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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마시는 공기는 다릅니다"

[취재파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마시는 공기는 다릅니다"

- SDF2020 전치형 교수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강연 다시보기

미래팀

작성 2021.04.09 09: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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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마시는 공기는 다릅니다"
전치형 교수(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는 지난해 SBS 대표 포럼 'SDF2020'에서 <처음 겪는 공기, 다시 찾은 과학: 공기 위기를 살아 내기>를 주제로 강의를 선보였습니다.

전치형 교수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기술학'을 전공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같은 유사-인간 테크놀로지의 등장이 인간 정체성과 인간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습니다. 근래에는 KAIST 인류세연구센터에 참여하면서 '공기 풍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자연-테크놀로지가 서로 얽혀서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구 어디에나 있는 공기이지만 어디 사는 누구인지에 따라 각자 다른 공기를 마시고 살게 되는 데에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전치형 교수가 지난해 'SDF2020'의 청중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간추린 내용입니다.

* 강연 영상 다시보기를 원하는 분들은 SDF2020 홈페이지유튜브 링크를 이용해 주세요.



"폭염, 미세먼지, 코로나19, 최근 몇 년간 우리가 함께 겪은,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기입니다. 폭염과 미세먼지와 코로나19는 모두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재난들입니다. 폭염, 미세먼지,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뜨거운 공기, 더러운 공기, 위험한 공기는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적어도 3중의 공기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기는 생물학적 인간의 기본 조건이고, 모든 사회관계의 자연적 토대입니다. 공기를 마심으로써 개인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공기를 함께 마심으로써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습니다. 가장 당연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이 공기에 문제가 생길 때, 우리의 건강과 일상과 공동체는 위기에 처합니다."


"폭염과 미세먼지와 코로나19의 위기를 통해서 사회적 관계는 곧 공기 관계와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공기를 어떻게 나누어 마시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의 모든 사회적 활동과 관계의 중심에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과학 지식, 새로운 테크놀로지, 새로운 규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합니다.

폭염과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재난에서 작동하는 공기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 자연과 사회의 경계를 쉽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기를 인간 몸 바깥의 것으로 여기고, 또 공기를 사회가 아닌 자연에 속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폭염과 미세먼지와 코로나19는 공기 문제가 곧 사회 문제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누가 어떤 공기를 마시는지, 누구와 공기를 같이 마실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입니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십니다."


"각자 폭염과 미세먼지를 견디는 방법을 보면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자신만의 공기 공간을 확보해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과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인과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공기를 나누어 마셔야 하는 사람의 차이가 금방 드러났습니다. 공기 위기는 모두에게 평등한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공기를 국가 사이의 경계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운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폭염과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위기에서도 공기는 경계를 넘어 다니면서 여러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공기 위기는 각 국가 내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고 있기도 합니다."


"폭염이 발생하는 국가는 많지만, 폭염이 각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상이합니다. 미세먼지 문제를 겪는 국가도 여럿이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다릅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나 봉쇄나 격리 정책을 통해 시민들 사이의 공기 관계에 개입하는 방식도 국가마다 다릅니다. 한 사회는 공기 위기를 진단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그 사회의 이념과 가치를 표출합니다.

이러한 공기 위기의 특성은 과학 기술을 통해 이 위기에 대응하려는 시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과학과 기술은 공기 위기를 진단하고 사람들 사이에 공기 관계를 조정하는 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공기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학 기술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야 할까요. 공기 위기를 살아내면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고, 강조해야 할 과학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저는 폭염과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가 공공의 과학, 돌봄의 과학, 또 연대의 과학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공공의 과학은 과학 지식이 공동체를 위기로부터 지켜내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현재의 위기를 우리 공동의 의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적 자원으로서 과학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광범위하고 전면적인 공기 위기 속에서 과학의 공공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폭염이나 미세먼지가 기승을 떨칠 때, 우리는 각자도생의 정신으로 각자 살길을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과학 기술도 이런 각자도생의 공기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가령 집안에 에어컨을 들여놓아서 내 한 몸을 둘러싼 공기를 시원하게 만들고, 공기청정기 같은 제품을 사용해서 당장 내 코로 들어오는 미세먼지를 막아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여러 기업에서 각자도생의 공기를 확보해주는 제품을 만드는 공기 기술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학 기술은 공기 위기를 개인의 문제로 파악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 기여합니다. 건강에 관심이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각자 이런 제품들을 사서 자신의 공기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기는 각자의 코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공기 위기는 단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공기를 공동체의 것으로 인식해야 하고, 이러한 공동체의 공기를 진단하고, 관리하고, 계산하는 일에 과학이 필요합니다. 내 코앞의 공기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한반도 전체의 공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 상태를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이 맡을 수 없는 큰 규모의 과학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느린 과학입니다. 게다가 딱히 이윤을 내기 어려운 비싼 과학이기도 합니다."


"가령, 해마다 여름이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와 도심의 공기가 얼마나 뜨거워지고 있는지 측정하는 연구진이 있습니다. 카트에 측정 장비를 싣고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손으로 밀고 다닙니다. 또 한반도의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비행기에 관측 장비를 싣고, 한반도 상공을 좌우로, 또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국제 연구진도 있습니다. 이런 공적 과학 연구가 만들어내는 공기 데이터 없이는 우리는 현재의 공기 위기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습니다."


"각자도생의 과학이 아닌, 공공의 과학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야 합니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또한, 돌봄의 과학이 필요합니다. 돌봄의 과학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곳을 찾아내고, 구멍을 메꿔주고,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쳐주는 과학입니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바이러스를 품은 공기가 우리 사회의 어느 영역으로 더 쉽게 파고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밀집, 밀접, 밀폐 환경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왜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이 되는지, 비로소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저자로 참여한 논문에 실린 그림입니다. 서울의 한 콜센터에서 서로 가깝게 붙어 앉아서 일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집단적으로 감염되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담은 논문이지만, 동시에 우리 주위의 어떤 삶의 조건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이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한 연구들이 물류센터, 요양병원, 정신병동에 대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구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잘 어울리지 않던 과학과 돌봄이 위기 상황에서 비로소 연결되는 것입니다. 폭염과 미세먼지의 위기에서도 돌봄의 과학이 해야할 역할이 큽니다. 우리는 뜨거운 공기가 사람의 몸, 특히, 실외에서 일하는 사람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많이 알아내야 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냉방 설비를 갖출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그 중에서도 노인과 장애인에게 폭염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폭염의 공기는 약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합니다. 마찬가지로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그 사람의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더 열악한 공기 조건에 더 오래 노출된 사람들에게 미세먼지는 더 큰 위협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 축적한 데이터는 곧 이들에 대한 사회적 돌봄의 요청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돌봄의 과학은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무너질 수 있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살피기 위한 과학입니다. 공공의 과학과 마찬가지로 돌봄의 과학도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그 진행이 더디고, 이윤을 내기 어려운 과학입니다. 혁신적인 과학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뒤를 받쳐주는 과학입니다. 지금은 바로 이런 과학의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연대의 과학입니다.

모든 국가는 공기 위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겪으면서 각자의 여건에 따라 공기 과학과 공기 기술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학자들은 또 서로 협력해서 공기 위기에 함께 대응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공기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데이터와 장비와 사람도 국경을 넘으면서 함께 움직이는 연대의 과학이 필요합니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든, 각국의 감염 사례를 분석한 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해서든, 전 지구적 코로나19 위기에서는 전 지구적 규모의 연구 협력이 필요합니다. 폭염과 미세먼지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폭염은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이상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일부이고, 따라서 한국의 폭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와 다른 지역의 공기 상태를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미세먼지 농도를 비롯한 한국의 대기질을 측정하는 연구에는 한국의 과학자들과 미국 항공 우주국 나사(NASA)의 과학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반도 곳곳에 관측 장비를 설치하기도 하고, 다양한 비행경로를 따라 항공 관측을 해서 한반도의 공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려는 일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과 중국 사이에 미세먼지 원인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처럼 공기 과학은 국가 간 갈등이 발생하는 불편한 자리에 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상품이 국경을 넘을 때 국가 간에 분쟁이 생기는 것처럼 공기가 국경을 넘을 때도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과학 공동체 사이에 연대와 교류는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공공의 과학, 돌봄의 과학, 연대의 과학. 폭염과 미세먼지와 코로나19라는 공기 위기 속에서 과학의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과학은 각 지역의 주민센터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수행하는 공적 업무의 일부 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 공간을 자세하고 또 꾸준하게 들여다보는 과학입니다. 이런 과학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고, 이윤을 창출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과학을 통해 우리 사회는 공기 위기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런 과학을 통해 우리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함께 호흡하는 호흡 공동체로 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 우리가 해오던 것을 모두 바꿔야 하는 때라고들 말합니다. 공기 위기에 대응하고, 공기 위기를 헤쳐가는 데에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새로운 관습, 새로운 규범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맞는 지식이고, 무엇이 최선의 기술이고, 무엇이 합당한 관습과 규범인지에 대해 미리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과정에 대응하고,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합의가 등장할 것입니다.

이렇게 등장하는 새로운 지식, 기술, 관습, 규범을 가지고 우리는 새로운 공기 관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공기 관계에는 공공, 돌봄, 연대의 가치가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야 할 것이고, 과학 기술도 그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공기 앞에서 혼란과 두려움이 있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와 과학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시 찾은 과학은 지금의 공기 위기가 지나간 다음에도 우리 공동체 안에 남아서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SBS 보도본부 미래팀의 취재파일은 SBS의 대표 사회 공헌 지식 나눔 플랫폼 <SBS D포럼>을 중심으로,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이 작성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화두를 들여다 보고, 의미 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들을 전합니다. SBS 미래팀의 취재파일 내용을 접하고 싶은 분은 SDF다이어리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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