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북적북적] "파도가 칠 땐 서핑을!"…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 철학

[북적북적] "파도가 칠 땐 서핑을!"…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 철학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21.04.04 08:03 수정 2021.04.06 14:30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북적북적] "파도가 칠 땐 서핑을!"…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 철학
[골룸] 북적북적 285 : "파도가 칠 땐 서핑을!"…이본 쉬나드의 파타고니아 철학

"나는 모든 일에서 달인이 되는 길은 단순함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기술 대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많이 알수록 필요한 것은 적어진다. 나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는 미미한 시도들을 통해 나는 보다 단순하게 살아야, 혹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해야 정말 중요한 모든 면에서 빈곤하고 결핍된 삶이 아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최근에 <투모로우>라는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2004년 영화로,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뉴욕과 도쿄를 비롯해 세계 곳곳이 이상기후 현상을 맞닥뜨리게 된 상황을 묘사합니다. 기후 학자인 주인공의 아들과 친구들이 뉴욕에 와 있다가 수몰과 동사의 위기에 처하는데 뉴욕 공공도서관으로 대피하고 책을 불태워 살아남는다는 설정도 꽤 인상적입니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당시엔 극장에서 보면서 다소 황당해 보여서인지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2021년에 다시 보니 더 가까운 미래처럼 느껴졌다는 게 제 스스로도 놀라웠습니다. 막연히 후손에게 닥칠 미래가 아니라 제 생전에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앞으로 7세대를 내다보라", "유지할 수 있는 속도로,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라"라는 주문은 20년 전이면 매우 황당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철학을 가진 기업,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가 쓴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 이번 북적북적의 선택입니다.

창립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본 쉬나드는, 전설적인 등반가이자 서퍼, 환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주한미군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북한산 인수봉에는 그의 이름을 딴 등반 루트가 몇 개 있다고도 하네요. 등반과 서핑을 좋아하고 즐겨하면서 자기가 사용할 장비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게 파타고니아를 일구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왜 파타고니아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기업이 됐을까요.

"나는 거의 60년 동안 사업가로 살아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누군가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거나 변호사라고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내게 어려운 일이다. 기업은 자연의 적이 되어, 토착문화를 파괴하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착취한 것을 부유한 사람들에게 쥐여 주고, 공장 폐수로 지구를 오염시킨 일들을 책임져야 할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업은 식량을 생산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인구를 제한하고, 사람들을 고용하고, 우리의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이성과 영혼을 저버리지 않고도 수익을 내면서 이런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 최후의 날을 예측하는 책들이 자연의 파괴와 문명의 붕괴를 피하기 위해 즉시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권고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존재한다."


쉬나드는 암벽 등반할 때 사용하는 피톤을 주력 상품으로 만들다 이게 암벽을 지속적으로 훼손시킨다는 걸 깨닫고 암벽에 박을 필요가 없는 초크로 생산체제를 전환하면서 처음으로 환경 친화적인 경영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비롯된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에 대해 직원들에게 매뉴얼로 전달할 필요성을 느껴서 정리한 게 2005년에 나왔던 첫 책인데, 10년 뒤 개정 증보판으로 나온 게 오늘 이 책입니다. 경영철학 매뉴얼이 기본인 책인 만큼 구성은 단출합니다.

"꾸준히 등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볼더 인근의 엘도라도협곡, 뉴욕의 샤완겅크, 요세미티계곡과 같이 잘 알려진 루트에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다. 연약한 크랙에 경강 피톤을 반복적으로 박아 넣고 빼낸 덕분에 암벽은 흉하게 망가졌다. 엘카피탄의 노즈 루트를 등반한 나는 몇 해 전 여름만 해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그곳이 심하게 훼손된 것을 발견하고 염증을 느끼며 집에 돌아와야 했다. 프로스트와 나는 피톤사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수년에 걸쳐 밟게 될 환경 보호를 향한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1991년 맞이한 회사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가 역설적으로 경영철학을 확립하고 7세대를 내다보는 기업을 목표로 직원들과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가 됐습니다.

"우리 회사는 가진 자원과 한계를 초과하고 말았다. 우리는 세계 경제와 마찬가지로 유지할 능력이 없는 성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무시하거나 문제가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경영방침을 도입해야 했다.
...
이제는 경영과 지속 가능성의 모델을 미국 기업계가 아니라 7세대 앞을 내다보는 이로쿼이 인디언과 같은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이로쿼이족은 의사결정 과정에 향후 7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파타고니아가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후부터는 모든 결정에서 100년 앞을 내다보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긴 미래를 내다보고 그때까지 유지할 수 있는 속도로만 성장해야 한다."

"1991년에서 1992년에 있었던 위기 이후 현재까지는 다행히 파타고니아의 역사에 그리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없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라는 사명 선언에 따라 살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과정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이다."


2장 철학은 8개 분야로 나눠서 서술하고 있는데 그중 첫째는 제품 디자인 철학입니다. 여기서 파타고니아의 디자이너가 각각의 제품이 자신들의 기준에 적합한지 판단하기 위해 제품에 던져야 하는 주요 질문들이 나오고 각각 그에 대한 답이 적혀 있는데 이 질문들만 적어보겠습니다.

- 필요한 기능을 갖추었는가?
- 다기능적인가?
- 내구성이 있는가?
- 수선이 가능한가?
- 고객에게 잘 맞는가?
- 디자인이 단순한가?
- 제품 라인이 단순한가?
- 혁신인가 발명인가?
- 글로벌한 디자인인가?
- 관리와 세탁이 쉬운가?
-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 진짜인가?
- 아름다운가?
- 패션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가?
- 핵심 고객을 위해 디자인하고 있는가?
- 해악을 끼치고 있지는 않은가?
- 유기농 목화인가?
-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원료 생산은 가능한가?
- 독성이 적은 염료를 사용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꼭 파타고니아의 디자이너나 의류 디자인 분야가 아니라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도 조금 변형해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미디어 분야에서도 그렇죠. 필요한 정보를 갖추었는가? 여러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나? 논리와 근거는 확실한가? 잘못된 정보는 바로 수정할 수 있는가? 독자에게 잘 맞는가? 읽기 쉬운가? 등등.

"서핑에 매진하는 사람은 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에 서핑을 하러 가는 계획을 잡는 게 아니라 파도와 조수와 바람이 완벽할 때 서핑을 간다. 스키는 습기가 없는 가루눈이 올 때 타러 간다.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든 바로 나설 수 있는 근무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이름의 근무시간 자유 선택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직원들은 이 제도를 활용해 좋은 파도를 잡고, 오후에 마음껏 암벽을 타고, 학업을 계속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맞이한다. 이런 유연성을 통해 자유와 스포츠를 너무나 사랑해서 엄격한 근무환경에 정착하지 못하는 귀중한 직원들을 얻을 수 있었다. 특권을 남용하는 직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환경 분야는 물론이고(가장 분량이 많습니다), 2011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광고 'Don't buy this jacket'을 탄생시킨 마케팅 철학이라든가 그 외에도 파타고니아의 철학은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파타고니아가 요즘 하는 말로 '갓-'이라는 이름이 붙는 완전무결한 기업만은 아닐 테고 기업 창업자가 쓴 책에서 단점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또 가족기업이라는 특성을 유지하고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이니 가능한 경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공정한 처우에 대해서 "안전한 근로조건을 제공하고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선까지 노력이 확대됐다"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좀 어이가 없었고요.

그럼에도 책 말미의 "파타고니아는 사회적 책임을 완벽하게 이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피해가 전혀 없는 제품을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그런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는 말이 공허한 소리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였습니다.

*라이팅하우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 '네이버 오디오클립', '애플 팟캐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네이버 오디오클립' 접속하기
- '애플 팟캐스트'로 접속하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