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 선거는 요식행위에 불과
지금은 제대로 찬반을 표시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만큼, 기표소에 들어가 제대로 비밀투표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면 자유선거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선거를 하려면 후보자를 배출할 정치적 집단인 정당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게 쉽지 않습니다.
지금 북한은 김일성의 사상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완전한 '김일성의 나라'입니다. 조선노동당 이외의 정당은 의미가 없고 정치적 파벌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선거가 가능한 공간이 열린다고 해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적 집단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동독에서는 어땠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독에서 선거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 당시 동독에는 여러 정치 세력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뵐레너(Böhlener) 모임과 신포럼(Neues Forum), 민주주의 지금(Demokratie Jetzt)과 같이 다양했습니다. 동독에서 민주화 과정이 시작되자마자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형성된 것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지만 동독의 내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동독은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는 등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 가운데는 체코와 함께 사회주의 성립 이전에 가장 서유럽적인 발전 경로를 가지고 있던 국가였습니다. 민주주의를 한 차례 경험하면서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때문에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민주주의의 열망이 억눌려 있었지만, 동독 주민들은 여건만 되면 언제라도 정치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었습니다. 동독에서 대규모 시위로 정치적 공간이 열리자 다양한 집단들의 정치 세력화가 빠른 시간 내에 가능했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정치 집단들을 기반으로 서독 정당들의 도움을 받아 1990년 3월 동독 최초의 자유 총선은 치러질 수 있었습니다.
정당 만들어지기 어려운 북한 내 상황
이렇게 북한 지역 내에 정당으로 발전할만한 정치적 세력이 형성되기 힘든 상황이라면 북한 선거는 초기에는 남한 정당들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다소 특수한 형태로 치러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한 정당들이 북한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정책과 공약들을 준비해 북한 지역 선거를 준비하고, 각 정당별로 북한의 정치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공개 선발 과정을 거쳐 지역구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북한 지역 내에서 정치적 경험이 축적되면 선거 과정이 보다 원활해지겠지만, 통일 과정이나 통일 초기 북한 지역 선거는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