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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아이오닉5 인기 폭발이 곪은 상처 터뜨렸다

생산인력, 협력업체, 정비업계의 구조조정 본격화

[깊은EYE] 아이오닉5 인기 폭발이 곪은 상처 터뜨렸다
현대자동차가 새로 출시한 전기차 아이오닉5의 사전 계약 대수가 신기록을 달성했다. 종전 기아 카니발이 갖고 있던 2만 3천6대의 사전 계약 최다 기록을 아이오닉5는 공개 첫날 2만 3천760대로 가뿐히 경신한 것이다. 해외도 난리다. 눈높이 높기로 유명한 유럽 시장에서도 한정판 사전 계약 물량보다 3배가 넘는 신청이 몰렸다.

전기차 본격 보급 단계의 변곡점은 흔히 주행거리 500km 돌파 시점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연기관차가 연료를 가득 채웠을 때 달릴 수 있는 평균 거리가 500km 안팎이기 때문이다.

주행거리가 이를 돌파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불편함이 없는 보편적인 차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 근래 나오는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400-600km에 이르는 걸 보면, 지금의 폭발적 관심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폭발적인 인기 이면에서 그동안 가려진 채 곪아왔던 상처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기능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내연기관차와 크게 다른 전기차의 양산이 초래하는 산업과 노동의 구조조정이 그것이다.

현대 전기차 아이오닉5

● 올 들어 노조 반발 본격화

부품수가 3만여 개에 이르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전기차는 1만 5천여 개로 절반에 불과하다. 제작과정이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조립라인에 들어가는 인력 소요가 적어져 전기차 시대에는 생산인력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같은 원론적 예상이 현실로 돼가고 있다. 최근 며칠 새 아이오닉5가 양산 차질을 빚을지 모른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첫 소식은 지난 1월에 들려왔다. 전기차 부품의 외주화 방침에 반발한 근로자들의 저지로 아이오닉5 테스트용 차량의 생산라인이 멈춰 섰다는 뉴스였다. 이윽고 이달에는 생산라인에 배치하는 근로자의 수를 놓고 노사가 입장 차를 보여 양산계획에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근로자의 반발은 중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반영이다. 우리보다 고용이 유연한 외국의 경우 전기차에 따른 구조조정은 진행형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은 전기차를 비롯한 미래차 개발계획에 따라 2023년까지 8천 명을 감원하고 같은 그룹의 아우디 역시 2025년까지 생산인력 9천 명을 줄인다고 한다. 이 밖에 BMW가 내년까지 독일에서만 최대 6천 명, 미국의 GM도 전 세계에서 1만 4천 명의 감원계획을 추진 중이다.

노조의 입김이 거센 현대차는 생산 소요인력의 변화를 감안해, 해마다 정년퇴직 인원만큼의 라인 감축을 통해 사실상의 감원을 시행하고 있다.

● 부품 협력업체의 생존 위기

또 한 가지 숨어있던 상처는 협력업체의 생존 어려움이다. 자동차 산업은 협력업체가 많게는 7차 밴드까지 이어지는, 산업 연관 효과와 고용 창출이 매우 큰 산업이다. 그런데 수년 전 통계청 조사를 보면, 9천여 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가운데 전기차 등장에 따라 사라질 운명에 처한 업체는 3천여 개로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비극적 운명이 빤히 보이는데도 피하기가 힘들다. 국내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완성차업체로부터 시작해 하청과 재하청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속 구조로 묶여 있다. 그래서 생산 품목 조정이나 업종 전환은 꿈도 꿀 수 없고, 독점적 하청 구조에 따른 수익 저하로 연구개발 또한 엄두도 낼 수 없다. 이들 업체들은 전기차의 대중화 시대가 가급적 늦춰지는 것을 바랄 뿐이다.

내연기관 관련 부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업체의 경우에도 전기차에 적합한 방향으로 생산 방식이나 소재를 개발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완성차 업계가 개발한 부품만 받아서 양산해오다 보니, 독자 연구개발 역량이 떨어지는 데다 정책적 지원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카센터 정비소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 긴장하는 정비업계…"수리할 게 없다"

정비업계 역시 생존 위기에 몰리고 있다. 전기차는 그 특성상 부품이나 소모품 등 정비 항목이 적은 데다, 구조적으로 고장 가능성까지 낮아 정비나 소모품 교환으로 수익을 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정비업계는 하소연한다.

정비 전문지인 카테크의 분석에 따르면, 정비업계 주요 매출원 가운데 하나인 파워트레인의 경우 내연기관차는 부품수가 170개 정도이지만, 전기차는 35개에 불과하다. 그만큼 고장 요인이 적은 셈이다.

또, 엔진오일 교환처럼 내연기관차에서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소모품 교환도 전기차에선 크게 줄어든다. 기껏해야 환기필터나 워셔액 같은 비교적 저렴한 부품의 교환 또는 보충이 필요할 뿐이다. 여기다 수리 비용이 큰 엔진이나 트랜스미션이 전기차에는 아예 없기 때문에 정비업체 입장에선 큰돈 벌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전기차 부품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배터리의 경우 수리가 불가능한 모듈 형태로 돼 있어 어차피 경정비업체에서는 손을 댈 수가 없다.

● 전직 및 교육 대책 시급

어차피 전기차 대세는 거스를 수 없고 이제는 가속도까지 붙고 있다. 정부의 보조금 덕분에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다가서는 부담도 한결 가볍다. 전기차 역시 날로 진화하고 있다. 엉성하던 구성이 이제는 첨단 디자인에 편의성까지 갖춰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전기차 보급화는 그 어떤 산업 변화보다 빛과 그늘의 명암 차가 큰 사건이다. 멋진 신차에 환호하고 정책 효과에 자화자찬만 할 게 아니라, 그늘에서 신음하는 근로자와 협력업체, 그리고 정비업계 종사자를 위한 전직과 업종 전환 및 교육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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