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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암 걸리고 바뀐 내 인생, 행복합니다"

[인-잇] "암 걸리고 바뀐 내 인생, 행복합니다"

김범석│서울대 암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저자.

SBS 뉴스

작성 2021.03.12 11:01 수정 2021.03.12 15: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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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암 걸리고 바뀐 내 인생, 행복합니다"
"기사님, 롯데호텔로 빨리 좀 부탁합니다."

그날은 학회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예정된 시각보다 늦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병원 앞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는 백미러로 나를 쓱 보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 김범석 선생님 아니세요?"

한 번 만나고 다시 볼 일 없는 택시 운전사가 내 이름을 불러서 깜짝 놀랐다. 얼굴을 슬쩍 쳐다보니 내 환자였던 이였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5년쯤 전이었다. 그때 그는 폐암 4기였던 환자의 '보호자'였고, 다시 4년쯤 전에는 본인이 '환자'가 되어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이미 위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것과는 별개로 흉선암 수술도 받았는데, 그 흉선암이 재발되어 재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완치가 되었다. 보호자를 환자로 다시 만나는 일도 흔치 않은데 그런 그를 택시 안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몹시 반가웠다.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라 해야 할 정도였다. 학회장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혔다. 그는 반가웠는지 평소 외래에서 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들려주었다.

"암에 걸려보니 그렇더라고요. 내가 암에 걸렸다고 소문이 나니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 놈들 중에도 자기도 암인데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며 찾아오는 놈도 있고, 병원비에 보태라며 봉투에 몇 만 원 넣어 가지고 오는 놈도 있고, 고기 사준다고 나오라는 놈도 있고요. 그런 놈들은 전화라도 해주는 게 참 고마웠어요.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놈이 있는가 하면, 제가 암 보험 쪼끄맣게 들어 놓은 게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놈도 있어요. 암을 앓고 나니까 인간관계가 싹 정리되데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친구가 아니었던 놈들은…. 암에 안 걸렸으면 언젠가 그놈들에게 크게 사기당했을 거예요.

저는 아들만 둘인데 애들도 그래요. 어려서 품 안에 끼고 있을 때나 내 자식이지 이제는 커서 장가 보내놨으니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요. 지들도 각자 마누라 눈치도 봐야 할 거고, 살면서 신경 써야 할 다른 것도 많을 거 아녜요? 자식이라고 뭐든 기대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애들이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전화가 오면 와서 좋고 전화가 안 오면 바쁜가 보다 하고 지냈어요. 그러니 별로 싫은 소리 할 일도 없어요. 애들도 남이다 생각하고 정 떼야 한다고 생각하니 싫은 소리를 할 이유도 없고요. 그러니까 오히려 애들이 저를 더 편해 해요. 막상 암에 걸려서 병 수발이 필요한데 결국 시중드는 사람은 마누라더라고요. 마누라한테 고맙죠 뭐.

저는 이미 4년 전에 죽은 목숨이었어요. 그때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수술받고 방사선 치료받고 항암 치료받아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이미 제삿밥 세 번은 먹었을 거예요. 저는 복이 많아서 좋은 선생님 많이 만났어요. 선생님들 시간 뺏을까 봐 외래에 가도 그냥 빨리 나와요. 점심 때 식사도 못 하고 외래 보시는 것 같고, 나보다 더 안 좋은 환자들도 많은 것 같은데 오래 하는 상담은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죠. 저야 이제 특별히 아픈 데 없으니 검사 결과 괜찮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나와요. 밥 잘 먹고 안 아프고 검사 결과 괜찮다는데 더 물어볼 것도 없고요. 그런데 오늘 택시에서 이렇게 선생님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제가 오늘 말이 많더라도 이해해주세요. 대신 제가 오늘 롯데호텔까지 빨리 모실게요."

창밖으로 보이는 도로 상황으로 보아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병원에서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종각역으로 가는 길은 원체 혼잡스럽지만 그날따라 더 심했다. 그러니 목적지까지 빨리 가겠다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건 단지 나를 위한 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우연히 만나 반갑고 신이 난 것 같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듯했다. 가까스로 안국역을 지날 때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택시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인데 죽은 사람이 귀신처럼 다니는 거다 생각하니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예전에는 택시를 몰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사람을 보면 지랄지랄 욕을 한 바가지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그러려니 내버려둬요. 갑자기 껴들든 말든 그래봐야 한 5분 지나면 어차피 잊어버리고 신경도 안 쓰게 되거든요.

택시 몰면서도 매일 소풍 나오는 것 같아요. 날씨 좋은 날은 손님이 없어도 그냥 드라이브 여행 다닌다고 생각해요. 손님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혼자 드라이브 다니는 거고, 그러다가 배고프면 기사식당 맛있는 데 찾아가서 밥 먹고요. 남들은 택시 운전한다고 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이 나이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 몇 개 안 돼요. 이 일이 좋은 게 정년이 없거든요. 택시 운전한다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보면 속으로 그래요. '너는 무슨 일 하는지 모르겠지만 너도 내 나이까지 일할 수 있나 보자' 하고요.

저는 절대 무리해서 일 안 해요.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버는데 마누라도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 둬요. 암에 걸리고 난 뒤로는 돈 벌어오라는 소리 안 해요. 집에서 빈둥대지 않고 아침밥 먹고 나가서 저녁 때 들어오고, 한 달에 한 번은 월급봉투라고 손에 쥐어 주니 별 이야기 안 하더라고요. 삼식이 아닌 것만 해도 어디예요. 암 수술 세 번 받고 나니 마누라도 그러더라고요. 제가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아프지나 말라고.

참, 저희 집은 제사도 다 없앴어요. 며느리들이 싫어하는 건 눈치 보게 되더라고요. 아니,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중요한데 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들이 싸우더라니까요? 집안 분위기 안 좋아지는 것 보고 제가 그냥 다 없애자고 했어요. 나 죽으면 내 제사 때문에 애들이 계속 싸우겠구나 싶더라고요. 살아서 잘해준 것도 없고 물려줄 재산도 없는데 죽고 나서도 애들 힘들게 하면 내가 나쁜 놈이죠. 그래서 저희는 명절 때 제사 안 지내고 그냥 놀러 다녀요. 그러니까 다들 좋아해요. 명절 때 더 열심히 와요. 올해는 어디로 놀러 갈지 지들끼리 계획해서 와요. 비용은 똑같이 나눠서 N분의 1이에요. 사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구경하며 지내기에도 인생이 짧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싸우면서 지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유서도 다 써놨고 죽으면 화장해서 강가에 뿌리라고 했어요. 죽은 사람 챙기지 말고 그냥 너희들끼리, 산 사람들끼리 즐겁게 지내라고요. 나중에는 지들도 그러고 싶대요. 택시 모는 제 동료 중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도 있어요. 아침만 해도 반갑다고 인사했는데 저녁때 장례식장에서 만나니 어찌나 허무하던지…. 그렇게 갑자기 가지 않고 죽을 준비까지 끝내 놨으니 저는 얼마나 다행이냐 싶더라고요. 행복한 거죠. 안 그래요, 선생님?"

그가 그렇게 물었을 때 택시는 막 청계천을 지나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진심으로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암 걸리고 나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선생님, 고맙습니다. 암 치료 잘해주셔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아들놈이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인생이 리셋된 것 같다고. 허허."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배운 것이 별로 없었고 남들은 한 번도 안 걸리는 암을 두 번이나 걸렸다. 암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고 암이 다시 도져서 항암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또 어떻게 암이 재발될지 모르는 처지였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뒷좌석에서 택시비를 내고 몸을 일으키는 남자가 백미러 끝자락에 스쳐 지나갔다. 아픈 데 없이 건강한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불리는 대학을 졸업했고 의사로서 나름 인정받고 있으며 교수라는 안정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외적인 조건을 놓고 보자면 운전석의 그보다 못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순수하게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행복이 어떤 절댓값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와 나의 간극에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그 사실이 조금 더 나를 슬프게 했다. 그것은 조건의 차이가 아니라 근원적인 부분이었으므로.

인생 리셋이라. 그와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며 생각했다. 전자제품에 리셋 버튼이 있듯이 가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생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 버튼을 누르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주 잘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물론 어디까지나 꿈같은 이야기다. 지나온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리셋 버튼이란 건 없다. 결국은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는 이야기다. 그 같은 변화가 삶을 대하는 깊이와 여유 있는 태도가. 그럼에도 나 자신을 다독였다. 아직은 내가 그 같은 리셋 버튼을 만나지 못한 것뿐이라고. 언젠가는 나 역시 그 같은 순간을 무엇인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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