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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보태가충', '그돈충'의 도발과 보복소비 뒤의 좌절

[깊은EYE] '보태가충', '그돈충'의 도발과 보복소비 뒤의 좌절
요즘 소비자들이 상품 구매에 앞서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 곳이 어딜까. 단연 인터넷 카페일 테다. 특히 목돈이 들어가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내구성 소비재를 사려 할 때는 취미나 지역, 직업, 관심 등의 연으로 탄생한 카페 구성원들에게 "이 상품 어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답에는 그 상품을 직간접으로 겪어본 경험자의 실속 있는 정보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느낌이나 선입견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질문이 내걸리면 알거나 모르거나 답변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답변의 패턴 중에 질문자와 다른 답변자를 짜증 나게 하는 새로운 유형이 생겼다.

이른바 '그돈충'과 '보태가충'이다. 아마도 답변에 화난 질문자나 다른 답변자들이 혐오의 감정을 담아 곤충을 의미하는 '-충'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합성어를 만든 듯하다. 전자는 주로 "그 돈이면 00을 산다"는 표현을 일삼는 이들에 대한 지칭이며, 후자는 "돈 더 보태서 차라리 00을 사라"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것이다.

인터넷 카페마다 '그돈충'과 '보태가충'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들에 대한 짜증 어린 비난도 틀림없이 발견된다. 몇 군데 카페에서 댓글들을 추려봤다.
 
「"그 돈이면 무슨 무슨 차를 산다"는 그돈충들 정말 짜증 난다.」
「그돈충 X짱남 ㅋㅋㅋㅋ 몇 년에 애써서 산 건데.ㅠ」
「보태가충 때문에 모닝 사려다 벤틀리 사게 됐네요.ㅠ」
「자나깨나 보태가충 조심… 자칫하면 파산!」
「보태주지도 않을 거면서 보태가라는 웃기는 사람들….」

질문을 던진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한번 추정해보자. 문득 그 상품이 떠올라서 딴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질문하기 전에 수없이 정보를 찾고 나름대로 가늠해본 뒤,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과 동의를 얻기 위해 카페에다 물었을 테다.

여기에 "그 돈이면 차라리 외제차를 사겠다"든지, "조금만 더 보태서 윗등급을 사라"고 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게 분명하다. 댓글을 다는 다른 사람들 역시 질문자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고, 자신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그돈충'과 '보태가충'의 도발에 함께 신경이 곤두선다.

명품가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배려심 없는 '그돈충'과 '보태가충'의 도발에 기존의 판단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매를 앞두고 질문한 사람 역시 '그 돈이면…?', '더 보태서…?' 하는 유혹을 겨우 넘어왔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에 따른 소비심리 억제가 임계점에 이르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명품과 고급차에 대한 이른바 보복소비가 폭발하는 요즘은 '그돈충'과 '보태가충'의 유혹이 한층 더 스멀거리며 다가올 듯하다.

한 가지 슬프게 다가오는 생각은 이런 현상이 단지 사람 못 만나고 여행 못 가고 쇼핑 못해서 생기는 단순한 소비 욕구의 분출로만 볼 수는 없다는 거다. 여기서 보복소비의 이면에 깔린 우리 사회 젊은 세대의 심리를 한 번쯤 짚어보게 된다. 예전에는 상식이고 일반적이었던 생애 변동의 과정이 이제는 밟기 힘든 특별한 과정이 돼 버린 데 대한 좌절과 체념이 이런 현상의 배경에 깔린 것은 아닐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취업이 안 되고, 명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아끼고 살아도 치솟는 물가에 항상 쪼들리며, 아이를 낳으라는 온갖 정책적 약속을 믿었는데 키워보니 엄청난 양육비에 허리가 휘고, 덜덜거리는 소형차를 타며 꿈꾸었던 내 집 마련의 희망은 집값 급등에 자꾸만 멀어져가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미래의 희망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면, 선택은 현재에 충실해지는 것일 테다.

좌절, 실망감. 이상화와 평가절하 (사진=유토이미지)

그러기에 '그돈충'과 '보태가충'이 설치는 카페에서 인생 선배랍시고 "지금은 아끼고 저축해서 내 집 마련하고 애들 키운 뒤 여유되면 좋은 차 사고 명품 사라"는 예전의 상식을 설파하면, 세상 바뀐 줄 모르는 기득권 중장년으로 낙인찍혀 비난이 쏟아진다.

어떻게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지는 만큼, 과잉 소비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듯싶다. 그 상황에서 소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예전에 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현재 소비에 투입하고, 그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돈충'과 '보태가충'으로 변신해서 대리만족을 위해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으로도 짐작해봄 직하다.

현재를 여력에 맞게 즐기고 미래도 꿈꿀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과거의 인식에 의하면 무슨 대단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냥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회이다. 반대로 미래의 희망이 없기에 현재에 모든 걸 불태우는 사회는 비정상적 사회였다.

안타깝게도 현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정치적 구호가 넘쳐나고 있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는 젊은 층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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