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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은퇴 7년 만에 최고령 현역 복귀…"다시 우승하면 펑펑 울 것 같아"

[취재파일] 은퇴 7년 만에 최고령 현역 복귀…"다시 우승하면 펑펑 울 것 같아"

김영성 기자 yskim@sbs.co.kr

작성 2021.04.07 07:56 수정 2021.04.07 08: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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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은퇴 7년 만에 최고령 현역 복귀…"다시 우승하면 펑펑 울 것 같아"
-배경은, 15세에 프로 데뷔해 16세에 최연소 메이저대회 우승…여자골프 '신데렐라'로 주목
-국내 통산 3승 후 미국 진출…7년간 LPGA투어 우승 없이 부상으로 내리막길
-2014년 은퇴 후 '코스 해설과 레슨' 방송인으로 변신
-레슨하면서 골프에 새롭게 눈 떠…시드전 거쳐 은퇴 7년 만에 현역 복귀
-36세에 최고령 1부 투어 복귀 "다시 루키 된 기분…골프 인생 새 출발점에 선 느낌"

한국여자프로골프 KLPGA투어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8일(목) 2021시즌 개막전인 롯데렌터카여자오픈을 시작으로 9개월간 31개 대회의 대장정에 돌입합니다. 올해 KLPGA투어 출전권을 가진 선수 가운데 최고령자는 1985년생 배경은입니다. 배경은은 단순히 현역 최고령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이력으로 시즌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여자골프의 전설 박세리 선수가 미국 무대에서 한창 승수를 쌓으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우던 배경은은 2000년 15살 나이에 역대 최연소 프로 데뷔로 주목받은 데 이어 이듬해인 2001년 16살에 메이저대회인 KLPGA 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 우승 신화를 쓰며 단숨에 한국 여자골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습니다.

골프 배경은 우승
2002년 1승을 추가한 그녀는 2005년 20세에 최고 전성기를 맞습니다. 미국 진출을 위해 LPGA 2부 투어와 국내 KLPGA투어를 병행했는데, 당시 KLPGA투어 7개 대회만 출전하고도 메이저 1승을 포함해 6차례나 톱10에 오르며 상금왕을 차지했고, LPGA 2부 투어에서는 2승을 올려 LPGA투어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배경은은 '박세리-김미현-박지은' 한국인 트로이카를 뛰어넘어 당시 최강이었던 안니카 소렌스탐을 꺾고 세계 정상에 서겠다는 큰 꿈을 품고 미국 LPGA투어에 도전했지만 7년 동안 우승 한 번 못한 채 내리막길을 걸었고, 점차 골프 팬들 사이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빈털터리로 손목 부상만 안고 국내 투어로 돌아온 배경은은, 별다른 활약 없이 평범한 선수로 2년을 더 투어에서 뛰다 결국 29살에 은퇴했습니다. 그녀는 당시의 절망적이었던 심정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 우울증 증세도 있었고요, 난 이제 뭐하고 살아야 하나? 주유소에서 알바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동안 내가 너무 자만했구나. 심적으로 지치고 고갈되어서 에너지가 1도 없었어요. 그냥 다 내려놓고 골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렇게 골프채를 손에서 놓았던 배경은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던 어느 날 공과금 통지서를 받아 들고 갑자기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습니다.

"공과금을 어디 가서 내야 하지? 모르겠더라고요. 맨날 부모님이 내주셨던 거라… 그때 정말 충격이었어요. 제가 '골프 바보'였던 거예요. 은행 업무도 볼 줄 모르고 골프 외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골프 바보. 그래서 결심했죠. '뭐가 됐든 많이 배워야겠다. 골프 아닌 것들을 배우자' 그래서 스피치 학원 다니고, 방송을 위한 공부도 하고 , 성악 클래스도 해보고 다양한 것을 배웠어요."

골프 배경은
골프전문방송에서 대회 코스 해설과 레슨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 변신한 배경은은 필드 레슨과 행사 참여 등으로 6년간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1년에 라운드 횟수가 평균 200번이 넘었지만 성적에 대한 부담 없이 그냥 즐기는 골프였기에 지치지 않았고 마냥 즐거웠습니다. 방송 출연과 필드 레슨, 행사 초청비 등으로 발생하는 수입이 선수 시절보다 오히려 더 많아져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습니다. 선수 시절 성적을 내기 위한 골프가 '전쟁'이었다면, 은퇴 후에 즐기는 골프는 삶의 활력소이자 자신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이론 공부를 하다 보니 미처 알지 못했던 골프의 원리를 깨우쳐 마치 '득도'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골프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남을 가르치면서 그걸 제 스윙에도 접목해보니 의외의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제 자신의 골프도 많이 발전할 수 있었어요. 선수생활 14년 동안 기록한 홀인원 횟수(3회)보다 은퇴 후에 작성한 홀인원(6회)이 2배나 많고, 18홀 베스트 스코어도 선수 시절(7언더파 65타)보다 은퇴 후 스코어(9언더파 63타)가 더 좋아요. 마음을 비우고 쳐서 그런가 봐요. 하하"

그녀는 골프를 '거울'에 비유했습니다.

"골프는 거울 같아요. 발가벗은 저를 보는 느낌? 골프를 마주하고 있으면 저의 모든 게 다 드러나죠. 습관, 성향, 장점, 단점이 다 나와요. 현역 은퇴 후 성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즐기는 골프를 치다 보니 골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골프가 즐겁고 재미있어졌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다시 투어로 돌아가자"

배경은은 지난해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KLPGA투어 시드전에 응시해 31위를 기록하면서 한 번 만에 2021년 시드를 따냈습니다. 그녀가 KLPGA투어 시드전에 나선 것은 2000년 이후 무려 20년 만이었습니다. 은퇴 후 7년 만의 현역 복귀는 KLPGA투어 사상 그녀가 처음입니다.

"알고 보니 제가 1부 투어 최고령이네요? 다시 루키가 된 기분이고 제 골프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저도 궁금해요. 달라진 제 골프가 투어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골프 배경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 에너지 넘치는 짱짱한 후배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체력 관리가 제일 걱정되지만 그녀에겐 다 계획이 있습니다.

"솔직히 31개 대회를 다 치는 건 불가능하고요. 이젠 예전의 에너지로 치는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경험과 효율로 시즌 운영을 할 거예요. 3주 연속 치고 한 주 쉬고… 이런 식으로"

복귀 후 목표는 더 구체적입니다.

"이왕 칼을 뽑았으니 우승해야죠. 어쩌다 운 좋게 할 수 있는 1승 말고 진짜 실력을 인정받는 2승 이상을 하고 싶어요. 좀 더 디테일한 목표를 잡긴 했는데 매 라운드에 3언더파씩 치는 게 목표거든요. 그렇게 꾸준히 치다 보면 우승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2005년 20살에 마지막 우승을 했는데 그땐 너무 어려서 그저 얼떨떨했어요. 만약 제가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날이 온다면 아마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아요.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까… 그러면 저 말려주셔야 해요. 하하"

배경은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독서와 피아노 연주, 그리고 요리와 '혼술'로 풉니다.

"책을 좀 좋아해요. 요즘 시간을 쪼개 쓰고 있는데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취침 전에 최소 20분씩이라도 휴대폰 대신 책을 꼭 읽고 자요. 피아노는 어렸을 때 배웠는데 가끔 좋아하는 곡 연주하면서 노래도 흥얼거리고 그래요. 요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진짜 기운이 없고 생체 에너지가 1% 남았을 때 나를 위한 보상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끔 해요.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예쁜 접시에 예쁘게 담아 먹으면 세상 행복해요. 어울리는 술과 함께…. 하하하. 뒤늦게 배운 술이 무서워요. "

골프를 '거울'에 비유했던 그녀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중 한 소절을 떠올리며 응원을 당부했습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이게 딱 제 얘기 같아요.

'초조함과 (성적)압박감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골프여.'

"먼 길을 돌고 돌아 거울 앞 출발선에 섰습니다. 지켜봐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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