼다. 삶의 목표가 바로 살인이었던 것.

정남규는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불을 지르면 활활 타는 스릴이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 막 흥분되고 그랬다. 어떤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 충동이 생기고 참을 수 없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또 그는 범행을 통해 자신의 나쁜 감정이 사라진다며 "이 마음 안에서 성취감 같은 게 다가온다. 몸으로 쫙 느껴진다"라고 했다. 그리고 범행 후 현장에 당시를 회상하기 위해 방문한 적도 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또한 정남규는 살인을 하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만족감이 느껴지고 우울함이 사라졌다며 살인 자체로 쾌락을 느낀 '전형적인 쾌락적 살인마'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 없냐는 질문에는 "미안한 생각이 있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왜 했겠냐"라고 되물을 뿐이었다.

이후 사형 선고를 받은 정남규는 스스로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내 빠른 사형 집행을 촉구했다. 그는 탄원서를 통해 "모든 게 끝난 이상 사형을 빨리 집행해줬으면 한다. 왜 사형을 안 시키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난 죽어서도 사람을 죽일 것이다"라며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고, 살인을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니 빨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한 진짜 악마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중단되어 그의 청은 들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정남규는 사형 확정 2년 7개월 후인 2009년 11월 구치소 독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일 수 없으니, 스스로를 살인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인자 정남규는 떠났지만 33명의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은 그대로 남겨졌고 이들은 어디에서도 사죄를 받지 못했고 책임을 물을 수도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괴로움을 겪었다. 살인자의 자살로 원망할 대상 조차 없어진 상황에 피해자들은 주변인들이 무심코 찍어둔 낙인과 은연중에 생긴 거리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했기에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날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 친구 김용명은 이러한 일이 피해자만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나의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을 전했다.

또한 성악설을 믿는다는 조정치는 "그럼에도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돌연변이가 아닐까 싶다"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에 장항준은 "정남규가 사회적 교류를 나눴다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며 "적어도 이 정도의 범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리고 장성규는 "나의 부족함을 알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을 보아 왔기 때문에 성악설을 믿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교육을 통해 후천적으로 인간이 선해질 수 있다는 걸 믿고 싶다"라고 더 이상 이러한 악마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또 이이경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단 하루라도 아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면 뉴스를 안 하냐. 사건 사고가 없으면 뉴스가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버지는 그럴 일은 없다고 하시더라"라며 "그렇지만 '9시 뉴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습니다'라는 멘트를 하는 날이 하루 만이라도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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