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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불량 판결문 AS, 국민 손에 달렸습니다

[인-잇] 불량 판결문 AS, 국민 손에 달렸습니다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21.02.26 10:58 수정 2021.02.26 11:4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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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물품구입계약과 서비스 용역계약을 맺고 살아가고 있다. 계약서 한 장 쓰지 않았는데 무슨 계약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버스, 지하철,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모두 엄연히 계약이다. 그 계약을 통해 우리는 좋은 물건과 더 편리한 서비스를 기대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마트에서 산 물품을 집에 와서 딱 열어봤는데 부품 하나가 빠진 '불량'일 수도 있고, 내가 사 먹은 음식이 하필 '불량'식품이라 배탈이 날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미팅 참여차 기차표를 끊었는데 제시간에 기차가 오지 않는 '불량' 서비스 때문에 미팅을 놓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AS를 요구한다.

그런데우리가 법원에서 받은 판결문이 불량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에서 AS를 받아야 하며, 제대로 된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법 법정 재판 재판관 판사 (사진=픽사베이)
● 모두가 누릴 수 없는 3심제

일단 우리나라는 3심제를 택하고 있다. 1심의 불량 판결문을 2심인 항소심, 더 나아가 3심인 상고심 대법원 재판에서 AS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 세 번이나 재판을 받으니 AS는 충분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3심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충분한 AS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3심인 대법원은 사실관계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지 않는다. 2심인 항소심이 법률적으로 오류가 있는지 여부만은 심판하기에 '법률심'이라고 불린다. 그렇게 제한적으로만 심사하는 3심인 대법원의 심리를 받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법원까지 가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을 해도 대법원에서 문전박대 당한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심리불속행' 제도이다.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해 이유가 없다고 인정되므로 법 제5조에 입각해 상고인의 상고를 기각한다"

대법원까지 가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는데, 패소 이유조차 적혀 있지 않고 달랑 이같은 문구가 새겨진 대법원 판결문을 받고 허탈해하는 시민들을 자주 만났다. 2019년 대법원이 종결 처리한 민사, 가사, 행정소송 사건 1만 6990건 가운데 1만 2258건, 약 72%가 이런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그래서 대법원에서 승소는 차치하더라도 심리라도 제대로 받으려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기대 심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도장값을 지불할 수 있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

대법원까지 오는 사건 수가 너무 많고 제한된 인력으로 중요한 사건 심리에 집중해야 하기에 불가피한 제도라는 의견도 있다. 대법원이 맡고 있는 상고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을 별도로 맡는 상고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구입한 물품에 불량이 있어 정식 AS센터에 갔는데, 내가 구입한 물품은 중요하지 않으니 수리해 줄 수 없다거나 다른 AS센터에 가라고 한다면 쿨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처럼 대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자는 의견을 쿨하게 받아들일 사건 당사자는 없다. 모든 사건 당사자에게 그 사건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법관 숫자를 늘리고 인력을 충원해서라도 모든 사건에 대한 성실한 심리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3심제가 불량 판결문에 대한 제대로 된 AS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불량 판결문에 대한 배상? 또 하나의 불량 판결문 탄생만 경험할 뿐

그렇다면 배상은 어떤가? 불량 판결에 대해 국가로부터 배상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다. 현재 대법원 판례에 의거할 때 불량 판결문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받으려면 불량 판결문을 생산한 법관의 부정한 목적을 입증하거나 평균적인 법관이 기울였어야 할 주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했음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량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 찾아갔더니, 음식점 사장님이 환불과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요리사가 음식을 불량하게 제조하는 부정한 목적을 입증하거나 평균적인 요리사가 기울였어야 할 주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변한다면 괴변으로 취급당할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로부터 사법권이라는 권한을 부여받은 법관들의 잘못에 대해 이런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재 법원의 입장이다.

그렇게 책임을 묻기 위해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면 이를 입증할 기회는 충분히 주어져야 할 것이다. 최소한 그 불량 판결문을 생산한 법관을 증인으로 불러내야 물어볼 기회를 부여받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소송대리인으로 진행한 국가배상소송에서는 항소심에 이르는 3년 6개월의 재판 기간 동안 그 기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실제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3년 넘게 서 본 필자로서는 이런 소송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한 번 해보시라"는 말을 건네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왜 도대체 불량판결문을 생산한 것입니까? 직전에 처리한 두 건의 유사 사건에서 명품 판결문을 생산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이 사건 피고인의 변호인이 전관변호사라서 예우를 해 주신 것입니까?"

이런 질문사항을 준비했지만 그 불량 판결문을 생산한 법관들에게 따져 묻지도 못하는 소송과정을 통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명품판결문이 선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불량 판결문에 대해 AS받기 위해 국가배상소송을 했는데 결국 받아낼 수 있는 판결문이 또 하나의 불량 판결문이라면 법원 근처도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것이다. 오랫동안 모은 돈을 지불하여 구입한 자동차에 불량이 있어 AS를 받아 다른 자동차로 교환했는데 또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에 그 회사 자동차만 봐도 속이 상한 것처럼 말이다.

● 제대로 된 AS제도를 마련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자

현재 법원에서 운영하는 AS 제도는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다. 소수만이 누리는 상고심, 잘못은 있지만 책임은 없다는 식의 국가배상제도를 아주 오랫동안 시민들은 참고 또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시도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헌정사상 법관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되어 헌법재판소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나 법관 한 명이 탄핵당한다고 해서 시민들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달라질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우리는 언제까지 불량 판결문에 대한 불량 AS제도에 불평만 해야 할까?"

누군가의 잘잘못을 판단하며 분쟁 당사자 중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 이 사법 권한이라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다. 그러나 그 힘이 어마어마 하다보니 그 힘이 바로 우리 시민들의 것이었음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민들은 그 힘을 사법부와 판사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 힘을 잘못 사용하여 발생한 불량 판결문에 대해 제대로 된 AS를 요구할 권리가 바로 우리 시민에게 있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참고 : 필자가 소개한 불량 판결문에 대한 국가배상사건은 2018. 5. 5. 방영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122회 "끝나지 않은 숨바꼭질-신안염전노예 63인"에 소개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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