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큼 뻔한 말도 드물다. 이 뻔한 말로 큰 울림을 준 선수는 더 드물다. 삼성생명 가드 김보미가 그랬다. 그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죽을 힘을 다하는 것' 이상이었다.
눈물의 여왕
훈련 하나, 공 하나가 소중했던 마지막 시즌. 삼성생명의 성적은 14승 16패. 지는 날이 더 많았다. 올 시즌부터 4위까지 플레이오프에 나가게 된 게 큰 행운이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간절했다. 정규리그 1위 우리은행과 플레이오프 2차전 승리를 이끈 김보미는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뛰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은퇴를 결심한 그에게 패배는 곧 끝이었다. 챔피언결정 2차전, 4쿼터 종료 직전 치명적인 파울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뒤에도 펑펑 울었다. 김보미의 눈물은 시리즈 내내 빛났다. 정규시즌, 평균 6.9점을 넣던 선수가 플레이오프에선 11.6점을 넣으며 펄펄 날았다. 플레이오프 통산 개인 평균(5.39점)의 2배가 넘었다.
좀비
2005년 데뷔 후 프로 17년 차. 처음으로 제대로 된 별명이 붙었다. '좀비'.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공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모습이 꼭 그랬다. 김보미는 은퇴 경기에서 새로 얻은 별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저니맨
그렇게 김보미는 '보상 선수'가 됐다. 스타 선수가 이적해오면 튕겨 나가게 되는. 여자프로농구 전체 6팀 가운데 5팀을 옮겨 다녔다. 보기 드문 이력이다.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부끄럽지도 않은 일이다. 소속팀에서 '보호' 받지는 못했지만 다른 팀에는 '보상'이 될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니까.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는 김보미니까.
봄의 여왕
김보미는 반대였다. "그건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최고가 된다면 찝찝할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뛸 수 있는 지금, 코트를 떠나는 데 미련이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었는데. 최고가 되진 못했지만 우승을 하고 떠나게 됐잖아요. 저는 꿈을 이뤘어요."
챔피언결정전 MVP를 '봄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그 투표에서 김보미는 8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MVP는 66표를 받은 김한별이 차지했지만 김보미가 준 울림이 더 컸다. 차갑고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김보미는 최고가 아니어도 뜨거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챔피언 트로피는 16년 동안 한결같이 죽을 힘을 다 한 과정에 대한 보상이었다. '2021년 봄의 여왕'은 최선을 다한 김보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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