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직장이 감옥처럼 느껴진다면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가 감옥과 같이 느껴진다면, 특히나 직업에 소명의식을 느끼며 삶의 보람을 찾던 사람이라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제가 인터뷰했던 중학교 영어교사 A 씨가 그랬습니다. 지난해 학기 중 휴직 신청을 냈는데, 하루에도 몇 시간씩 머물러야 하는 교실이 감옥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TV나 인터넷상에서만 봐왔던 공황장애를 처음 겪었어요. 교실이 감옥 같이 느껴졌고, 수업을 하려고 하면 호흡이 차서 수업을 못하고 식은땀이 흘러서 교단 앞에서 설 수가 없었어요." - A 교사 인터뷰
A 씨가 이처럼 정신적 고통을 고소하게 된 건 지난해 한 학생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입니다. 물론, A 씨는 이건 계기였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8년 복직했는데, 복직 이후 학교에서 발생한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그동안 누적돼온 것들이 지난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면서 교단을 잠시 떠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A 씨는 직무상 요양 승인을 신청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업무 중 발생한 질병 때문에 요양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받기 위해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공단에 신청하게 된 겁니다. 다행히 신청은 받아들여졌는데, 문제는 오히려 그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위로가 아닌 각서를 요구한 사립학교
A 씨는 '직무상 요양 승인'을 받은 뒤에 학교에도 '업무상 질병 휴직'을 신청했습니다. A 씨는 사립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용권자의 허가가 필요했는데, 사립학교 이사회에서는 A 씨의 신청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사회는 A 씨가 직무상 요양 승인 신청서 내용을 문제 삼았습니다. A 씨는 신청서상에 있는 '근무 조건 및 환경'란에 "여교사로서 남중, 남고에 있으면서 여러 번의 심각한 교권 침해 및 성차별 발언 관련 사항이 있었지만, 지난 2년 간 관련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으며 특히 최근의 사건을 바탕으로 모든 트라우마가 일어나게 됨"이라고 적었는데, 이사회는 이 부분을 걸고넘어진 겁니다.
한 이사는 "(A 교사) 복직을 못할 시 우리 법인을 상대로 심각한 소송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정상 허락을 하기보다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 후 의결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언급했고, 이사장은 업무상 질병 휴직을 허가하기 전에 법적인 문제가 없음을 먼저 확인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학교 측은 치료 중이던 A 씨에게 수시로 연락하며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그냥 불법적인 각서를 계속 요구하더라고요. 연속적으로 전화를 했고, 회유를 했고. 그렇지만 불법적인 일에 저는 가담할 생각도 없고, 제가 만약 그 각서를 쓴다면 이제까지 학교에서 일어난 부조리에 대한 모든 걸 덮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A 교사 인터뷰
사립학교에만 있는 '업무상 질병 휴직' 거부권
A 씨가 각서를 거부하자, 학교 측은 논의 끝에 A 씨가 낸 신청도 거부했습니다. 이사회 측에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제가 직접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A 씨가 아픈 건 업무와 관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A 씨가 사학연금공단에 제출한 직무상 요양 승인 신청서를 두고 이사회에서
논의한 결과, A 씨가 아픈 건 업무 때문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 학교 법인 이사
사학연금공단에서는 직무와 관련성을 인정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학교 이사회에서 논의해보니 다른 결론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판단하면 될 일을 왜 A 씨에게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는지도 물었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답변은 이사회가 아닌 실무자들이 한 일이란 것이었습니다.
"각서를 요구한 건 이사회의 결정이 아닙니다.
실무자들이 일을 쉽게 처리하려다가 발생한 일로 생각합니다." - 학교 법인 인사
이사회 측의 이런 답변을 듣고 나자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직무상 요양을 승인받은 교사의 '업무상 질병 휴직' 신청을 사립학교는 거부할 권한이 있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립학교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일하는 교직원이라면 공무원 재해 보상법에 따라 인사혁신처로부터 직무상 요양을 인정받은 경우 학교는 '업무상 질병 휴직'을 명해야 합니다(국가공무원법 및 시행령). 하지만 사립학교는 직무상 요양을 인정받더라도 휴직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학교 정관에서 명하도록 사립학교법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겁니다.
또다시 홀로 맞서야 하는 A 교사
업무상 질병 휴직과 일반 질병 휴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휴직기간에도 임금이 100% 보장되고, 휴직기간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각서를 써달라는 학교 측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가 A 씨는 불이익을 받게 된 겁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법도 한데, A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달 초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부당한 휴직 처분에 대한 취소를 청구한 상태입니다. 소청심사위원회에서 A 씨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정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결론은 올해 안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길고 지난한 과정에서 A 씨는 또다시 홀로 맞서야 합니다.
차라리 각서를 쓰고 업무상 질병 휴직을 인정받아 스스로를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면 어땠을까. 인터뷰를 마칠 때쯤 내심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마지막까지 후회나 타협보다는 오히려 가르침을 받는 학생,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 다른 누군가를 우선했습니다.
"저는 이런 부조리와 맞서야 조금이나마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지만 다른 학교의 저와 비슷한 사례의 선생님들도 구제받을 수 있고,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와 희망을 갖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 A 교사 인터뷰
A 씨가 꿈꾸는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위로와 응원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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