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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KAL 007 격추사건 진실…강대국의 이기주의 속 약소국으로의 설움

'그것이 알고 싶다' KAL 007 격추사건 진실…강대국의 이기주의 속 약소국으로의 설움

SBS 뉴스

작성 2021.03.21 03: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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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그것이 알고 싶다 KAL 007 격추사건 진실…강대국의 이기주의 속 약소국으로의 설움
그때 희생자들의 곁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20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사라진 269명의 흔적 - KAL 007 격추사건 미스터리'라는 부제로 KAL 007 격추사건을 조명했다.

지난 1983년 9월 1일 뉴욕에서 김포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격추당했다. 이 사건으로 269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이는 'KAL 007 격추사건'이라 불리었다.

민간 여객기가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것은 사상초유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눈치만 보는 상황이 되었고, 이에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희생자들의 시신이나 유품 조차 유가족들에게 돌아오지 못했고 이에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한 유가족은 의문의 신부로부터 아버지의 렌터카 카드를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유준선 씨는 아버지의 사인과 아버지의 회사 이름이 적힌 카드를 보고 아버지 것이 확실하다 확신했다. 그는 "오랫동안 침수된 상태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라며 "어떻게 구했냐고 신부에게 물어보자 사할린에서 정보원을 통해서 입수를 했다고만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유준선 씨는 아버지가 생존해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그리고 유준선 씨의 아버지 유품이 발견된 사이트에 또 다른 희생자의 유류품인 명함도 함께 올라와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명함의 주인공인 손수자 씨의 가족을 만났다. 유가족은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유류품을 보며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더 고초가 있었겠냐"라고 "어머니의 명함이라면 유족한테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 곳에서 발견이 됐는지 모르겠다"라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던 지난 2월 16일 38년 만에 이 사건과 관련된 미국 국무부의 기밀문서가 공개됐다. 기밀문서에서 미국 측은 "이 사건은 소련에 대한 인식을 뒤집을 기회가 될 것이다. 핵전쟁의 나락으로 더 가까워지고 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라고 했고, 소련 측은 "대한항공 비행기는 아마 스파이 미션을 수행 중이었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사건 당시 소련은 칼 007기가 미국의 첩보 활동을 위해 일부러 소련 영공을 침입한 적기라 자국의 방위를 위해 격추했다고 했으며, 미국은 소련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무고한 민간인 수백 명을 몰살한 악의 축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비밀문서의 논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입장이었다.

지난 1992년 러시아 대통령 옐친은 KAL 007기 격추 당시에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던 블랙박스를 선물로 내놓았다. 그러나 그들이 건넨 것은 실제 블랙박스 속 기록장치를 빼놓은 박스 껍데기였다. 그리고 그들은 기록장치는 프랑스로 보내 분석을 했고 분석을 모두 끝낸 후 우리나라로 돌려주었다.

블랙박스 분석 결과 KAL 007기는 정상 항로를 이탈해 소련의 주요 군사 기지가 밀집한 곳을 가로질러 사할린 즈음에서 격추됐다. 이는 조종사가 직접 항로를 설정하는 헤딩 모드로 비행 중이라는 것. 이에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INS 자동항법장치의 항법 시설을 이용하지 헤딩 모드는 사용하는 기장이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헤딩 모드로 바꾼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추론을 내놓았고 대부분 고의로 헤딩 모드를 이용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음성 녹음을 통해 조종사들이 비상 상황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다며 "잘 가고 있구나 하고 갔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기체 뒤에서 작은 폭발음을 들린 새벽 3시 26분 비상 상황에 대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에 전문가는 "미사일 이런 충격에 한꺼번에 기압이 빠져나갈 수 있다. 산소마스크가 떨어지고 기내 방송이 나간다"라고 했다. 실제로 공격받은 지 1분 44초 만에 녹음파일은 끝이 나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레이더 자료에 따르면 KAL 007기는 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은 후 최소 9분 동안 비행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전문가는 "긴 꼬리 날개 쪽을 맞았는데 상승 하강 좌우가 안 되니까 계속 상승하게 된 것이다"라며 "엔진은 이상이 없으니 조종사가 유압이 사라지기 전까지 조종을 했을 거다"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피격 이후 9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 이에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CIA의 극비 문서에서는 KAL 007기가 격추 후 바다에 비상착륙 시도, 착륙 성공 확률 매우 높다라고 주장해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이에 유가족들도 의혹이 사라질 수 없었다.

이에 제작진은 유준선 씨에게 연락을 취해 아버지의 카드를 찾았다고 밝힌 신부를 찾았다. 해당 신부는 작년 5월 사할린에서 카드와 명함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거 갖고 있는 분은 미국에 있다. 버트 슈로스버그라는 분이다. 그분이 그걸 전달받았을 때 나에게 연락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제작진은 버트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탑승객 전원 사망이라는 공식 결과를 믿지 않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몇 가지 탑승객 생존설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연방정부의 한 간부에게 이것들을 받았다. 소련 측은 이 카드를 물에서 찾았다고 했으나 얼룩이 없다"라며 "물 안에서 꺼내 온 것이 아니라 헬리콥터나 국경 감시정에 의해 생존자들과 함께 사할린에 온 것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 당시 보관하던 습득물을 러시아 정부에서 일하는 이로부터 입수했다는 것. 또한 그는 실물을 갖고 싶었으나 가질 수 없었고, 자신을 도와주던 정보원은 사망했다고 했다. 그리고 정보원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제작진은 생존설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전문가는 블랙박스에 기록된 마지막 순간의 KAL 007기의 속도와 각도 등을 가지고 비상 착륙을 시도할 경우의 결과를 예측했다.

그는 "이 정도면 항공기가 완전히 대파되어 큰 조각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비슷한 상황의 추락 영상을 토대로 "물속으로 총알 쏘듯이 들어가는 상태가 되는 거다. 물 안에서 파편이 처지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됐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항공기 사고는 해수면 추락의 경우가 육지 추락보다 충격이 훨씬 더 크다고 설명했다.

법의학자는 "기체가 해수면을 향해 추락했다고 하면 받는 물리적 충격량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있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바다가 북쪽 아닌가. 해수 온도가 20도 이하가 되면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하루 이상 버티지 못한다"라고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시신이나 유류품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의아하다고 했다. 법의학자는 "2,30%는 뜨고 나머지는 가라앉고, 부패가 되면 뜨는 게 일반적이다"라며 "열심히 찾았다면 시신을 많이 찾았을 거다"라고 주장했다.

1992년 한국을 찾은 한 러시아 기자는 사건 직후 소련이 블랙박스와 탑승객들의 시신과 유품을 대량 수거하고도 조직적인 은폐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민간 항공기 격추 사실을 부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증거를 은폐했다는 것.

그렇다면 제작진이 실체를 찾고 있는 카드와 명함 사진은 사건 당시 유해 은폐 과정에서 누군가가 습득한 유품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제작진은 전문가를 통해 이미지 정보를 분석을 시도했다.

전문가는 "2009년과 2012년 각각 다른 컴퓨터에서 캡처와 복사 편집이 반복된 사진이다"라며 "떠돌아다니는 사진을 캡처해서 가공해서 썼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제작진은 러시아 언론사와 온라인 정보를 뒤져 한 러시아 방송사가 2007년에 제작한 다큐 영상 찾아냈다. 해당 다큐는 소련이 격추한 것은 미국의 정찰기일 뿐이며, KAL 007기 격추 사건은 소련을 궁지에 몰기 위해 조작된 사건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큐 속에는 제작진이 출처를 찾던 희생자들의 유류품이 등장했다. 이에 해당 방송국에 연락해 사진의 출처를 묻자 "러시아 NTV 방송국에서 구매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제작진은 저작권을 가진 또 다른 방송사 측에 연락하자 자료를 조회하고 담당자를 알아보는데 최소 한 달이 걸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영상 속에는 83년 발견된 다른 탑승객들의 유품도 등장했다. 그리고 앞서 제작진이 아버지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던 유가족이 보여주었던 유사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이미지 전문가는 영상 속 사진과 유가족이 보여주었던 사진을 대조해 두 사진 속 주인공 유사성이 굉장히 높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영상 속에서 한진경 씨의 사진은 어떤 이유로 등장했을까? 영상은 한진경 아버지가 미군 정찰기에 타고 있다가 실종된 한국인 첩보원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한진경 씨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외항선을 탔던 인물이며 휴가를 맞아 한국으로 돌아오던 중으로 영상에서 주장하는 것과 진실은 완전히 달랐다.

영상 전체 내용을 살펴보니 이 주장을 가장 먼저 한 이는 프랑스 항공 전문가 미셸 브론으로 그는 KAL 007기가 미국의 정찰기라는 이야기를 해서 유명해진 이였다.

그리고 미셸 브론이 1995년 출간한 책의 표지는 바로 이 한진경 씨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해당 사진은 프랑스인 기자가 러시아 군 관계자에게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제작진은 저자와 출판사에 연락을 취했으나 어느 곳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얼마 후 희생자 한성석 씨의 딸 한진경 씨에게 이 사실들을 설명했다. 한진경 씨는 영상 속에 사진이 나오자마자 바로 알아봤다. 그는 "내 사진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책과 영상 속의 주장에 대해 알리자 그는 "제 사진 한 장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꾸며 낼 줄은 몰랐다. 제가 이걸 모르고 지나갔으면 저희 아버지는 그냥 스파이일 뿐이잖냐. 내 사진이 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돌아가신 분을 여러 번 죽인 거다"라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이에 제작진은 책 표지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건넸다. 한진경 씨는 "이렇게까지 찾아내실 줄 몰랐다. 아버지가 갖고 계시던 유품 하나가 저희에게는 아버지다"라며 자신의 사진이 음모론의 증거로 사용되며 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는 "그래서 저희한테 돌아오는 게 없었나 보다. 주인이 우리잖냐. 물어본 적도 없고 사진을 찾으려고 주인을 찾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사할린의 한 매체에서는 KAL 007기 사건 희생자들의 유류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1983년 9월 1일 KAL 007기 격추 사건을 접한 기자들이 가장 먼저 특파된 것은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홋카이도 왓카나이였다. 당시 한 달 동안 왓카나이에서 취재를 했다는 김재봉 기자는 "소련은 그때 59척으로 수색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소련 배가 완전히 뺑 둘러싸고 수색을 하고 그 뒤에서 일본 배들이 망원경으로 관측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 기자들이 보도한 기사에는 당시 왓카나이 해역까지 흘러 온 잔해와 유류품 사진도 다수 포함되었고 그 숫자가 무려 1059점에 달했다. 그러나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은 캐나다 승객의 신분증과 대만 승객의 명함, 그리고 한국인 모자의 여권 사진이 전부였다.

그리고 사건 발생 한 달 후 아웅산 사건이 터지며 국내 언론의 관심은 KAL 007기 사건에서 멀어졌다.

이에 반해 당시 28명의 희생자가 나온 일본 언론은 KAL 007기 격추 사건에 관심을 쏟았다. 당시 취재 기록을 책으로 펴낸 다카시 기자는 "유해 회수, 유품에 대해서 일본의 보도기관은 사건 직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라며 "모네론섬 부근의 해류가 어떤 상태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시 일본은 일본인 승객의 신체 정보를 미리 조사해 대조 작업에 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일본의 외무성이 집요하게 유품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 결과 2회에 걸쳐 소련이 일본으로 유품을 양도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당시 어떤 노력을 했나. 제작진은 외교사료관에서 관련 기록을 찾았다. 총 1800여 장에 달하는 문서에는 소련에 수색과 유품 인수단 참여를 거부당한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약소국의 무력함으로 점철된 자료들이었다.

결국 이후 우리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항공기 잔해 70여 개와 의류 7개와 책 2개 정도만 전해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소유자를 확인할 수 없는 물건들 뿐이었다.

1991년 러시아 언론을 통해 갖가지 폭로가 나오자 취재를 시작한 일본의 가와카미 PD. 그는 당시 러시아 군 당국의 허락을 받아 KAL 007기 추락 지점의 수중 촬영까지 했다. 그리고 그가 촬영한 영상에는 거대한 타이어, 구부러진 금속 파편, 전보기의 외벽, 의류, 구명조끼 등 항공기의 잔해와 함께 사람의 유골도 그대로 포착되었다.

이에 가와카미는 "소련은 처음부터 KAL 007기를 미국의 스파이 정찰기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민간 여객기의 승무원과 탑승객의 유품이 나오면 불리한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라며 그들이 유류품을 전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추측했다. 그리고 그는 83년 수색을 했던 소련 잠수부들이 사고의 잔해나 유품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가와카미는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인지 목적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기념으로 가져왔을 수도 있다"라며 시신 일부와 유품을 사진으로 보관하고 있는 선장, 수거품 리스트를 작성한 잠수부도 있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아마 돈벌이가 목적이 아닐까"라며 러시아의 한 비디오 가게에서 기묘한 비디오를 하나 사서 돌아오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시신의 일부를 봤다는 증언이 담긴 비디오였다. 당시 수십 엔 정도의 값이었는데 소련 사람들에게는 큰돈이었을 거다"라며 "조금이라도 입에 풀칠하려고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련은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해 사고 유류품 방치했고 냉전 이후 러시아인들은 유류품을 돈벌이로 삼았다는 것. 또한 진실을 숨긴 것은 소련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국이 정찰기를 수차례 보낸 것은 사실이라는 것.

이에 많은 이들은 미국은 KAL기의 항로 이탈을 봤음에도 왜 지켜보고만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한 유가족은 "단순한 항로 이탈의 사고냐, 정보활동을 한 것이 감춰진 거냐. 정보성으로 감춰진 것이 있다면 미국도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CIA 문서에는 민항기를 이용한 정찰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공개된 문서에서 미국은 KAL 007기 격추 사건이 소련에게 좋은 기회라며 "국제적 분노를 호율적으로 이용하고 다자간 연대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는 "당시 미국 정부가 군비 확충을 하고, 소련에 제재를 가하고 국민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이 바로 이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소련의 일관된 KAL 007기 첩보설 제기에 대해서는 "무고한 민간 항공기를 격추한 게 아니고 스파이 행위를 한 항공기의 응징했다는 것은 자국민이나 공산권에 선전할 수 있는 주제가 된다"라며 "이것으로 자국의 이익을 삼았을 것이고 이는 국제 정치의 냉정한 룰이다"라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며 제작진은 아버지의 렌터카 카드를 발견하며 제보를 해 온 유준선 씨에게 진실을 전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허탈해하며 "대한항공에서는 빠른 합의를 종용하고, 국가도 이 사건을 갖고 용공이니 반공이니 이데올로기적 도구로만 사용했을 뿐 실질적 사후처리나 그런 것들이 명확하게 정리된 것은 없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당시 UN 가입국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요구도 하지 못했던 정부, 그러나 이후 UN 가입국이 되었음에도 진실 규명에 대해서는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블랙박스 공개 당시 유족들은 러시아 측에 진실 규명을 다시 한번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유족 대표로 러시아 관계자들을 만났던 유인학 씨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다. 우리가 계속 문제를 제기해도 뭐가 되지 않았다"라며 "우리나라도 당시에는 가급적 러시아 중국과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래서 유족회도 잘 되지 않았다"라고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국제적 참사를 자국의 정치적 이해에 맞게 사용하려 했던 강대국의 이기주의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약소국 대한민국은 많은 희생자를 남겼다며 "냉전이 끝나고 진실을 찾을 기회가 왔음에도 희생자와 유가족 곁에는 대한민국이 없었다"라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유족들을 위해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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