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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립학교에만 있는 '업무상 질병 휴직' 거부권

어느 날 내 직장이 감옥처럼 느껴진다면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가 감옥과 같이 느껴진다면, 특히나 직업에 소명의식을 느끼며 삶의 보람을 찾던 사람이라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제가 인터뷰했던 중학교 영어교사 A 씨가 그랬습니다. 지난해 학기 중 휴직 신청을 냈는데, 하루에도 몇 시간씩 머물러야 하는 교실이 감옥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0107 취재파일용_안상우] 교실

"저는 TV나 인터넷상에서만 봐왔던 공황장애를 처음 겪었어요. 교실이 감옥 같이 느껴졌고, 수업을 하려고 하면 호흡이 차서 수업을 못하고 식은땀이 흘러서 교단 앞에서 설 수가 없었어요." - A 교사 인터뷰

A 씨가 이처럼 정신적 고통을 고소하게 된 건 지난해 한 학생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입니다. 물론, A 씨는 이건 계기였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8년 복직했는데, 복직 이후 학교에서 발생한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그동안 누적돼온 것들이 지난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면서 교단을 잠시 떠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A 씨는 직무상 요양 승인을 신청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업무 중 발생한 질병 때문에 요양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받기 위해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공단에 신청하게 된 겁니다. 다행히 신청은 받아들여졌는데, 문제는 오히려 그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위로가 아닌 각서를 요구한 사립학교


A 씨는 '직무상 요양 승인'을 받은 뒤에 학교에도 '업무상 질병 휴직'을 신청했습니다. A 씨는 사립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용권자의 허가가 필요했는데, 사립학교 이사회에서는 A 씨의 신청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사회는 A 씨가 직무상 요양 승인 신청서 내용을 문제 삼았습니다. A 씨는 신청서상에 있는 '근무 조건 및 환경'란에 "여교사로서 남중, 남고에 있으면서 여러 번의 심각한 교권 침해 및 성차별 발언 관련 사항이 있었지만, 지난 2년 간 관련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으며 특히 최근의 사건을 바탕으로 모든 트라우마가 일어나게 됨"이라고 적었는데, 이사회는 이 부분을 걸고넘어진 겁니다.

한 이사는 "(A 교사) 복직을 못할 시 우리 법인을 상대로 심각한 소송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정상 허락을 하기보다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 후 의결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언급했고, 이사장은 업무상 질병 휴직을 허가하기 전에 법적인 문제가 없음을 먼저 확인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 학교 측은 치료 중이던 A 씨에게 수시로 연락하며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사립 학교 업무상 질별 거부

"그냥 불법적인 각서를 계속 요구하더라고요. 연속적으로 전화를 했고, 회유를 했고. 그렇지만 불법적인 일에 저는 가담할 생각도 없고, 제가 만약 그 각서를 쓴다면 이제까지 학교에서 일어난 부조리에 대한 모든 걸 덮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A 교사 인터뷰
 

사립학교에만 있는 '업무상 질병 휴직' 거부권


A 씨가 각서를 거부하자, 학교 측은 논의 끝에 A 씨가 낸 신청도 거부했습니다. 이사회 측에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제가 직접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A 씨가 아픈 건 업무와 관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A 씨가 사학연금공단에 제출한 직무상 요양 승인 신청서를 두고 이사회에서
논의한 결과, A 씨가 아픈 건 업무 때문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 학교 법인 이사


사학연금공단에서는 직무와 관련성을 인정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학교 이사회에서 논의해보니 다른 결론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판단하면 될 일을 왜 A 씨에게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는지도 물었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답변은 이사회가 아닌 실무자들이 한 일이란 것이었습니다.
 
"각서를 요구한 건 이사회의 결정이 아닙니다.
실무자들이 일을 쉽게 처리하려다가 발생한 일로 생각합니다." - 학교 법인 인사

이사회 측의 이런 답변을 듣고 나자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직무상 요양을 승인받은 교사의 '업무상 질병 휴직' 신청을 사립학교는 거부할 권한이 있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립학교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일하는 교직원이라면 공무원 재해 보상법에 따라 인사혁신처로부터 직무상 요양을 인정받은 경우 학교는 '업무상 질병 휴직'을 명해야 합니다(국가공무원법 및 시행령). 하지만 사립학교는 직무상 요양을 인정받더라도 휴직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학교 정관에서 명하도록 사립학교법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겁니다.
 

또다시 홀로 맞서야 하는 A 교사


업무상 질병 휴직과 일반 질병 휴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휴직기간에도 임금이 100% 보장되고, 휴직기간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각서를 써달라는 학교 측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가 A 씨는 불이익을 받게 된 겁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법도 한데, A 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달 초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부당한 휴직 처분에 대한 취소를 청구한 상태입니다. 소청심사위원회에서 A 씨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정 소송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결론은 올해 안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길고 지난한 과정에서 A 씨는 또다시 홀로 맞서야 합니다.

차라리 각서를 쓰고 업무상 질병 휴직을 인정받아 스스로를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면 어땠을까. 인터뷰를 마칠 때쯤 내심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마지막까지 후회나 타협보다는 오히려 가르침을 받는 학생,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 다른 누군가를 우선했습니다.

"저는 이런 부조리와 맞서야 조금이나마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지만 다른 학교의 저와 비슷한 사례의 선생님들도 구제받을 수 있고,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와 희망을 갖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 A 교사 인터뷰

A 씨가 꿈꾸는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위로와 응원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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