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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숙제 나중에 할 거니까 안 한 건 아니라는 LH

[취재파일] 숙제 나중에 할 거니까 안 한 건 아니라는 LH

3월 16일 SBS 보도 관련 LH 설명 자료에 대한 재반박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21.03.20 09: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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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숙제 나중에 할 거니까 안 한 건 아니라는 LH
지난 16일 SBS는 최근 LH 투기 의혹 사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 '허술한 토지 보상시스템'과 그 실태를 리포트 2개에 걸쳐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부패예방 추진단 점검 결과, LH 등 공공기관이 토지 보상 과정에서 234억 원을 부당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 가운데 114억 원을 환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취재 결과 8달이 지난 현재까지 한 푼도 환수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120억 원은 직원 실수로 환수조차 불가능하게 됐지만 담당 직원은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경고조치만 받았다는 사실도 함께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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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이후 LH가 해명 자료를 냈습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점검사항에 대해선 올해 감사계획에 반영되어 있으며 내부 감사를 통해 조치할 계획이라는 취지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LH의 해명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저희 취재 내용과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먼저 LH 측 해명을 원문 그대로 싣고,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SBS 보도 관련 LH 설명 자료
(LH 입장)
① (환수조치 관련) 총 234억 중 환수 대상으로 지적된 금액은 114억 원임. 이 중 LH 해당 금액은 81억 원이며, 환수를 위해서는 허위 경작, 불법 영업 여부 등에 대한 자체 감사 후 조치가 필요한 사항으로 "총 234억 한 푼도 못 건진다"는 보도와는 차이가 있음

1. '자체 감사 후 조치가 필요한 사항'이라 '한 푼도 못 건진' 건 아니다?


LH 측 설명의 취지는, 환수를 위해선 추가적인 자체 감사를 거쳐 조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234억 한 푼도 못 건진다'는 보도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완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고 "하고 있거나 혹은 할 예정일뿐, 안 한 건 아니다"는 식입니다.

황당한 건 SBS 보도 어디에도 '못 건진다'는 단정적 표현이나 앞으로도 환수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은 없다는 겁니다. 보도의 핵심은, 지난해 7월 국무조정실 지적 이후 8달이 지난 현시점까지 환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언론 보도는 어디까지나 현재를 기준으로 합니다. 추가로 자체감사가 필요하고 234억 가운데 120억 원만 환수가 불가능하다는 내용도 보도에 모두 담았습니다.

영농보상비 부당 지급
환수 조치와 같은 후속 조치는 해당 기관의 자체 감사를 거쳐 최종 확정되는 것이 맞습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의 점검은 어디까지나 상위 기관의 1차 조사에 가까우며, 후속 조치는 해당 기관이 구체적이고 엄밀한 실증을 통해 진행하는 게 절차입니다. 그러나 진행 중도 아니고 심지어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는 자체 감사를 핑계로 "한 푼도 못 건진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변명이나 마찬가집니다. 지금까지 숙제를 안 했다고 지적했는데, 앞으로 할 거니까 안 한 건 아니라고 우기는 식입니다.

결국 LH의 위 해명은 '못 건졌다'를 '못 건진다'로 교묘히 바꾼, 말장난에 가까운 해명으로 보입니다. '못 건졌다'를 '못 건진다'로 실수로 잘못 읽었는지, 의도적으로 바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느 쪽이든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잘못 읽었다면 실력 부족을 탓할 일이지만 일부러 그랬다면 더욱 심각한 일입니다. 당장의 비판을 모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쓴 셈이기 때문입니다.
 
② (자체 감사 계획 수립) 점검사항이 통보된 '20.8월에는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추가 감사 시행이 불가하여 '21년 연간 감사계획수립(2월)에 반영하였고, '21.5월 감사 실시 예정으로 "자체 감사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름

2. LH 자체 감사, 정말 5월에 할 수 있나?

LH 엉터리 토지보상 논란
LH는 부당 지급된 보상금을 환수하기 위한 자체 감사가 올해 5월에 잡혀있기 때문에 '자체 감사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정확하고 솔직한 답변은 아니라는 게 기자의 의견입니다.

관련 자체 감사가 올해 감사계획에 반영돼 있고 원래 5월에 할 예정이었다는 건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추가 취재 과정에서 "5월에 잡혀 있긴 하지만 이번 LH 투기 의혹 사태로 여력이 없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복수의 LH 관계자의 발언을 교차 확인하고 기사화에 이른 것입니다. LH는 수감기관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윤덕 의원실의 관련 질의에도 같은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랬던 LH가 이제 와서 "5월에 감사 실시 예정"이라고 보도자료를 낸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입니다.

감사 실시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감사계획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도 엄밀히 맞지 않습니다. 적어도 공공기관의 업무와 관련해서 '예정'과 '확정'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인원과 예산, 기간과 범위를 확실히 정하고 어느 날 시작하겠다는 계획 정도는 나와야 비로소 확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LH 측은 얼마나 진행됐냐는 물음에 "진행된 것이 없다" 라고 답했습니다. 연간 감사계획에 한 줄 잡아놨다고 해서 확정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답변은 역시 면피에 가까운 답변입니다.

LH의 최초 답변처럼, 이번 투기 의혹 사태로 난장판이 된 LH가 과연 예정대로 5월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만약 본 보도로 인해 예정대로 5월에 감사가 이뤄지게 된다면 그 역시 언론 보도의 순기능일 겁니다. LH가 부당 지급한 돈은 세금은 아니지만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돈입니다. 기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대한 많이 환수되길 바라는 건 당연합니다. 실제 5월에 제대로 감사가 이뤄지는지 지켜보고 후속 보도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③ (점검사항 조치 계획에 따라 이행) 국조실 지적 의견에 대한 조치 계획을 이미 제출('20.9월)하였고, 보상제도 개선 부분은 즉시 반영하였으며, 수사 의뢰 조치도 완료('20.11월) 되었음

3. '자체 감사 후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수사 의뢰는 완료?


네, 기자 역시 취재 과정에서 국조실 지적 의견에 대한 LH 조치 계획을 입수해 읽어봤습니다. 월별로 빼곡히 적힌 보상제도 개선 방안도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이때 제출한 개선 방안이 얼마나 이행됐느냐 여부입니다. 지난해 9월 제출 이후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 부분 역시 계획만 잡았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리고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건이 터졌습니다. 일부 직원들이 보상을 노리고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버드나무 묘목을 빼곡히 심은 사진이 온 국민을 공분케 했습니다. 허술한 보상제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직원들이 벌인 일입니다. 그러고도 과연 보상제도 개선을 언급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LH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일들은 보상제도 개선책이 마련되기 전에 일어난 것도 있고 그 이후에 일어난 것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제대로 된 감시와 점검이 이뤄졌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리란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지적 이후 LH의 보상제도 개선책 마련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수사 의뢰 조치 역시 현시점에서 가능한 일부에 대해서만 이뤄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사 의뢰 조치를 완료'했다고 표현한 건 역시 눈 가리고 아웅 또는 자기모순에 가까운 답변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입니다. 이 사안과 관련해 국무조정실이 수사 의뢰를 지시한 건 허위 경작 사실이 확인된 토지주나 경작자 등 251건입니다. 그런데 LH는 당장 이 설명자료 1번에서 '허위 경작, 불법 영업 여부 등에 대한 자체 감사 후 조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수사 의뢰를 하려면 허위 경작 여부 등에 대해서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LH가 수사 의뢰 조치를 완료한 것은 지적 사항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나아가 앞에선 자체 감사 후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어떤 건 이미 완료했다고 말하는 건 불리한 건 빼고 유리한 것만 앞세우는 식입니다.
 

LH, 국민적 분노와 의혹에 대처할 자세 돼 있나

LH 반대 시위
'1: 29: 300의 법칙'이란 법칙이 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고도 부르는데 수많은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했더니 1명의 사망자가 나오기 전에는 비슷한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있었고 또 그 이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다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모든 대형 사고에는 그전에 같은 원인에서 비롯한 사전 징후가 반드시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국무조정실 부패예방 추진단의 점검 결과는 이번 LH 투기 의혹 사태의 예고이자 전조였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은 이번 LH 사태가 단순히 몇몇 직원들의 일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소수가 직업적 윤리나 양심,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채 금전적 이익만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이 시류를 타고 이제야 까발려지고 있을 뿐입니다. 모든 사회적 현상 뒤에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합니다. 허술한 보상시스템이 이번 사태의 한 원인이 된 건 두 말할 필요 없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기사에는 다 반영하지 않았지만, 국무조정실 점검으로 드러난 LH 등의 보상 실수는 허술하다 못해 한숨이 나올 정도입니다. 인터넷으로 항공사진만 봐도 숲인 걸 알 수 있는데 농지라는 말만 믿고 보상금을 지급하거나, 현장 확인 한 번 없이 쓰레기가 잔뜩 묻힌 땅에 정상적으로 보상금을 줬다가 쓰레기 처리 비용 수억 원을 추가로 들이기도 했습니다. 120억 가까운 돈을 부당 지급하고도 환수조차 못 하고 통째로 날리게 된 사연은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이번에 투기 의혹이 불거진 LH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보상업무에 종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서류에 벼농사짓겠다고 해놓고 묘목 잔뜩 심은 바로 그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어차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았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LH 투기 의혹 사태가 이렇게 크게 불거진 배경에는 가뜩이나 부동산 광풍으로 고통받고 잇는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LH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된 직원들은 일부일 뿐,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직원들이 더 많을 거라고도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데 LH의 책임이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기된 의혹에는 솔직하고 성실하게 답한 뒤 해결책을 찾는 게 책임을 지는 길입니다. 당장의 비난을 회피하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내놓는 건 결코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습니다. 저 역시 부당 지급된 보상금이 제대로 걷히고, 효율적인 토지 보상시스템이 자리 잡힐 때까지 계속 취재하고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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