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대단지 아파트 조경석에 1군 발암물질 석면 함유…"입주민 · 아이들 석면 노출 위험"

[취재파일] 대단지 아파트 조경석에 1군 발암물질 석면 함유…"입주민 · 아이들 석면 노출 위험"

침묵의 살인자 '석면'…1군 발암물질로 전면 사용 금지

석면은 규산염 광물이지만, 섬유처럼 부드럽고 불에 타지 않으며 산성에 강한 물리적 특성 때문에 오래전부터 건축 원자재, 브레이크 라이닝, 코킹재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폐암과 악성중피종암 등을 일으키는 1군 발암물질로 지정되면서 1980년대 북유럽 국가를 시작으로 서유럽 전역으로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아시아에서는 2006년 일본, 2009년엔 우리나라에서도 석면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석면의 종류는 6종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붕 재료인 슬레이트와 천장재인 텍스 등에 사용되던 '백석면'이 가장 많고 그 외 5종은 바늘 모양의 각섬석 계열입니다. 바늘 모양과 특징 때문에 발암성이 더 강한 각섬석이 먼저 사용 금지되었고, 2009년부터는 모든 석면 제품의 사용과 제조, 수입 등이 전면 금지됐습니다. 석면 문제는 석면 원료를 넣어서 만든 석면 제품과 자연 상태의 석면 광물이 지표면에 드러나거나 석면이 섞인 지역의 땅을 이용하면서 발생하는 자연 석면의 문제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자연 석면이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현장에 있는 석면 조경석

석면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석면 사용이 금지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석면 노출 후 10~40년간의 긴 잠복기를 거친 후 발병하기 때문에 지금도 석면 관련 질환자는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석면에 의해서만 발병하는 폐암의 일종인 '악성중피종', 석면폐암, 석면에 의한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 미만성흉막비후 등 4개 질환이 현재까지 석면 인정질환으로 분류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는 후두암, 난소암도 석면에 의해 발병하는 암으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2021년 2월 현재 환경성 석면 피해 인정자는 5천 명에 육박합니다. 이 가운데 35%인 1,745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치명적입니다.

환경단체, "인천 송도 대단지 아파트 조경석에 '석면' 함유" 기자회견

그런데 1군 발암물질 석면이 섞인 조경석이 인천의 송도 아파트 대단지에서 나왔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인천환경운동연합이 함께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실을 고발한 겁니다. 해당 아파트는 2013년 10월 준공된 브랜드 아파트로 1군 건설사가 지은 곳입니다. 단지 규모만 수천 세대로 소나무 등 각종 수목과 암석 등이 어우러져 2014년 인천시로부터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 조사결과 이 아파트 단지에 가져다 놓은 161개 조경석 가운데 10개에서 '자연 석면'이 검출됐습니다. 언뜻 보기엔 화산석 같기도 하고 나무와 잘 어울려 조경석으로 가치가 있어 보이지만, 석면이 섞인 돌을 가져다 놓은 겁니다.

더 큰 문제는 161개 조경석 가운데 나머지 131개에서 석면 함유가 의심된다는 점입니다. 이 돌들도 정밀 분석을 하면 석면이 섞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시민단체는 의심이 가는 조경석 가운데 10개만 시료를 채취해 전문분석기관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놀랍게도 의뢰한 10개 조경석 모두에서 '트레모라이트' 석면이 검출됐습니다. 조경석에 자연적으로 섞인 겁니다. 조사 시기는 올해 2~3월로 두 차례 현장조사를 통한 육안관찰과 현미경 분석 방식으로 석면 검출이 이뤄졌습니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트레모라이트 석면의 특징은 양쪽 끝이 바늘처럼 뾰족하다는 겁니다. 또 아주 잘게 부서져서 초미세먼지처럼 나노 입자가 되어 바람 등에 의해 쉽게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습니다.
트레모라이트 전자현미경 사진

입주민, "석면함유 사실 몰랐다" 황당…아이들 뛰노는데 '석면 노출' 위험

문제는 단지 주민이 산책을 하다, 아이들이 조경석 주변에서 놀다가 석면 마이크로 입자를 마실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석면 입자가 호흡기로 들어가면 폐에 박혀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오랜 기간 폐에 쌓여 염증을 일으키고 장기간 지속되면 각종 폐 관련 질환을 유발하게 됩니다. 기자가 만난 이 아파트 주민은 "공원 같은 아파트에서 매일 걷고 운동하는데, 발암물질인 석면이 섞인 조경석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석면이 섞였다는 걸 알았으면 진작 조치를 취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조경석에 석면이 섞였는지는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경석 표면에 '방사형 무늬'가 선명하게 나타난 것도 발견됐습니다. 가느다란 바늘이 마치 수백 개 원형으로 퍼져있는 형태입니다. 트레모라이트 석면의 특유한 무늬입니다.

석면 조경석 주변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

그렇다면 어떻게 석면이 섞인 조경석이 이 아파트 단지로 들어왔을까? 석면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환경부는 2012년 4월 29일 석면안전관리법을 시행해 관리정책을 수립했습니다. 문제가 된 석면 함유 조경석의 관리 기준을 마련한 건데 '표면에 석면이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기타 가공 변형된 상태의 경우 석면함유량을 0.1% 미만으로 설정해 사실상 석면 제품을 금지했습니다. 석면 함유 조경석이 설치된 송도 아파트 단지는 2013년 10월 준공됐습니다. 이 법이 시행된 후 1년 여가 지났지만, 석면 함유 조경석이 불법적인 경로로 가공, 유통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떻게 이 조경석이 송도 아파트 단지에 설치됐는지는 당시 시공을 담당한 건설사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환경단체 "석면함유 조경석 다른 지역에서 유입 가능성…실태 조사해야"


이 문제를 제기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다른 지역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단체 소장은 충북 제천의 채석장에서 들어왔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지난해 말 최 소장이 충북 제천의 옛 폐광 근처 채석장 주변을 현장조사한 결과, 여전히 석면이 섞인 조경석이 불법으로 가공, 유통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겁니다. 충북 제천은 석면 광맥이 있는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공급받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최 소장은 "해당 아파트 조경석 위에 아이들이 올라가 뛰놀고, 잔디밭에 들어가 흙 놀이를 하는 걸 목격했다."며 주민과 아이들의 석면 피해를 막기 위해 정부와 인천시에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그전에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같은 송도지역 아파트의 조경석에도 문제가 없는지 실태 조사가 시급해 보입니다.

석면 유발 악성중피종 피해자 "미래세대 위해 석면 불법 유통 막아야"


14일 석면 조경석 관련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에는 악성중피종 피해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 피해자는 시골마을의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집에 살았고, 석면이 함유된 천장재가 있는 학교에 다녀 어릴 때부터 석면에 노출됐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디에서 집중적으로 노출이 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치료제도 없이 평생 살아가야 한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특히 조경을 위해 설치한 돌덩어리에서 석면이 섞여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자신과 같은 석면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고 전했습니다.

'돌에 석면이 조금 섞인 건데 뭐가 문제야?' 이런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함승헌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조경석 특성상 외부에 설치가 되어 바람이나 외부 충격에 의해 비산 될 가능성이 높고 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이미 설치된 조경석을 급하게 제거하면 바람에 날릴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먼저 석면함유 조경석 위치를 정확히 표시해 주변에 알리고, 전문가들이 안전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