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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지점을 위한 본사는 없다

[인-잇] 지점을 위한 본사는 없다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SBS 뉴스

작성 2021.03.18 11: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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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지점을 위한 본사는 없다
# 지점을 위한 본사는 없다

판매와 관련한 일로 △△조합에 가는 중이다. 평소 같았으면 반드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곳은 이미 회사와 포괄적 업무제휴를 맺은 곳이기 때문이다. 부담없는 마음으로 가는 도중 그 조합에게 업무 관련 어떤 설명을 해 줘야 할지 실무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덜컥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실무자 말이, 그 조합 담당자가 왠지 우리를 꺼려하는 것 같다고 한다. '이거 설마 과거 그 ○○기관처럼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안녕하십니까. 지사장 입니다. 이번 업무제휴는 조합원들에게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조합에서 탁월한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지사장님, 우리 지역은 이 사업에 참가하기 어렵습니다."

"예?!"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해당 지역 조합 측에 우리 사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지만 결국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허탈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도중 실무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분개하였다.

"참 화가 납니다. 어떻게 조합에서 조합원에게 득이 되는 이번 거래를, 자기네 조합에 돈은 안되고 일은 많아진다는 이유로 안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치 공적 업무를 하는 사람이 '급한 일이라고요? 그런데 나 퇴근해야 하니 내일 오세요'하는 얘기와 똑같잖아요. 제가 잘못 이해한 건가요?."

난 씩씩대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과거 ○○기관과의 거래 성사 불발 사례를 얘기해 주었다. "그 때 그 기관도 그랬어. 본청에서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며 한참 욕하다가 결국 자기네만 힘들어지는 이 거래는 하기 어렵다고 하더군. 그때 나도 자네처럼 황당해 했지. 그러다가 꾀를 내어 본청에 이 일을 말했어. 그랬더니 예상대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곳에서 거래를 하자고 하더군. 그 순간엔 쾌재를 불렀지. 하지만 결국 계약서 종이만 날리는 꼴이었어. 실제 거래는 한 건도 없었으니까. 누군가 그러더라고.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듯이 조합원과 협회원을 위한 단체는 없다고 말이야. 그게 현실이지."

사무실에 돌아왔다. 밀린 업무를 하고 있는데 지점장과 실무자가 얼굴이 벌개져서 들어왔다.
"최근 본사에 보고한 이 건 말입니다. 사업부문장도 좋은 제안이라고 칭찬을 하셨었죠. 그런데 이 제안을 실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우리가 확인해서 정리해 달라고 하네요.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자기들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우리한테 다 시키니. 다른 것도 마찬가지예요. 말도 안되는 지침만 내리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하니. 이거 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지점 직원들은 화가 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본사 스텝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뻔히 아는 나에겐 또다른 측면이 보였다.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예?"

"조합원을 위한 조합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다 그렇지는 않지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없어요. 그렇다면 지점을 위한 본사는요? 역시 없어요. 기본적으로 본사는 경영층을 위해 존재하죠. 사장이 내린 오더, 사업부문장이 내린 오더, 담당 임원이 내린 오더를 처리하기에도 본사 팀장과 팀원은 숨이 막히는 지경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점에서 뭔가를 제안해서 또 일이 늘어났다? 그러면 그들 입장에선 그 일을 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게 되죠. 이런 건 우리들도 똑같아요. 우리가 바쁘면 대리점에서 요청한 것들을 깔아뭉개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조직원을 위한 조직은 없다는 말들이 돌고 있는 거죠."

이렇게 본사를 위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 주고 그들을 돌려 보낸 후 난 혼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차 싶은 구석이 있다. '내 말이 올바른 얘기라고 할 수 있나? 공공기관은, 조합은, 본사는 국민을, 조합원을, 지점을 위해 일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지 않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말을 했으니 말이야. 보직자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을 갖고 회사 일을 하면 말단에 있는 관계자들은 어디 한곳 기댈 곳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결국 사고가 나게 마련이지.' 그리곤 이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을 해본다.

'정신 차리자. 다른 곳은 모르겠고 내가 맡은 지사는 내가 혹은 직원이 좀 불편해도 우리의 근간인 협력업체를 위해 할 일이 있으면 기꺼이 그 일을 하는 그런 지사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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