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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칼럼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북적북적]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칼럼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21.02.28 07:29 수정 2021.03.05 17: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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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81 :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칼럼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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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 용감하고 신중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왜 불행할까?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정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 요즘엔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프로 정신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없다면 그 나라는 필사적으로 영웅적 인물을 찾기 마련이고, 그렇게 찾은 사람에게 금메달을 나눠 주기에 급급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었다."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中, 2015년 1월 9일)

움베르토 에코는 2016년 2월에 사망했습니다. 벌써 5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 [푸코의 진자]가 최근 재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고 싶은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도 5주기를 앞두고 나왔습니다. 에코의 '유작 에세이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책입니다. 그가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이탈리아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꾸준히 연재했던 칼럼들 중에서 55편을 추려 묶었습니다. 에코가 직접 선정에 관여하고 서문을 썼는데, 밀레니엄 이후 기고했던 수많은 칼럼 중에서 "일부는 지금 세상에 내놓아도 그리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중 일부는 지금 세상에 내놓아도 그리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 칼럼은 아무리 풍부한 배경지식과 대단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고 나면 빛이 바래 보이기 쉽습니다. 일단 환경 자체가 달라지는 탓이 클 테고, 애초에 글 자체가 그렇게 수준 높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대단히 훌륭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훌륭한 통찰일 수록, 널리 회자되고 여러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마음의 양식으로 소화돼서 더이상 새롭지 않은 상투적인 생각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또다른 배경지식의 일부가 돼 버리면서, '고루하다'는 말을 듣기 딱 좋게 돼버리는 겁니다.

그만큼 정보의 확산이 빠르고, 광범위하면서, 원조와 후발이 헷갈리고,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는 시대입니다. 어떤 글이든, '지금 읽기에 딱 좋다!'는 느낌을 주는 글로 남아있기 어렵습니다.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트렌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퍼지는 만큼 신속하게 증발해 버립니다.

이런 세상을 말년까지 누구보다 예리하게 관찰했던 에코가 그 삶의 마지막에 "또 한 번 읽어도 괜찮을 거요." 하며 스스로 골라낸 '우리 시대'에 대한 단상들. 겸손의 표현과 자신감, 시대에 대한 인식을 멋지게 아우른 참 근사한 서두입니다. 그다운 위트가 짐짓 배어 나옵니다. 바로 이런 느낌의 문장들이 책 전체에 걸쳐 가득합니다.

"…다만 어리석은 일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자신의 성취나 희생, 또는 그 밖의 좋은 특성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온 다음날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는 [야, 어제 너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신은 안다, 내가 바보라는 걸' 中, 2010년 12월 23일)

여기 실린 글들은 우리 시대의 이른바 '유동 사회'적인 특성들을 집중적으로 고찰합니다. 유동 사회란 –역시 이 책 속 에코의 표현 중에서 골라 인용하자면- "모두가 정체성 위기와 가치 혼란에 빠져 방향타가 되어줄 기준점을 상실한" 사회입니다. 이른바 '포스트 포스트 모던'이라고 하는 가속도 붙은 '과도기'가 2천년대에는 모바일을 비롯한 혁신 테크놀로지까지 만났죠. 우리를 고정시켜줄 닻 없이 모든 것이 표류하고 있다 보니, 역설적으로 휴대폰과 소셜미디어로 가로줄 세로줄이 짜인 덫 안에 갇혀 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번에는 입 속에 돌을 넣은 것이 아니라 핸드폰을 넣었다. 내게는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새로운 범죄 조직은 더 이상 촌스럽지 않다. 대신 세련되고 기술적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재갈 물린 염소 따위로 만들지 않고 사이보그로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누군가의 입에 핸드폰을 쑤셔 넣는 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잘라 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을 훼손하는 일일 테니까." ('핸드폰을 삼키다' 中, 2008년 5월 16일)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면 좋을까. 답은 물론 에코에게도 없습니다. 하지만 노인이 되어서 2천년대에 진입한 에코가 특유의 콕콕 찌르는 풍자와 유머감각으로 우리의 시대를 해부한 문장들을 읽는 게 제게는 기묘하게 편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시대 속 우리들의 표류는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잠깐 붙들고 쉴 수 있는 단단한 바위 같은 글들이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트렌드를, 그야말로 트렌드에 함몰되지 않은 지점에 닻을 내린 시선과 지성으로 쿡쿡 찔러주는 게 은근히 시원합니다. '이런 어른들, 시선들이 하나씩 떠나갔고 앞으로도 떠나겠구나.' 일종의 그리움 같은 마음도 문득 올라옵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공포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의 뇌수가 흘러내린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행히도 그게 마지막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을 본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일 그때 내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청소년처럼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지 모른다. 그 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그 대신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억 속에 저장했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기억 속의 영상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른들은 영원히 구제할 길이 없다."
('딸기 크림 케이크' 中, 2012년 7월 10일)

소재나 레퍼런스가 서구사회에 치우쳐져 있긴 하지만, 대체로 많은 분들이 아시거나 기억할 만한 이슈들입니다. 저는 참 공감한 대목들이 많았습니다. '쿡쿡' 실소가 절로 나오는 문장들도 말년까지 여전합니다. 오늘만 살 것처럼 굴러가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잠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할아버지'가 문득 그리웠던 분들, 흡족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새 성큼 다가온 봄에도 [북적북적] 함께 해주세요.

*출판사 '열린책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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