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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쑤신 마클 인터뷰 파문 일파만파…'왕실 폐지론' 다시 불붙나

벌집 쑤신 마클 인터뷰 파문 일파만파…'왕실 폐지론' 다시 불붙나
영국 해리 왕자 부부 인터뷰가 일으킨 파문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한때 왕실을 '현대화'하는 기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던 이들 부부가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아직 과거에 머문 왕실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미 언론을 중심으로 다시 나온다.

왕실로선 일원의 사생활 문제로 얼룩졌던 29년 전 '끔찍한 해'를 올해 다시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도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다애이나 왕세자빈의 불화가 공개된 데다가 앤 공주가 이혼하고 앤드루 왕자와 부인 사라 퍼거슨이 별거하기 시작한 1992년을 '끔찍한 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왕실과 해리 왕자 부부간 갈등이 극적인 방식으로 노출된 가운데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영국의 여론이 갈리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 메가톤급 폭탄 투하한 해리부부…왕실 폐지론 다시 나오나 영미 언론은 해리 왕자 부부가 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방영된 오프라 윈프리와 인터뷰로 왕실에 '폭탄'(Bombshell)을 떨궜다고 평가한다.

일반에게 가장 충격은 해리 왕자의 부인 메건 마클이 왕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밝힌 점이다.

마클은 첫아들 아치가 태어났을 때 왕실에서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 등에 대한 우려와 대화들이 오고 갔다"라면서 왕실이 아치를 왕자로 삼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마클의 인종차별 폭로에 더해 해리 왕자는 정신건강 문제에 왕실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떤 도움도 못 받았다고 했다.

부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왕실의 '전근대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국 CNN방송은 "부부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사건들은 유연성이 결여된 왕실이 21세기를 사는 대다수 보통사람이 겪는 문제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라고 지적했다.

왕실의 낡은 모습은 폐지론에 다시 불을 붙일 전망이다.

특히 이번 폭로의 주체가 해리 왕자 부부여서 폐지론에 더 힘이 실릴 수 있다.

ABC방송은 "해리 왕자 부부는 한때 왕실 쇄신과 현대화의 해답처럼 여겨졌다"라면서 "그런 이들이 왕실로선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를 언급했다"라고 짚었다.

왕실 역사학자 케이트 윌리엄스 리딩대 교수는 "해리와 마클은 왕실 현대화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슈퍼스타였다"라면서 "부부가 왕실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느낀 이유가 왕실이 인종차별과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해 부부를 지원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 점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왕실을 없애자는 주장이 새롭지는 않다.

왕실에서 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이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왕실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에 따라 상징적으로만 존재하지만,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국가에 왕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일각에는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실을 겨우 건사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94세로 1952년부터 재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찰스 왕세자에게 왕위를 넘기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인기가 왕실 폐지론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혀 두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영연방 국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만 물러나면 영국 왕을 상징적으로나마 국가수장으로 두는 헌법을 고칠 기세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물론 보수파를 중심으로 왕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회적 논란이 빚어졌을 때 통합을 요청하는 여왕의 한 마디로 논란을 종식할 실마리가 생기고 왕실이 관광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실용적인 판단들도 존재한다.

왕실은 2020-21 회계연도에 정부로부터 8천590만파운드(약 1천359억원)의 교부금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액수이긴 하지만 이는 왕실이 2년 전 회계연도에 왕실 소유의 재산에서 나온 수익(3억4천350만파운드)을 정부에 양도한 뒤 그 가운데 4분의 1을 돌려받은 것이다.

영국 정치인들에겐 왕실은 건들기 쉽지 않은 문제다.

해리 왕자 부부 인터뷰 직후 보리스 존슨 총리는 관련 질문을 받고 구체적인 답변은 내놓지 않은 채 "여왕과 국가와 영연방을 통합하는 여왕의 역할을 최고로 존경해왔다"라고만 답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총리실 대변인은 9일 존슨 총리가 인터뷰를 시청했다고 확인하면서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해리 왕자가 왕실을 공중분해시키고 있다는 잭 골드스미스 상원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도 총리실은 논평하지 않았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사안과 '거리 두기'를 하는 모양새다.

영국만큼 영국 왕실 문제에 관심을 두는 미국의 여론은 대체로 해리 왕자 부부 편인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때 축시를 낭독한 흑인 여성 시인 어맨다 고먼을 비롯해 저명인사들이 인종차별 폭로에 주목하며 마클을 지지했다.

◇" 젊은층은 해리 왕자 부부 편"…왕실은 "사적으로 다룰 것" 이제 관심은 왕실의 대처다.

영국에 본사를 둔 국제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영국인 4천6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보니 '여왕과 왕실에 더 공감한다'라는 응답자가 36%로 해리 왕자 부부에 더 공감한다는 응답자(22%)보다 많았다.

영국내 여론은 일단 왕실에 더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다만 18~24세 젊은 응답자 사이에선 해리 왕자 부부에 더 공감한다는 응답자 48%로 여왕과 왕실에 더 공감한다는 응답자 15%보다 확연히 많았다.

'아무에게도 공감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자는 21%였다.

25~49세 사이에서는 '아무에게도 공감하지 않는다'가 32%로 최다였고 해리 왕자 부부에 공감한다는 쪽(28%)이 여왕과 왕실 쪽(24%)보다 근소하게 많았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델타폴의 조 트와이먼 국장은 "젊은 층에선 마클 지지도는 (마클보다) 훨씬 전통적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 지지도와 비슷해 더 나이가 든 사람들이 마클을 싫어하는 점과 대비된다"라면서 "왕실이 여성권이나 정신건강에 대해선 완고하게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는 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세대에겐 어떤 할머니(여왕)를 볼 때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이유가 그저 그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여왕'이기 때문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인종차별 등 젊은 층이 심각히 여기는 문제에 왕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왕실이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폐지론이 더 크게 불거질 수 있다.

왕실은 9일 해리 왕자 부부 인터뷰가 방송되고 40시간 만에 첫 입장을 내놨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대신해 낸 3문장짜리 짧은 성명에서 왕실은 "제기된 문제들, 특히 인종 관련된 것은 매우 염려스럽다. 일부 기억은 다를 수 있지만, 이 사안은 매우 심각하게 다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가족 내부에서 사적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텔레그래프는 여왕이 '기억은 다를 수 있다'라고 언급함으로써 해리 왕자 부부의 인터뷰 내용이 사실인지 측면에서 전부 동의할 수 없음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 등은 '사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한 부분을 들어 해리 왕자 부부가 제기한 인종차별 주장에 '선을 그으려' 시도했다고 짚었다.

(연합뉴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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