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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여론조사 잘 읽는 법…정치의 안목이 달라진다

여론조사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월요일 리얼미터 (YTN 의뢰), 수요일 R&서치 (데일리언 의뢰), 목요일 리얼미터 (TBS, 오마이뉴스 의뢰), 금요일 한국갤럽의 순으로 정기조사가 줄줄이 발표되기 때문에 화요일만 빼면 누구나 매일 정치 여론조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들 정기 여론조사만 잘 판독해도 대략적인 민심 흐름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4·7 보궐선거 여론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개별적인 선거 여론조사는 다루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읽는 법을 중심으로 현재의 선거전이 지금까지의 여론 흐름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경향과 추세를 제대로 읽으면 과거와 현재의 흐름이 연결되고, 그 흐름의 의미가 파악되면 현 정치 상황은 저절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親文 콘크리트가 부른 反文 50% 콘크리트화


정치 여론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잣대의 일관성입니다. 동일한 질문,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질문,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기준이 중요합니다. 보통 많이 사용되는 잣대가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입니다.

작년을 다시 복기해 보면, 대통령의 지난해 지지율은 4월 총선거 때 피크를 찍었습니다. 이 타이밍 덕분에 여당의 180석 압승도 가능했죠. 그러나 총선 뒤 민주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과 일방적 다수결 강행처리 등 힘 보여주기 식 정치가 이어지면서 지지율은 하락합니다.

검찰 장악 논란과 코드 인사 밀어붙이기, 집값 상승에 따른 부동산 정책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7월에는 대통령 부정 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서게 됩니다(작년도 여론조사 도표 참조). 8월을 거치면서 재반등했으나 9월에 또다시 데드크로스를 기록합니다. 윤석열 몰아내기가 공공연히 시작된 때였죠.

2020년 3월~10월 문대통령 지지율 변화 (리얼미터 조사)
2020년 10월~12월 문대통령 지지율 변화 (리얼미터 조사)

그런데 이 때부터는 여론조사 흐름의 패턴이 종전과 달라졌습니다. 2019년 조국 사태, 2020년 2~3월 코로나 초기 대응 논란, 7월 부동산 정책 논란 때는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해도 그 이슈가 사라지면 다시 반등하는 패턴이 반복됐는데 작년 9월 이후 대통령 지지율의 골든 크로스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10월 중순부터는 부정 평가가 50%선에서 고착화되는 패턴으로 대체됐습니다.

당시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은 어떤 악재에도 긍정 평가가 45%선을 유지하는 점에 주목해 친문(親文) 45%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강조했었는데 그 반대편의 의미, 즉 반문(反文)도 함께 콘크리트화 되고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추미애 장관을 비롯한 강성 친문의 윤석열 몰아내기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중도층 다수가 마음을 닫았고 지금 선거의 핵심 이슈가 된 부동산 문제는 그때도 이미 활화산 상태였습니다. 전셋값 폭등을 몰고 왔던 이른바 임대차 3법을 충분한 심의도 없이 180석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도 그 때였습니다. 그런 활화산에 LH 사태로 기름을 부은 것이 현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현 보궐선거 여론은 작년 10월부터 잉태


최근의 여론조사(긍정 평가 34.4%, 부정 평가 62.5% : 3월 29일 리얼미터)는 부정 평가가 더 늘어났다는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질적으로 보면 작년 10월부터 잉태된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친문과 비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중도층이 비문으로 옮겨가고 다시 반문으로 넘어간 결과물입니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가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유권자를 넘어선 여론조사도 같은 맥락입니다(정권교체 50.1%, 정권 재창출 43.8% : 3월 28일 한국경제, 입소스 조사). 작년 10월 중순 이후 콘크리트화 된 친문 40~45%, 반문 50%의 숫자와 거의 비슷합니다.

유권자들이 콘크리트화 됐다는 뜻은 어떤 의미일까요?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에서 각 정당이 무슨 말을 하든, 각 후보가 무슨 말을 하든 유권자들이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적다는 뜻입니다. 지지율의 출렁거림이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표심이 바뀔 가능성이 적으니 여야는 자기편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모으는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4월 2일, 3일 사전투표부터 조직 총동원령을 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샤이(shy) 표'는 누구의 표? 이번엔 진보 샤이?


선거 여론조사 관련해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숨겨진 표'입니다. 누구를 지지하는지 밝히지 않는 수줍은 유권자의 '샤이 (shy)'표가 얼마나 되는지, 누구에게 가는 표가 더 많은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저는 샤이 유권자들의 표를 비중 있게 보는 편은 아닙니다. 다만 숨겨진 표는 소수파 유권자의 표가 더 많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명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 생각이 곧 다수의 생각이라고 판단하면 응답을 하는 반면에 자기 생각이 소수이거나 흐름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응답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선거가 치러지게 되면 현재의 여당 지지자는 응답을 하는 반면, 현재의 야당 지지자는 응답을 꺼리는 식이죠. 응답자가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정답 지향적' 답변을 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또, 성향적으로는 보수 유권자가 진보 유권자보다 더 샤이하다는 평가가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이번 4·7 보궐선거는 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앞서고 있고, 전체 흐름도 정권교체 응답이 정권 재창출 응답보다 많다는 여론조사가 많이 보도됐기 때문에 거꾸로 진보성향 유권자가 입을 다물 가능성이 있습니다. 작년 4월 총선거 때는 '샤이 보수'가 많이 거론했던 것에 반해 이번 선거에서는 '샤이 진보'가 더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윤석열 효과…野 후보 지지율 상관관계는?


최근 정치 여론조사의 관심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입니다.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그만두자마자 이재명 경기지사와 양강 구도를 만들더니 최근 조사에서는 1위로 치고 올라온 상황입니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변화 (3월 29일, 리얼미터 조사)

윤석열 효과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요? 윤석열 본인이 보궐선거에 어떤 메시지를 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간접적인 나비효과는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인 데다 역사적으로 왕조 정치에 익숙해 있기 때문인지 정치를 인물 중심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누구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리더가 명확해야 사람이 모입니다.

국민들도 정당의 사당화에는 반대하면서도 정작 뚜렷한 리더가 보이지 않으면 인물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약간 모순된 듯한 이런 현상 때문에 대선주자가 없는 정당은 '불임 정당'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야권의 치명적 약점이 바로 이 점이었는데 윤석열의 대선 선호도 1위는 그 치명적 약점을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윤석열 본인의 정치 계획을 전혀 알 수 없지만, 또 야권의 속내와 이해관계도 서로 다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 시점에서 윤석열은 야권 지지자를 한데 모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실제 윤석열 대선주자 지지율과 이번 선거의 야당 후보 지지율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도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윤석열이 올라가면 오세훈도 같이 올라가는 식으로 말이죠. 여론조사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주목할 만한 포인트입니다. 윤석열 본인의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윤석열 효과는 정치판에 이미 스며든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낙연 (사진=연합뉴스)

이낙연의 반성문 - 여론조사가 바꾼 선거 전략


최근 여론조사 중 가장 큰 특이점은 20대의 의식 변화입니다. 20대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90%대의 높은 지지를 보냈지만 현 정부 4년 동안 달라도 너무 달라졌습니다. 대통령 부정 평가가 가장 높은 연령대가 60대 이상인데 60대 이상 연령대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부 비판적 세대로 변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 등록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20대는 오세훈 후보 지지가 박영선 후보 지지보다 두 배 이상 많게는 세 배 가까이 많았습니다. (오세훈 60.1% vs 박영선 21.1% : 3월 24일 리얼미터, 오마이뉴스 조사)

이낙연 선거대책위원장이 4·7 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3월 25일 "사과드립니다. 도와주세요"라는 읍소 전략을 편 것은 이들 20대와 30대를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20대, 30대는 앞으로도 60년 이상 투표를 계속할 세대이기에 이들이 등 돌리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불리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사과 대신 밀어붙이기를 선택해왔던 민주당이었기에 반성문 선거전략은 굉장히 큰 태도 변화입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전략을 바꿔 놓은 셈이죠. 다만 중도층이 중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면 이 같은 전략 수정이 효과적이었을 텐데 중도층 다수가 이미 반문으로 넘어간 상황이기에 효과가 있더라도 제한적일 것 같습니다. 전략 수정의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며칠 뒤 새로운 여론조사로 확인이 가능하겠지요.
 

비판의 시동? 차기 후보의 차별화, 어디까지?


민주당의 반성문 선거전략을 언급한 김에 관련 이야기 첨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당장의 서울시장 선거가 중요하기에 전술적으로 달라진 선택을 하긴 했지만 이낙연 위원장과 박영선 후보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인정한 셈이 됐습니다.

이낙연 위원장은 "반성하고 틀을 제대로 짜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고 했고 박영선 후보는 "재건축, 재개발 완화"를 언급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에 국한되긴 했지만 의도하지 않게 정부 비판의 시동을 건 결과가 됐습니다.

이번 4·7 보궐선거를 넘어 내년 대선으로 갈수록 차기 후보의 차별화는 더 큰 변수가 될 것이고 어디로 튈지는 예측불가입니다. 노태우의 5공 청산, 이회창의 YS 때리기, 이명박-박근혜의 갈등과 대립은 권력의 비정함을 담은 차별화 사례들입니다. 더욱이 민주당 내 차기 여론조사 1위인 이재명 지사와 친문은 감정적 앙금을 풀지 못한 사이입니다.

차기 주자의 차별화 여부는 결국 현직 대통령 지지율과 함수 관계입니다. 3월 26일 갤럽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4%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대통령 레임덕의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30%입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불렸던 40%선까지 회복된다면 차기 후보는 차별화 대신 협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거꾸로 30% 이하로 떨어지면 차별화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 그리고 그 뒤의 대통령 지지율은 차기 후보군의 형성과 그들의 대권전략에 곧바로 반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조사는 앞으로의 정치를 예측하는 기본 자료가 됩니다. 여론조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면 남들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눈높이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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