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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가 끝나면 학교가 사라진다고?" ①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학교와 도시의 미래, SDF2020 유현준 교수 강연 다시보기

[취재파일] "코로나가 끝나면 학교가 사라진다고?" ①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도시 건축 전문가 유현준 교수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는 우리 사회 '학교' 시스템에 집중합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큰 운동장에 교사 한 동으로 구성된 학교의 모습이 똑같다고 말합니다. 30년이 지나 아들이 다니는 학교 건물이 아버지 때와 같다는 건데요. 학교를 지을 때 적용되는 실내 면적을 비롯한 모든 기준들이 아이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쉬운 과거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표준화된 건물은 아이들을 수직적으로 평가, 분류하는 지금의 입시 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의 교수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스페이스컨설팅그룹의 대표 건축사입니다. 연세대학교에서 학사를, MIT에서 건축설계 석사(M.Arch)를 마쳤으며, 하버드대학교 건축설계 석사를 우등 졸업(M.Arch with Distinction) 했습니다. 

근대 산업사회가 만들어지면서 표준화와 대량생산이라는 정신에 입각해 만든 이러한 학교들은 특히 코로나19 이후 커다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인데요. 전염병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학교가 큰 규모의 획일화된 지금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라는 것입니다. 

유 교수가 지난해 SBS 대표 포럼 SDF 청중들에게 들려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학교와 도시의 미래> 강연엔 자기 분야에서 오랜 내공을 쌓아온 전문가의 면모가 잘 드러났습니다. 청중들은 유 교수가 생각하는 미래의 학교에 대한 강연을 들은 후, Q&A 세션에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는데요. 아래는 유현준 교수의 강연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SDF2020 홈페이지유튜브 링크를 통해 당시 뜨거웠던 강연 분위기를 직접 확인해보세요.  ▶ [취재파일] "코로나가 끝나면 학교가 사라진다고?" ② 





“지금 보시는 것은 기원전, 3,5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우르크에 지어진 신전 지구라트입니다. 이곳에서 꼭대기에 제사장이 서면 시선이 모이죠?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서 있으면 권력이 생산됩니다. 교회 예배당 공간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모여서 한 곳을 바라보게 하는 공간 구조입니다. 따라서 그 앞에서 설교하는 사람이 권력자가 됩니다.

공간 구조는 권력 구조를 만들고, 권력 구조는 사회를 구성합니다. 전염병이 돌면서 사람이 모이지 못하면, 공간 구조가 깨지고 따라서 사회도 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흑사병과 중세의 몰락입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이는 대표적인 시설은 학교가 있습니다. 학교 역시 대규모 시설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대규모 시설을 유지하는 곳은 학교, 군대, 회사 정도만 있습니다.
 
학교의 규모가 큰 이유는 교육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같은 시간에 한 장소에 모아놓고, 한 번만 강의를 하면 선생님의 숫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근대 산업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표준화와 대량 생산이라는 정신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입니다.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표준화 작업을 하였고, 그 사회의 모든 학생들은 비슷한 표준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이렇게 한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세력이 커지는 특징도 생겨납니다. 같은 학교 동문이라는 말이 강한 집단의식을 만들게 되죠. 그 폐단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 있어 왔습니다."
 

"이런 학교의 거대한 규모는 코로나 시대에 큰 약점이 되었습니다. 전염병 시대의 학교는 큰 규모를 유지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염병에 강한 학교를 만들려면 어쩌면 학교를 더 잘게 쪼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온라인 강의로 가능해졌습니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 많은 학생이 한 장소에 모일 필요 없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미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보다는 온라인 1타 강사 강의에 더 의존해 왔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교실에서 선생님의 일방향의 지식 전달 장소일 필요가 없습니다. 지식을 전달받는 것은 온라인 동영상 강의로 하고, 선생님은 학생들을 소규모로 모아서 쌍방향으로 소통을 하면 더 좋겠죠. 선생님도 같은 내용의 수업을 반복해서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심도 있는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통해서 학생 개인의 성향과 수준에 맞게 맞춤형 수업을 제공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은 오래 전부터 이 방식을 적용해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적절히 이용하면 거대한 전체주의 분위기의 학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개성 있는 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플래시몹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특정 장소, 특정 시간에 모여서 짧게 집단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기술은 사람의 모임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기술을 만약에 학교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수업을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가서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스마트원 앱으로 선생님과 5인 규모로 소규모로 수업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만나면 되겠죠? 더 이상 학생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이 이동하면서 동네 상가에 비어 있는 위성 학교의 교실에 모여서 수업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체육 수업도 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동네 체육 시설에서 해도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성 학교는 낮 시간 동안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맡아주는 시설로서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꿈꾸는 미래의 학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한 번 보실까요?

이번 주 금요일은 엄마, 아빠가 온라인으로 재택근무를 해도 되는 날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전라도 고창에 3일 동안 묵을 수 있는 집을 찾아서 예약하고 목요일 저녁에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엄마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회사 일을 보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새로 오픈한 고창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수학, 과학, 한국사 수업을 들었습니다.
 
온라인 동영상 수업을 마치고, 미리 핸드폰으로 예약한 고창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의 수업을 참석했습니다. 오후 2시에 고창의 친구들과 농구 시합을 하고, 체육 수업 크레딧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마치고, 그곳의 아이들과 핸드폰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다음 달에 서울에 와서 수업을 듣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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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천 명의 학생이 천 개의 다른 커리큘럼을 가지는 학교가 제가 꿈꾸는 학교입니다. 이런 세상은, 이런 세상에는 전교 1등은 없는 거죠. 모두가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학교입니다. 지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사람 간의 만남도 쉽게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거의 매일 전교생이 한 장소, 한 시간에 모여서 같은 선생님, 같은 아이들과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11년에 설립된 미네르바 대학은 전 세계에 흩어진 캠퍼스와 동영상 강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런 학교의 변화는 가능했지만, 우리는 그 변화를 거부해왔죠. 코로나19는 세상을 바꿀 기회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전 세계가 이제 같은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서구에서 만든 학교 시스템을 모방하기에 급급했던 어른 세대의 삶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새롭게 공립학교 시스템을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시대가 되었을 때, 끝까지 모이는 조직은 더 강한 유대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소수 엘리트 학교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택트 소비의 증가가 있는 시대입니다. 과거,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났다면, 지금은 대부분 SNS 공간상에서만 소통을 합니다. 문제는 SNS상에서는 끼리끼리의 소통만 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만 보이는 에코 체임버 효과가 나타나는 거죠. 이런 공간적 상황에서는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 될 수 있습니다.
 
계층 간의 융합을 만들려면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야 됩니다.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공간은 도시 안에서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되는 거죠. 언택트 소비가 늘어날수록 역설적으로 공통의 추억을 만들 공원이 더 필요해집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공원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정방향의 공원일까요, 선형의 공원일까요?

공원을 만들면 가장 혜택을 보는 곳은 공원과 접한 변에 위치한 집들입니다. 가로 100미터, 세로 100미터의 정방향의 공원은 변의 길이가 400미터입니다. 이 비율을 1대 10으로 가로로 길게 만들면 변의 길이는 5배가 늘어납니다. 혜택을 보는 사람이 5배가 늘어나는 거죠."
 

"예를 들어서, 100만 평의 면적을 가지는 용산 공원이 있습니다. 용산 공원의 주변 둘레는 13킬로미터입니다. 용산 공원의 면적을 경의선 숲길처럼 폭 16미터의 선형의 공원을 만들면, 변의 길이가 150킬로미터로 11배가 늘어납니다. 두 번째 줄의 집까지 포함하면 22배, 세 번째 줄까지 포함하면 33배로 늘어나는 거죠. 공원의 모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혜택을 보는 사람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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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 공원의 두 번째 장점은 다른 지역 간의 소셜 믹스를 촉진한다는 점입니다. 과거에 홍대 앞 연남동과 마포구 공덕동은 다른 지하철역, 다론 동네였습니다. 경의선 숲길이 만들어지고 나서 홍대 앞 연남동과 마포구 공덕동이 산책을 오가면서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걸어서 오갈 수 있게 되면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고, 하나의 공동체가 됩니다. 도시 전체가 선형의 공원으로 연결된다면 지금보다 더 융합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지상에 공간이 필요하죠. 도로에 교통량을 줄이면 선형의 공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물류 교통량을 지하로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하에 물류를 담당할 자율주행 로봇만 다니는 터널을 만듭시다. 지금은 건설 기술이 발달해서 공사비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터널이 아니어서 단면의 크기도 작죠."
  

"우리는 경기 부양에 수백 조의 돈을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수십 조의 돈을 이런 인프라 건설에 투자할 수 있다면,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정부가 도로를 만들면 민간 기업에서는 자동차 산업, 유통 산업도 생기고, 각종 시너지 효과가 생겨납니다. 기존에 없던 이러한 도시, 지하 인프라가 생기면 자율주행 로봇 산업이 만들어지고, 또 이 인프라를 이용해서 새로운 각종 벤처기업이 만들어질 겁니다.
 
에너지 절약 측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1킬로그램짜리 피자를 배달하면 지금의 오토바이 배달로는 배달부와 오토바이 무게까지 합쳐서 161킬로그램이 이동해야 됩니다. 자율주행 로봇이 이동하면 11킬로그램만 이동하면 됩니다. 원래 기술은 발달하면 눈에 안 보이게 사라지는 겁니다. 상수도, 하수도, 전깃줄, 지하철 등 마치 키보드가 사라진 스마트폰처럼 21세기는 물류가 사라질 시대입니다. 교통량이 사라지면, 지상의 비워진 도로에는 선형의 공원을 만들어서 누구나가 집 앞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 갈 수 있게 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정부가 준비해야 될 공간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에 석탄을 버리고 새로운 대체 에너지를 찾을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석유와 수소, 당시 기술로는 동등한 수준이었는데요. 당시 석유의 생산비가 아주 조금 더 싸다는 이유로 석유를 선택했습니다. 지금의 결과가 지금 모습이죠. 시대에 따라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은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올바른 비전을 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바랍니다. 미래는 가만히 있으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하는 겁니다. 그 창조는 작은 선택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는 세대가 되어서 후대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SBS 보도본부 미래팀의 취재파일은 SBS의 대표 사회 공헌 지식 나눔 플랫폼 <SBS D포럼>을 중심으로 SBS 보도본부 미래팀원들이 연중 돌아가며 작성합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있는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들을 전하는 뉴스레터 <SDF다이어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SBS 미래팀의 취재파일을 접하고 싶은 분은 <SDF다이어리>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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