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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120년 미국 관계 뒤집혔다"…일본엔 "배신자"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고위급의 첫 동아시아 순방이 일단락됐습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우리의 외교장관 격인 미국 국무장관이 국방장관과 함께 직접 찾았고, 껄끄러운 중국과는 국방장관 대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무장관과 함께 중국 외교 담당 고위급 2명을 미국 알래스카로 불러 만났습니다. 중국은 이번 미국의 순차 회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중국 외교부의 공식적인 반응보다는 중국 관영 매체들의 보도를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중국의 '속내'를 더 솔직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축조약 120년…중국 "미국과 120년 관계 뒤집혔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이후 "120년 천지개벽"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소셜 미디어에 두 장의 비교 사진을 올렸습니다. 한 장은 꼭 120년 전인 1901년 '신축조약'을 체결할 당시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이번 미·중 고위급 회담 사진입니다. 육십갑자를 두 번 돌아 공교롭게 둘 다 신축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1901년 신축조약 체결 당시와 2021년 미·중 고위급 회담을 비교한 사진

1901년 신축조약은 중국에 굴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신축조약은 그해 9월 7일 미국을 포함한 서구 열강 11개 나라가 청나라와 체결한 조약입니다. '부청멸양(청을 도와 서양 오랑캐를 멸하자)'을 기치로 내건 의화단 운동을 서구 열강이 격파하고 베이징을 점령한 뒤 청나라와 강제로 체결한 불평등 조약입니다. 청나라는 4억 5천만 냥의 배상금 지불을 약속했고 외국 군대의 상주를 허용했습니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당시 중국 인구는 4억 5천만 명이었습니다. 국민 한 사람당 은화 1냥씩 배상하라고 한 것인데, 청나라를 모욕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청나라는 배상 능력이 안 돼 39년에 걸쳐 이자를 붙여 갚기로 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사실상 열강들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고, 배상금을 다 갚기도 전에 멸망했습니다.

그랬던 중국이 120년 뒤 미국과 대등하게 마주 앉았습니다. 심지어 미국 측에 손가락질을 하면서 "중국은 이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을 낮잡아 보며 말할 자격이 없다"는 등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중국인들 입장에선 '통쾌하게' 생각할 만합니다. 이런 말들을 새긴 티셔츠, 휴대전화 케이스, 가방과 같은 상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국 국영 CGTN방송 앵커는 논평을 통해 양제츠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미국 측에 손가락질을 한 장면을 예로 들며 "와우, 중국이 미국 국무장관에게 이런 식으로 마지막으로 말을 한 게 언제였습니까"라고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지었습니다. 베이징과 워싱턴 사이의 권력 변화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 등장한 상품들.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했던 '중국은 이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을 낮잡아 보며 말할 자격이 없다' 등의 작심 발언이 새겨져 있다.

사실 이번 미·중 회담의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습니다. 거친 설전만 벌이다 끝났습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애초 회담의 목적이 공동성명과 같은 합의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과 원칙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이 서로 통제·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 자체가 이번 회담의 의미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나아가 미·중 간 '외교장관+국방장관' 조합이 아닌, '외교장관+외교 담당 고위급' 식의 '2+2'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 '2+2 채널'을 계속 유지하기로 한 것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고 했습니다. 두 나라가 앞으로 판을 깨지 않고 외교 채널을 통해 대화로 해결할 것이란 의지를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중국은 '판이 깨지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거친 발언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20년 만에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일본에는 "배신자"…한국에는 "합리성 보여줘"


세 차례 회담 중 중국은 미·일 회담에 대해 가장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환구시보는 3월 18일 "중국은 더는 못 보겠다, 신의를 저버린 일본을 통렬히 비판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일본 스가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미국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인사하는 사진을 함께 실었습니다. 당연히 양측이 서로 인사를 했을 터인데, 이 사진만 놓고 보면 오스틴 장관은 가만히 서있고 스가 총리만 허리를 굽히고 있습니다. 다분히 의도가 깔린 사진입니다.

환구시보의 3월 18일자 보도. '중국은 더는 못보겠다, 신의를 저버린 일본을 통렬히 비판한다'는 기사에 일본 스가 총리가 미국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인사하는 사진을 실었다.

앞서 일본과 미국은 외교·국방장관 공동성명에서 '중국의 강압적이고 안정을 해치는 행위를 반대한다'며 중국에 대한 견제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중국이 핵심 이익이라며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홍콩과 신장 문제도 거론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중국 외교부까지 나서 "일본이 미국의 부속국으로 전락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늑대를 끌어들여 지역 내 이익을 팔아먹는 행위"라고도 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은 앞다퉈 일본에게 '배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면전에서 웃으며 뒤통수를 쳤다'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중·일 관계에 기복은 있었지만 적어도 최근 2년 동안에는 관계가 좋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2019년 말 중국을 방문해 새로운 중·일 관계를 구축하자고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중국 매체들은 이런 일본에 대한 응당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한·미 외교·국방장관 공동성명에 대해선 "한국이 합리성을 보여줬다"고 평했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한·미 공동성명에 중국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놓고 하루 전 미·일 공동성명과 대조적이라고 전했습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사진도 오스틴 국방장관과 서욱 국방장관이 나란히 걷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 역시 한국을 미국과 동등한 관계에 놓으려는 중국 측 의도가 담긴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언급되지 않은 한·미 공동성명은 한국의 합리성과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대한 실용적 고려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서욱 국방장관이 오스틴 국방장관과 나란히 걷는 사진을 게재했다.

일부 중국 관영매체들은 정의용 외교장관이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에게 중요하다"는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한국에 대중 압박을 요구한 것은 분명하다"며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는 한국의 이런 기조가 앞으로도 유지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렇듯 중국이 바라보는 시선은 확실합니다. 피아 구분도 그만큼 분명합니다. 문제는 중국이 커져가는 국력만큼이나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맹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 외교는 갈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사진=인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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