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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지구 최강 지적 코미디의 뿌리 '태어난 게 범죄'

[북적북적] 지구 최강 지적 코미디의 뿌리 '태어난 게 범죄'

[골룸] 북적북적 286 : 지구 최강 지적 코미디의 뿌리 '태어난 게 범죄'

"사람들은 엄마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이스링크며 자동차극장이며 교외로의 드라이브, 이런 것들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흑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의 논리를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왜 흑인 아이에게 백인의 것을 가르친단 말인가? 이웃들과 친척들은 성가실 정도로 엄마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왜 빈민가를 떠날 수도 없는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 주려고 해?"
그럼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말이죠, 설령 이 아이가 빈민가를 떠나지 못한다고 해도 빈민가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책이라는 물건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호사인가. 책장을 넘기며 문득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그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범죄인 흑백 혼혈로 태어나 30대 후반이 된 2021년 현재 미국의 톱스타가 된 사람이 쓴 회고록이라니. 보통의 한국사람에게 이보다 '나랑 상관없는 일'인 인생역정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남의 일'이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통찰을 바로 이 책이라는 매개 덕분에 우리 집 소파에 드러누워서 몇 시간 만에 고스란히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이토록 '남의 일'이 우리 모두와 공명하는 감동으로 나의 마음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는 책, [태어난 게 범죄]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새삼 했던 생각입니다.
트레버 노아는 '더 데일리 쇼'라는 정치풍자 토크쇼의 진행자로 지금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자 MC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BTS 팬들에게는 지난 3월 그래미 시상식의 진행을 맡았던 인물로 낯이 익을 겁니다. 1984년생으로, 이제 30대 후반인데 코난 오브라이언이나 스티븐 콜베어 같은 쟁쟁한 선배들에게 벌써 견줘지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이룬 것보다 가능성이 더 큰 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아는 정도였던 터라, 이른 성공을 거둔 그가 당연히 미국인이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트레버 노아는 우리가 흔히 평범하거나 유복하다고 간주할 만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범죄인 아이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태어난 게 범죄]라는, 원제를 그대로 옮긴 책 제목대로입니다. Born a Crime. 출생이 곧 범죄였다는 겁니다.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유색인 혼혈'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이 온갖 종류의 흑백분리정책을 시행하던 시절, 백인과 비백인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는 것 자체가 남아공에서는 처벌해야 할 범죄, 세상에 숨겨야 하는 비밀이었습니다.

"1984년 2월 2일, 엄마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 위해 힐브로우 병원에 입원했다. 가족과 떨어져, 함께 나다닐 수 없는 남자의 아이를 가진 그녀는 혼자였다. 의사들이 엄마를 분만실로 데려가 복부를 절개하고 수많은 법과 규정과 규제를 위반한 반은 백인이고 반은 흑인인 아이를 꺼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였다.

나를 보고는 한동안 난감해하던 의사들이 입을 열었다. "흠, 애 피부가 되게 하얗군." 분만실 안에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 아빠는 누굽니까?" 그들이 물었다.
"아빠는 스와질란드 사람이에요." 엄마는 남아공 동쪽 내륙의 작은 왕국을 둘러댔다.
아마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겠지만 해명거리가 필요한 그 의사들은 그냥 받아들였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정부는 아이의 출생증명서에 인종, 부족, 국적, 모든 것을 기재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분류되어야 했다. 엄마는 내가 남아공에 사는 스와질란드 사람들의 반자치 거주 지역인 카응과네에서 태어났다고 거짓말했다. 그래서 내 출생증명서에는 내가 코사족이라고 적혀 있지 않다. 또 스위스인이라고도 적혀 있지 않다. 정부가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외국 태생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 나는 엄마와도 같이 걸을 수 없었다. 피부색이 밝은 아이가 흑인 여자와 함께 다니면 여러 의문들이 제기된다. 신생아였을 때는 나를 싸들고 어디든 갈 수 있었으나 그 방법은 얼마 가지 않아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꽤나 몸집이 큰 우량아였던 것이다. 한 살이었을 때는 두 살처럼 보였다. 두 살이 되자 네 살처럼 보였다. 나를 숨기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엄마는, 거주지와 하녀 복장을 찾았을 때처럼,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냈다. 흑인과 백인이 만나 혼혈아를 낳는 건 불법이었지만, 부모 양측이 모두 유색인인 경우에는 당연히 유색인(흑인 또는 백인으로 분류할 수 없는 광범위한 혼혈)을 낳는 게 불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유색인 가정의 아이로 둔갑시켰다. 출근해 있는 동안에는 유색인 거주지의 보육원에 나를 맡겼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퀸이라는 이름의 유색인 여성이 있었다. 공원에 가고 싶을 때 엄마는 퀸을 불러냈다. 퀸은 내 곁에서 걸으면서 엄마 행세를 해줬고, 엄마는 몇 발짝 뒤에서 유색인 여성을 위해 일하는 하녀인 체 했다. 나와 닮았지만 엄마는 아닌 이 여성과 내가 함께 걷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지금도 여러 장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 뒤에서 사진을 일부러 망치려는 듯 찍힌 흑인 여자가 내 엄마다."


[태어난 게 범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코미디언 중 한 명이 썼습니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일, 울거나 분노하는 정도로는 해소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지뢰 터지듯 빵빵 터지는 회고록이지만,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울다 웃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든 천재들은 자신들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말 그대로, 따로 떨어뜨려 미워하게 만든 것이다. 사람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눈 다음 서로 미워하게 만들면, 그들 모두를 아주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남아공에서는 중국인도 흑인으로 분류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흑인인 체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중국인이다. 하지만 인도인과는 달리, 온전히 구분되어 분류시키기에는 남아공에 사는 중국인들의 숫자가 충분치 않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아무리 복잡하고 정밀해도 이건 어쩔 수 없으니 정부는 그냥 이렇게 하기로 했다. "어, 그냥 쟤들도 흑인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게 더 간단하니까."
재미있는 사실은, 똑 같은 시기에 일본인의 경우 백인으로 간주됐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남아공 정부가 일본의 차와 전자제품 수입을 위해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흑인 취급을 당할 때 일본인에게는 영광스러운 백인의 지위가 주어졌다. 피부색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지만 중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남아공 경찰관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 만약 그가 백인 전용 벤치에 앉은 아시아인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할까?
"어이, 거기 중국인!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해?"
"어, 나는 일본인인데요."
"아, 이런 미안합니다, 선생님. 인종을 차별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좋은 오후 되십쇼."


차별과 부조리에 대한 번득이는 통찰에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를 곁들인 에피소드들이 가득합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히틀러! 히틀러!"를 연호하며 진행되는 인기 댄스파티 에피소드입니다. 도대체 히틀러를 연호하는 댄스파티가 어떻게 가능하며 뭘 하자는 것인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자기 인생의 비극적인 상황들을 소재로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트레버 노아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선악과 승패로 단순히 나눌 수 없는 세상의 다면적인 표정들에 대한 관찰을 곁들입니다. "비백인을 차별했겠지…" 정도로 막연히 다가오는 '아파르트헤이트(백인 우월주의 정책)'가 얼마나 복잡하고 세세하게 고안된 억압의 시스템이었는지를 그의 성장기를 통해 샅샅이 보여줌으로써, 소수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행각들이 그런 '땜질식 억압'으로나 가능한 억지였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어째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진 뒤에 남아공은 더 큰 혼란을 피하지 못했는지, '과거의 수렁'이라는 게 어떻게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상 속에서 선입견과 편견의 굴레에 갇힌 문제들을 어떻게 구별해 내야 하는지. 그저 웃고 있을 뿐인데 마음 깊이 스며들도록 설득합니다.
이 책을 읽고 트레버 노아에게 관심이 생겨 그의 코미디를 좀더 찾아보았습니다.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는 지하철에서 휴대폰 동영상으로 보기에는 민망한 스타일이 대부분입니다. 고수위의 욕이나 성적 농담이 당연한 듯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트레버 노아는 그 흔한 욕이나 음담패설을 동원하지 않고도 평범한 소재로 굉장히 웃기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분명히 한참 웃었는데 뒤끝도 개운한 유머, 위선이나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상큼하게 꼬집는 개그를 구사합니다. 일방적인 어느 한 쪽이나 약자, 조롱하는 게 유행인 대상들을 조롱하는 편리한 길을 택하지 않고, 일견 평범해 보이는 한 가지 현상의 여러가지 면을 두루 짚는 방식의 코미디입니다. 모든 코미디언들은 기본적으로 천재라고 저는 언제나 생각해 왔지만, 트레버 노아의 이 품위를 잃지 않는 유머감각은 그야말로 특출한 면이 있습니다. 이 회고록은 그의 이 상큼하고 지적인 코미디의 뿌리가 무엇인지 드러내 줍니다. 유달리 부조리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을 헤쳐 나가면서 기른 관찰력이 그의 유머에 깊이를 부여했습니다. 인종을 분리해 차별하는 것이 통치 방식의 핵심이었던 환경에서 인종이 혼합된 사람으로 자라났다는 '고립'이 그에게 현상에 함몰되지 않고 그 이면들을 두루 뒤집어볼 수 있는 시선을 키워줬습니다. 유별난 불행의 무게에 질식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을 때, 그의 역경은 오히려 그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이름을 골라야 할 때가 오자 엄마는 남아공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선조 중에도 없는 이름인 트레버를 선택했다. 성서에서 딴 이름도 아니었다. 단지 그냥 이름이었다. 엄마는 자기 자식이 운명에 얽매이지 않길 원했다. 엄마는 내가 어디든 자유롭게 가고,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이든 자유롭게 되길 원했다."

미국에선 2016년에 출간된 이 회고록은 요즘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영화의 가제는 [패트리시아의 아들]입니다. 패트리시아는 트레버 노아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태어난 게 범죄]는 트레버 노아 본인의 자서전이자 그의 '어머니 찬가'이기도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으로 살아남기를 포기하지 않은 여성을 엄마로 두는 천운을 누린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삶의 자세가 자신을 어떻게 일으켜 세웠는지에 대한 고백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꿈을 좇으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꿈꿀 수 있다. 그리고 상상력은 자신의 출신에 따라 제한을 받게 된다. 소웨토에서 자랄 때 우리의 꿈은 집에 방 한 칸을 더 늘리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진입로도. 또 언젠가는 진입로 끝에 철제 대문을 세울 수 있길 바랐다. 그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성의 최상층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를 넘어선다. 엄마는 그 가능성을 내게 보여주었다. 내가 엄마의 삶에서 항상 놀라워했던 점은, 누구도 그녀에게 그 가능성을 보여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다. 엄마 홀로 해냈다. 엄마는 순전히 의지의 힘만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아마 이보다도 더 놀라운 점은, 엄마가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날 거라는 사실을 분명 알지 못했을 시점에 자신의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즉 나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날 거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 흑인 거주구에서 힘든 삶을 이어 가거나 나를 유색인 고아원으로 보내 버리는 게 훨씬 더 '그럴 만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법이 허용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기 전에 이미 저만치 앞질러, 밝은 오렌지색의 개똥같은 폭스바겐의 창문을 활짝 열고 지미 스와가트가 목청껏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으로 나는 오늘의 성공을 일궜다는 식의 어머니 자랑은 때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떻게 봐도 칭찬받는 게 당연한 그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는 자식이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불행했고 얼마나 인내했는지를 강조할 때 같습니다. 본인으로서는 사무치는 이야기일 것이고 실제로 그 희생이 참 대단하긴 합니다만, 마치 어머니는 그토록 희생하고 그토록 불행하고 그토록 자기 자신은 한 줌도 남지 않아야 어머니로서의 무언가를 완수하는 것인 양 하는 태도는 어딘가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사실 트레버 노아의 어머니도 엄청나게 헌신적입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언제나 베풀고 베풀고 또 베풀었다고 성공한 아들이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 책에는 거부감이 들기는 커녕 그 아들의 시선을 통해 패트리시아 노아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게 되는 건, 트레버 노아가 들려주는 어머니의 이야기에선 여전히 패트리시아라는 한 인간의 불굴의 영혼이 우뚝 서 있는 게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이토록 고생하신 어머니!'는 사실 자식의 자아도취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삶에 대한 태도와 정신이 나를 이렇게 일으켜 세웠다'는 객관적인 존경입니다. 둘 사이에는 마치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 같은 엄청난 간극이 놓여 있습니다. 비슷한 것 같아도, 전혀 다릅니다.

"학교나 직장이나 교회에 가지 않을 때면 우리는 탐험에 나섰다. 엄마의 태도는 이런 식이었다. "내가 너를 선택했지, 얘야. 널 이 세상에 불러냈으니 너에게 내가 갖지 못했던 걸 다 주마." 그렇게 자신의 모든 걸 내게 바쳤다. 엄마는 우리가 돈을 쓰지 않고도 갈 만한 장소를 물색하곤 했다. 아마 요하네스버그의 공원이란 공원은 다 가 봤을 것이다. 엄마는 나무 아래 앉아 성경을 읽었고, 나는 뛰고 놀고 놀고 놀았다. 교회를 마친 일요일 오후에는 시골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엄마는 경치 좋은 소풍 장소를 찾았다. 소풍 가방이나 멋진 음식 같은 건 없었지만 흑빵에 소시지를 넣고 마가린을 바른 샌드위치를 고기 포장지에 싸갔다. 지금도 흑빵과 소시지와 마가린은 나를 잡아끈다. 그 어떤 미슐랭 레스토랑 부럽지 않게, 나는 흑빵과 소시지와 마가린만 있으면 천국을 느낄 수 있다."
패트리시아 노아는 헌신하지, 희생하지 않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질 가망조차 꿈꿔볼 기회가 없는 상황 속에서 자라나면서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마음이 생긴 모양대로 개척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녀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단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했던 모든 몸부림 중에 아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과 훈육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장성한 아들이 알아보고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 백만장자 스타가 되는 꿈같은 일은 그녀가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말라'고 가르친 아들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습니다. 그녀가 날개를 달아준 아들이 감행한 것 같은 탈출이 그녀에게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이 모든 것에 마음으로 지지 않고 내 영혼으로 버티고 서서 나아가는 것, 미국으로 건너가 백만장자 스타가 되는 데 성공하지 않더라도 내 삶을 내 뜻대로 내 발이 닿는 데까지 밀어붙이겠다는 마음의 의지라는 깨달음을 날개를 단 아들 트레버 노아가 다시 날아와 남아공에 남은 어머니의 발 아래 소중히 내려놓습니다.

"나는 브랜드 의류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한번은 엄마에게 아디다스 스니커즈를 사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모조 브랜드 '아비다스'를 사 가지고 왔다.
"엄마, 이거 가짜예요."
"난 차이를 모르겠구나."
"로고를 봐요. 줄이 세 개가 아니라 네 개잖아요."
"잘됐네. 하나는 공짜인가 보다."


이 책에는 찬란할 정도로 웃기고 감동적인 대목들이 많이 있지만, 압권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패트리시아 노아의 말 한 마디입니다. 패트리시아 노아는 트레버의 계부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찰은 가정폭력 신고 같은 건 제대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결국 그 남편과 완전히 헤어지는 데 성공한 뒤에 패트리시아는 –우려했던 대로- 전 남편이 찾아와 쏜 총에 머리를 관통 당합니다. (그런데도 그 전 남편은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패트리시아가 기적적으로 죽지 않았고, 남자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거짓말을 판사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어쨌든 기적처럼 살아남은 패트리시아가 울고 있는 아들 트레버에게 던지는 한 마디가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그 한 마디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한 마디로 이 모자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이들이 뿜어내는 놀라운 에너지를 당신의 삶에도 가득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출판사 '부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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