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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헤엄 귀순' 뒤늦은 처벌…엉터리 감시장비 놔두고 사단장만 희생양

[취재파일] '헤엄 귀순' 뒤늦은 처벌…엉터리 감시장비 놔두고 사단장만 희생양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21.03.05 09:17 수정 2021.03.05 13: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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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헤엄 귀순 뒤늦은 처벌…엉터리 감시장비 놔두고 사단장만 희생양
지난달 16일 발생한 22사단 헤엄 귀순사건에 대한 인사조치가 어제(4일) 내려졌습니다. 사건 발생 16일 만이고, 조사 결과 발표 9일 만입니다. 사단장은 보직해임 했습니다. 22사단을 지휘하는 8군단장은 엄중경고 조치됐습니다. 이 밖에 여단장, 대대장, 합동작전지원소장은 징계위에 회부됐고, 병사 1명을 포함한 장병 18명에 대한 처분은 지상작전사령부에 위임했습니다.

지난달 23일 합참이 귀순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인사조치 내용을 내놓지 않자 솜방망이 처벌이 예상됐는데 사단장이 책임지는 선에서 정리된 것입니다. 덕분에 8군단장은 경고에 그쳤고, 지상작전사령부와 합참도 책임을 모면했습니다.

군단장이 보직해임된 재작년 6월 삼척 목선 귀순사건, 그리고 사단장 보직해임과 함께 수도군단장과 해병대사령관을 동시에 엄중경고한 작년 7월 강화도 월북사건보다 이번 처벌의 잣대는 많이 무뎌졌습니다. 처벌의 공정성이 흔들린 것입니다. 인사조치의 발표를 늦추는 만큼 문책의 기준을 쇄신할 줄 알았는데 별다른 개선안도 없었습니다. 스치는 바람에도 울어대는, 못 믿을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뒤로하고 사단장만 희생양으로 던져졌습니다.

일정 간격으로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22사단의 해안 철책
● 카메라 1대 21만 번 오경보…"나를 처벌하라"

헤엄 귀순한 북한 남성은 22사단 감시카메라에 10번 잡혔습니다. 처음 8번은 포착됐지만 감시병들은 몰랐고, 특히 그중 2번은 경고음과 경고 신호도 떴습니다. 경계 실패입니다. 하지만 경계에 실패한 장병들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군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군이 조사해봤더니 22사단의 한 감시카메라는 1년에 21만 번이나 경보를 울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루에 575번, 시간당 24번 경고 신호를 냈습니다. 거의 전부가 바람에 흔들려서 생긴 사실상 오경보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감시카메라 1대가 연간 약 6만 번, 시간당 7번씩 오경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초는 이런 감시카메라 9개를 관리합니다. 9분할 모니터에 9개 카메라가 송출하는 영상을 띄워놓고 영상 감시병이 지켜보며 경계하는 방식입니다. 1시간에 63번씩 오경보가 울리는 셈입니다. 하태경 국회 국방위원이 "감시카메라는 양치기 소년"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핵심인 감시 카메라
이름은 과학화 경계시스템인데 참 비과학적입니다. 다른 부대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11월 이른바 월책 귀순사건 때도 진동 감지센서가 작동 안 했고, 작년 7월 강화도 월북사건 때도 촬영된 영상의 육안 식별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2016년 10월 구축된 이래 2018년 10월까지 전체 시스템에서 발생한 고장이 5천225건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인데도 뚫리면 국방부는 예의 보직해임자를 찾습니다. 22사단장은 "어찌 됐든 철책이 뚫렸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히 사단장은 보직해임이다", "용사들은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경로에 분명히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단장으로서 희생양을 자처하며 부하들을 감쌌고 보직해임이라는 무거운 조치를 받아들였습니다.

● 처벌은 공정한가

인사조치가 늦춰지자 군 안팎에서 수군거림이 많았습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여론 무마용으로 과도하게 처벌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솜방망이가 돼서도 안 된다", "기준을 분명하게 마련하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발표는 본보기로 보직해임자 한 명 내세우고 흐지부지하게 끝났습니다. 장군 한 명의 보직을 박탈했으니 이전과 다름없는 여론 무마용 조처입니다. 위로는 군단장 경고에서 끝났으니 다른 사례에 비춰 솜방망이 같은 성격도 강합니다. 지나치게 가혹했던 강화도 월북사건에 대비되면서 군 처벌의 불공정성을 키웠습니다. 국방부는 인사조치의 새로운 기준도 제시하지 못했으니 시간 끌기의 명분도 잃었습니다.

악마의 책임 경계 구역을 맡고 있는 육군 22사단, 해병대 2사단 등은 비과학적인 과학화 경계시스템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머잖아 허망하게 뚫리고 누군가는 보직해임될 터. 책임을 묻기 전에 책임을 다할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국방부는 조속히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바로 잡아 놓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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