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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눈물 젖은 핀란드 사과 파이

[인-잇] 눈물 젖은 핀란드 사과 파이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SBS 뉴스

작성 2021.03.28 11:03 수정 2021.04.02 15: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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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친구가 사과가 심하게 넘쳐난다며 다급하게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친구네 집은 단독 주택인데 마당에 사과나무가 굉장히 많았다. 무려 80그루나 된다고 하니 수확한 사과의 양도 엄청났다. (SOS 칠 만했다.)

이 정도로 사과나무가 많은 집은 흔치 않지만, 핀란드의 웬만한 주택에는 사과나무 한 그루 정도는 다 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예전에 시조부모님이 기근에 대비하려 사과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는 그 흔한 사과나무가 조금은 특별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에는 한 번도 사과를 구황 작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부유한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가 20세기 초중반까지 배고픔을 걱정하는 나라였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실제로 19세기 후반부터 핀란드 남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기근을 대비해 집에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핀란드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수차례 지독한 기근을 겪었고, 심할 때는 핀란드 인구 1/3을 잃기까지 했단다. 이끼, 민들레, 자작나무 잎, 나무 뿌리 등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도 많았는데, 특히 소나무 속껍질 가루로 만들어 먹던 페투빵(핀란드어:pettuleipä)은 핀란드의 대표적 구황 음식이었다. 소나무 속껍질을 잘라내 말리고 가루로 빻는 작업은 힘든 노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존심 강한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창피한 일이라 숨어서 작업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빵은 열량이 낮고 영양소는 풍부해 고급 빵으로 분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한 뒤에야 비로소 핀란드는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격세지감!) 반세기가 조금 지난 지금의 핀란드인은 '북유럽의 미국인'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비만 인구가 북유럽에서 제일 많다. 일단 이들은 엄청난 대식가다. 핀란드에 와서 음식을 주문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겠지만 핀란드의 1인분은 우리네 2~3인분에 해당한다. '이렇게 많이 먹는 사람들이 예전에 그 기근은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가도 '당시 배가 너무 많이 고팠기에 한꺼번에 몰아 먹는 유전자 변이가 발생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예전에는 배가 고파 '눈물 젖은' 사과를 먹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맛을 위해 디저트용으로 먹는다. 사과로 만든 디저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핀란드식 사과 파이와 오븐에 구워먹는 사과다.

핀란드에 오기 전, 내가 아는 사과 파이는 바삭하고 단맛이 강한 크러스트로 사과를 감싸 구운 그런 전형적인 파이였다. 그런데 핀란드에서 맛본 사과 파이는 크게 달랐다. 파이라기보다 오히려 푹신하고 달달한 사과 빵 같은 느낌이랄까? 사과와 함께 밀가루, 버터, 우유 등이 들어가는데, 우유 대신 요구르트와 사워크림을 넣으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인잇 사과파이
파이에는 단맛보다는 신맛이 강한 사과가 더 잘 어울린다. 사과의 신맛과 설탕의 단맛이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단짠단짠'에 버금가는 '단시단시'가 여는 짜릿한 새로운 맛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갓 구워낸 파이는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으면 그 풍미가 배가 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관통하며 미각이 극에서 극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사과 파이와 더불어 '오븐에 구운 사과' (핀란드어: Uuni Omena)도 인기 만점의 디저트다. 이 디저트의 가장 큰 미덕은 오븐만 있으면 반은 해결될 정도로 만들기가 매우 쉽다는 점이다. 오븐에 구운 사과도 뜨거울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으면 음식 궁합으로는 최고인 것 같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에도 나는 '파블로프의 개'마냥 군침을 마구 흘리고 있다. 내 몸이 사과 파이를 다시 만들어 먹을 때가 온 것을 먼저 알아챈 것임이 틀림없다.


<핀란드식 사과 파이>
인잇 사과파이재료:
얇게 썬 사과 400 ml (2~3개)
중력분 350 ml
설탕 200 ml
바닐라 향 1작은술
베이킹파우더 1/2 큰술
사워크림 (플레인 요구르트) 200 ml
녹인 버터 100g
계핏가루 1큰술과 설탕 2큰술 (사과 파이 위에 뿌릴 때 필요)

만드는 법:
1. 중력분, 설탕, 바닐라 향, 베이킹파우더를 잘 섞는다.
2. 요구르트, 녹인 버터도 함께 섞는다. 모든 재료가 골고루 섞일 정도로만 섞고 마구 휘젓지 않는다.
3. 파이를 구울 그릇에 유산지를 깔거나 버터로 칠해둔다
4. 준비된 반죽을 파이 그릇에 넣는다.
5. 미리 껍질을 벗겨 얇게 썰어 놓은 사과를 그 위에 골고루 배열하고, 설탕과 계피 가루를 그 위에 뿌린다.
6. 200도로 예열 된 오븐 (가능한 아래 부분)에서 25~30분간 굽는다.

<오븐에 구운 사과>
인잇 사과파이재료:
사과 6개
오트밀 150 ml
흑설탕 50 ml
계핏가루 1작은술
버터 50g

만드는 법:
1. 사과를 잘 씻은 후 속을 칼이나 전용 도구로 도려낸다. (단 밑에까지 다 도려내지는 않도록 주의한다)
2. 버터로 칠한 오븐 전용 그릇에 사과를 배열한다.
3. 나머지 재료는 잘 섞은 후 사과 속으로 집어 넣은 후, 위에도 조금 놓아둔다.
3. 200도로 예열 된 오븐에서 25분 정도 조리한다.

인잇 이보영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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