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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부정 채용 17명 중 7명 아직 현직에

부정합격자 퇴출 지침 있는데…왜 적용 않나?

[취재파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부정 채용 17명 중 7명 아직 현직에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1심 법원의 유죄 판결은 전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일괄 사표 강제 등의 몰아내기를 '직권남용'으로 결론 내렸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재판부는 이렇게 빈 자리에 특정 인사들을 임용한 방식 역시 공공기관 운영법 등에서 정한 절차를 위반한 '업무 방해'로 판단함으로써, 해당 임용이 '부정 채용'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 전 장관의 1심 판결문에는 새 정부 들어 지난 2018년 환경부 산하기관 6곳의 임원직 인사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 채용' 사례가 모두 17건이 명시돼 있습니다. 부정 채용 당사자들은 현재 어떻게 됐을까요, 이들의 현황을 확인한 결과 17명 가운데 7명은 아직 현직에 재임 중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머지 10명 역시 부정 합격에 대한 아무런 징계나 제재 없이 임기를 마친 채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취재파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부정 채용 17명 중 7명 아직 현직에

더 나아가 이렇게 부정 임용된 기관장이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와중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정 임용된 해당 기관 임원들에 대해 잇따라 임기를 연장해준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산하기관 근처에선 부정 임용 당사자들끼리 공직을 나눠먹기 했다는 비난이 나올 정도입니다. 환경부 산하기관 장 모 이사장은 김 전 장관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8월, 2년간의 임기를 마친 정 모 본부장에 대해 1년간 재임용하는 인사 발령을 냈습니다. 신규 임원 임용의 경우 규정에 따라 임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 선정 과정을 거치도록 돼 있지만, 기존 임원의 임기를 연장할 경우에는 규정상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기관장 인사권한으로 재임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겁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장 이사장은 지난 22일 또 다른 부정 임용 당사자인 박 모 본부장에 대해서도 임기 연장 인사를 냈습니다.

[취재파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부정 채용 17명 중 7명 아직 현직에

장 이사장과 정 모, 박 모 본부장 등 3명 모두 김은경 전 장관 판결문에 부정 임용 당사자로 적시된 사례들입니다. 판결문에는 청와대가 이들을 해당 직위 추천자로 점찍은 뒤 환경부에 무사히 통과되도록 과제를 부여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특히 장 이사장과 정 본부장은 면접 심사가 치러지기 전에 환경부로부터 면접 질문지를 건네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바 있습니다. 면접 질문지가 사전 유출돼 특정 응시자에게만 전달된 겁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모두 29문항으로 이뤄진 면접 질문지를 사전에 받았는데, 실제 면접 질문지의 38문항 중 27문항이 유출된 질문지와 일치했습니다. 환경부는 또 면접 심사위원으로 들어가는 환경부 간부에게 누가 청와대 추천자인지 미리 알려줬고, 3명 모두 해당 환경부 간부로부터 면접 심사에서 최고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공공기관 임원 채용에서 부정행위가 있었음이 드러났지만 환경부는 묵묵부답일 뿐입니다. 환경부는 부정 합격자 처리 문제와 관련해 "아직 2심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판결이 확정된 뒤에 검토할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1심에만 2년 가까이 걸린 만큼 재판이 대법원까지 갈 경우 확정 판결이 나올 때는 현재 남은 부정 채용자 7명 모두 임기를 마친 이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환경부의 해명은 사실상 부정 합격자 처리 문제를 손대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사실 과거에도 공공기관 채용 비리가 이슈가 됐을 때, 부정 합격자 처리 문제는 매번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부정 합격자가 부정행위를 인식하고 있었고 또 관여했다는 걸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 이사장과 정 본부장의 경우 면접 질문지를 사전에 제공받았더라도, 본인들이 모든 응시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았다는 식으로 잡아떼면 죄를 묻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취재파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부정 채용 17명 중 7명 아직 현직에

이 때문에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이후 국가권익위원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공기관 채용 비리 근절단은 2019년 2월 20일 <공공기관 채용 실태 정기 전수조사 결과 및 개선대책> 발표에서 이 같은 '부정 합격자 퇴출 후속조치'를 지침으로 발표했습니다. 부정 합격자 본인의 고의성 및 가담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을 경우라도 관련자가 부정 청탁, 금품수수 등 부정행위로 기소될 경우 공소장에 명시된 부정 합격자는 일정 절차를 거쳐 퇴출토록 한다는 겁니다. 첫째 즉시 업무에서 배제한 뒤, 둘째 기관별 재조사를 벌여, 셋째 징계위를 통해 퇴출한다며 구체적 절차도 명시했습니다.

이 같은 지침을 환경부 산하기관 사건에 비춰보면 관련자인 김은경 전 장관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임원 후보 선정을 해야 할 임원 추천위원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 및 1심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위 지침에 따르면 장 이사장 등은 누가 보더라도 '관련자 기소 시 부정합격자 퇴출 절차' 적용 대상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여전히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부 해명은 이렇습니다. 국가권익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퇴출 지침은 공공기관 직원급 채용비리로 인해 만든 지침인데 반해 환경부 산하기관 부정합격자 문제는 임원급이 대상이라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해석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런 논리라면 똑같은 비리가 발생해도 직원 비리는 처벌해도 임원 비리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인 셈입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논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정권의 고유한 인사권이란 명분으로 낙하산 인사 관행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현행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엽관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공공기관 임원 인사 제도와 관련됩니다. 공공기관 운영법 등을 통해 공개모집 절차가 세세히 법률로 정해져 있는 만큼 특정인을 앉히기 위해선 탈법이 불가피하다는 게 환경부 산하기관 사례에서 드러났습니다.

김은경 전 장관 재판을 통해 환경부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간의 불법적 인사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부정 합격자 처리 문제에 여전히 묵묵부답인 환경부 태도를 보면 개선 의지가 있긴 한 건지 우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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