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양회 블루'…베이징 미세먼지 '심각' 단계
중국에는 '양회 블루'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회 시기가 되면 중국 정부는 인위적으로 베이징 주변의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거나 차량 통행을 통제해 말 그대로 파란 하늘을 '만듭니다'. 정 안되면 인공 강우를 동원하기도 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중국은 그런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 '양회 블루'가 실종됐습니다. 5일 오전 10시 기준 베이징의 공기 질 지수(AQI)는 232로 중국 전역에서 세 번째로 나빴습니다. 중국의 AQI는 6단계로 분류되는데, 0~50 우수, 50~100 양호, 100~150 약한 오염, 150~200 중간 오염, 200~300 심각, 300~500 엄중 단계 순입니다. 232는 최악 단계 바로 밑, 심각 단계에 해당합니다. 베이징의 일부 지역은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1세제곱미터당 200㎍(마이크로그램)을 넘기도 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이런 태도 변화에는 코로나 사태가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리커창 총리는 5일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 이상으로 제시했습니다. 당초 지난해처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지 않거나, 두루뭉술하게 목표 구간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는데, 예상외로 수치를 못박았습니다. 그만큼 경제 성장에 자신이 있다는 걸 과시한 셈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해 중국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주요 국가 중에선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했지만, 2.3% 성장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1976년 이후 4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올해도 전 세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어 6% 이상 성장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당장 이번 양회에서부터 겉치레 대신 경기 부양책을 택했다고 봐도 그리 억측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번 양회는 4일부터 오는 11일까지 8일간 진행됩니다. 과거처럼 공기를 맑아지게 하려면 양회가 시작되기 최소 며칠 전부터 공장 가동과 차량 이동을 통제해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공장을 멈추고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기보다 공기가 조금 안 좋아지는 것을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중국 도시 여러 곳이 봉쇄되고 경제 활동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공기 질이 좋아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공기가 좋아졌으니 요 며칠 안 좋아도 별 문제없지 않겠느냐는 심리도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전인대에서 환경 보호 정책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5일 업무보고에서 리커창 총리는 "오염 방지와 생태 보전을 강화하고 환경의 질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세먼지 통제를 강화하고 북부 지역난방 연료의 70%를 청정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고형 폐기물 수입 금지를 유지하고 양쯔강에서 10년 동안 어업을 금지하겠다고 했습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감소세로 전환시키겠다고도 했습니다.
리커창 총리가 이 정책을 발표하는 날, 하필 베이징 공기는 최악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푸른 하늘'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무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 이상 경제 성장과 푸른 하늘 지키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과연 중국이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