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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성윤 에스코트 조사와 4년 전 우병우 황제 조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위치한 정부과천청사 5동으로부터 반경 370미터가량 떨어진 이면도로. 차량으로는 3분, 도보로는 채 10분 안 되는 거리이다. 지난달 7일(일요일) 오후 3시 48분,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량이 이곳에 나타났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량을 이끌고 온 수행비서는 이성윤 지검장을 태워 공수처로 향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10분쯤, 김 처장과 비공개 면담을 마친 이 지검장은 관용차량을 타고 갈아탔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인근 CCTV에 담긴 주요 장면이다.

(취재파일) 배준우
(취재파일) 배준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량을 갈아탔던 지점은 공사장 인근의 한산한 골목길로, 멀찌감치 모두 4대의 CCTV가 설치돼 있다. 이 4대 중 3대의 CCTV에 이 지검장의 모습이 포착돼 있다. 김 처장과 이 지검장이 이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CCTV에는 이성윤 지검장이 서류 가방을 들고 두리번거리는 모습까지 담겨있다. 수사기관의 장(長)이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밝히는 수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를 마중 나가고 배웅까지 해준, 이른바 '에스코트(escort : 무사하도록 호위하는 일) 조사'를 벌였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황제 조사와 면담의 차이점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라며 공수처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더욱 유의하겠다"고 했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보안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이성윤 지검장을 관용차량에 태워 데려온 것인데 김 처장이 더 강경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류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도 보안상 그렇게 하는데 같은 수사기관인 공수처는 왜 안 되느냐'라는 취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말하는 검찰의 사례와 이 지검장 면담의 경우는 결이 다른 측면이 있다. 검찰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수년 전만 해도 주요 피의자를 소환조사하는 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소환 당일 청사 인근 특정 지점에서 해당 피의자를 만나서 데려왔다. 강력부가 유명인(재벌가 또는 연예인)을 소환할 때에도 별관 등에서 데리고 온 사례가 있다. 보안을 위해서다. 그리고 해당 피의자의 청사 출입 기록과 조사 내용을 남겼다.

반면,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출입 여부를 알 수 없게 했고 방호원이 없는 공수처 뒷문을 통해 이 지검장을 출입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공수처 복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사 3층에서 1시간 넘도록 진행된 비공개 면담의 내용도 기록하지 않았다. '특혜성 면담', '황제 조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김한규 변호사(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는 "외관상 공정성과 거리가 멀다"라며 "만약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휴일에 관용차를 제공해서 조사했다면 공정성이 담보되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특혜성 조사와 면담은 성격이 다르다. 주요 피의자를 소환할 때 수사팀 차장검사나 검사장은 면담을 진행하곤 한다. 2017년 3월 21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됐을 당시, 수사팀 검사들(이원석 특수1부장과 한웅재 당시 형사8부장검사)은 박 전 대통령을 조사했고 조서를 남겼다. 이에 앞서 노승권 1차장검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차를 내어주고 잠시 얘기를 나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불법 합병 의혹으로 지난해 5월 26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됐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복현 부장검사를 중심으로 한 경제범죄형사부 수사팀이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고 이에 앞서 당시 수사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신성식 3차장검사(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가 이재용 부회장을 방으로 잠시 불러 차를 마셨다.

주요 피의자 측이 요청하니 수사기관장이 한 번 만나는 보되, 관용차량을 보내고 면담 내용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것은 면담을 넘어 특혜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아직 수사처 진용이 갖춰지지 않아 검사가 없기 때문에 김진욱 공수처장이 이성윤 지검장을 만난 것이라면, 더더욱 면담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어야 마땅하다"라고 지적했다.

김진욱-이성윤

"공수처장은 절차대로 했다고 믿고 있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과 비공개 면담 시간 장소를 정하며 절차와 규정을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주요 피의자의 경우 출입 기록 등을 기재하지 않고 면담‧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훈령인 청사출입보안지침을 살펴보면, 긴급 출입 관련 규정이 있다. 출입과 관련해 사후 승인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기는 하다. 이는 시설관리책임자가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면담 준비 과정뿐 아니라 면담 진행 과정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진욱 처장은 지난달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이성윤 지검장을 만난 것은 '면담 겸 기초조사'라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에 따르면, 피의자의 진술 내용은 조서에 기재해야 한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이 지검장에 대한 면담 내용을 남기지 않은 근거로 수사준칙 제26조를 들며 반론에 나섰다. 하지만, 이 규정에는 조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밝히라는 내용도 함께 명시돼 있다(수사준칙 제26조 제2항 제2호). 김 처장은 조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를 남기지 않았고 밝히지도 않았다. 한 법조계 인사는 "공수처장은 절차대로 했다고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절차만 지켰다고 해서 절차를 지킨 것은 아니다. 절차를 끝까지 다 지키지 않으면, 결국 절차를 어겼다는 여지를 남기는 셈이다.

수사기관 불신 조장하는 황제 조사 : 형평성 여부

2016년 11월 6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피고발인이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처가(妻家)의 서울 역삼동 부동산 거래 관련 의혹으로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이후였다. 그런데 당시 검찰 조사 때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진 한 장이 공개됐다. 일명 '우병우 황제 조사 팔짱 사진'이다. 이 사진은 당시 우병우 전 수석이 얼마나 실세였는지, 우 전 수석의 위치를 여실히 보여줬다. 우병우 전 수석이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모자가 달린 검은색 점퍼를 착용한 채 검사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다.

검사와 피조사자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이었다. 검찰 청사에서 피의자로 소환조사를 받으며 휴식시간에 팔짱을 낀 채 검사들 옆에서 서 있을 여유가 일반 국민에게도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사진 한 장이 실체적 진실을 온전히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검찰 조사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기에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피의자들과의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 사회적 공분을 크게 자아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공수처는 권력기관 중 하나인 검찰을 개혁하겠다며 출범한 수사기관이다. 중립성과 독립성, 공정성이 엄격히 요구된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이를 강조해 왔다.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경계해야 하고 답습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주요 피의자인 이성윤 지검장을 면담하기에 앞서 관용차량을 내어줘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공수처 인근 CCTV가 증거로 공개됐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의 면담 내용도 기록하지 않았다.

2016년 당시 검찰이 우 전 수석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하며 100페이지 분량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남기고 휴식 시간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기록을 남겨두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지검장에 대한 특혜성 조사는 우 전 수석의 사례보다 더 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 처장은 사안이 중대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앞으로 공수처가 고위공무원을 수사하며 유사한 전례를 반복하지는 않을지 불신을 가질 우려가 크다.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김 처장이 나름의 절차를 지켰다는 점만 강조하게 된다면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고 법 감정과도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면담처나 접대처가 아니라 '수사처'이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장으로서 수사 대상자를 생각하고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권력기관의 바람직한 개혁을 희망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시선도 무겁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진=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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