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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추미애와 박범계의 공통점…'임은정 카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최근 단행한 검찰 중간간부(차장·부장검사) 인사는 ▲'전보 16명'에 ▲'파견 2명' 그리고 ▲'겸임 1명' 등 소폭(小幅)으로 이뤄졌습니다. 1년 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현안(조국 전 장관 관련‧울산 선거개입 의혹 등) 수사팀과 지휘부를 대폭 교체했던 전례는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월성 원전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한동훈 검사장 관련 의혹 등 주요 현안 수사팀은 유임됐습니다. 불통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임 법무장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법무부는 검찰과의 갈등을 봉합하려 했다고 자평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내부 분위기를 살펴보면 법무부 생각과는 온도 차이가 있습니다. "노골적 인사다", "추미애 시즌2 예고편"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검사장급 인사에서 신현수 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 패싱 논란이 한 차례 일었던 데다, 앞서 말한 겸임 발령 1명(임은정 대검찰청 연구관)의 인사 강행으로 검찰 내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임 연구관 단 한 명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 낸 과정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에 "감찰 업무의 효율과 기능을 강화했다"라고 부연 설명을 덧붙여 놨습니다. 이런 법무부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임 연구관 '원포인트 인사'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지, 지난해 5월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겠습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 "무혐의" vs "아니다"…반쪽 결론 낸 이성윤의 중앙지검

'10년 전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재판에서 검찰이 여러 증인을 상대로 위증을 강요했다'. 이러한 의혹이 지난해 5월,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총리 사건 재수사 여부에 대한 논의가 언급됐습니다. 관련 진정 사건을 접수받은 검찰은 대검찰청 감찰부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을 중심으로 진상 조사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지시로 대검 인력을 파견받은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은 한 달여간의 진상 조사 끝에 그 경과를 대검에 보고했습니다(대검 보고시점 : 2020년 7월 10일). 해당 경과 보고서에는 '한명숙 수사팀 부장검사에게 모해 위증교사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진상 조사팀 관계자는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지검의 공식입장은 다릅니다. < 관련자 소환 불응 등 이유로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무혐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진상 조사팀과 중앙지검 측 설명을 종합해 보면, 무혐의 의견도 담겼지만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일종의 '반쪽 결론'을 대검에 보고한 셈이 됩니다.

대검 감찰부는 중앙지검의 이러한 경과 보고 내용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원점에서 재검토했습니다. 관련자 진술이 바뀌는 부분은 없는지 등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대검 감찰부는 '로 데이터(Raw Data)'를 다 가지고 있으니 그걸 토대로 원하는 방향대로 해보려는 의중인 것 같더라"라고 대검 감찰부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추미애-박범계-임은정 (사진=연합뉴스)

● 추미애와 박범계 그리고 임은정

중앙지검의 진상 조사가 불완전하게 끝난 시점으로부터 두 달 뒤인 지난해 9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움직입니다. 당시 추 장관은 임은정 울산지검 검사를 대검 감찰부 연구관으로 발탁했습니다(2020년 9월 10일 법무부 인사). 직책은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 이 직책은 대검 감찰부 산하 1과 ‧ 2과 ‧ 3과와 별도로 대검 감찰부장 지시를 받아 감찰 정책 등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기존에 없던 자리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검 연구관은 직제 상 검찰총장 직속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당시 이러한 인사 내용을 통보받다시피 했고,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달 14일 대검에 부임한 임 연구관은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의 지시로 한 전 총리 사건 관련 업무 등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반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임 연구관을 비롯한 대검 감찰부는 한 전 총리 사건 관련 진상 조사의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심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재소자 조사에 난항을 겪는 데다 대검 감찰부 내부 이견으로 진상 조사가 그간 더디게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전 총리 재판 관련 모해 위증교사 의혹의 공소시효는 다음 달 22일,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관련 사건 공소시효 만료를 한 달 앞두고 공교롭게도 법무부 장관이 또 나섭니다. 이번엔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입니다. 수사 권한을 가진 대검 감찰부 1과·3과 소속이 아닌 임 연구관은 그간 '수사 권한 등을 가질 수 있게 직무대리 발령을 내달라'라고 줄곧 요구해 왔습니다. 박 장관은 그런 임 연구관에게 수사권한을 부여하는 이른바 '핀셋 인사'를 지난 22일 단행한 겁니다.

대검 연구관 직무대리 발령은 검찰총장 권한입니다. 그런데 임 연구관 직무대리 발령이 윤석열 총장에게 가로막히자, 법무부가 우회적으로 '겸임 발령'이라는 장관의 인사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법무부 입장에서는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했다는 입장이지만, 대검에서는 '꼼수'를 썼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윤 총장은 그간 임 연구관 직무대리 요청에 대해 '(임은정 연구관이) 감찰 관련 정책을 연구하러 왔다는 당초 취지랑 맞지 않고, 업무 공정성도 담보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반대 의견을 피력해 왔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 격노한 윤석열 "절대 수용 불가"

지난주 검찰 중간간부(차·부장검사) 인사 내용 일부를 미리 접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임 연구관에게 수사권한을 부여하는 인사 안(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라며 격하게 반응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9월 추미애 장관이 임은정 검사를 대검 연구관으로 발령 내며 감찰권을 부여할 때 이른바 '검찰총장 패싱'이 있었는데, 이번엔 박범계 장관이 수사권까지 부여하는 인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자 총장이 가진 최소한의 권한마저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것입니다.

과거 대검 중수부 소속 과장들의 경우 직무대리를 연장하는 행정절차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일부 겸임 발령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이 대검 연구관 특정 1명을 위해 직접 나서 수사 권한을 부여하는 겸임 발령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례가 없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라는 게 대검에 근무하는 검사들이나 일선 검찰청 소속 검사들의 공통된 반응입니다.

● '임은정 카드'…대검 감찰부 내부서도 이견

형사소송법상 검사가 수사나 공소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려면 <지방검찰청 소속 검사> 신분이어야 합니다. 임 연구관의 경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으로 겸임 발령이 나며 수사 등에 관한 업무 권한도 갖게 됐습니다. 쉽게 말해, 참고인과 피의자를 조사하고 영장을 청구하거나 재판에 넘길 수 있게 된 겁니다. 한 검찰 간부는 "해당 사건에 연루된 검사들이 재소자들에게 위증을 강요했다는 걸 밝혀내 기소하라는 노골적 메시지 아니냐"라고 냉소했습니다. 전직 검찰 간부는 "임 연구관이 됐든 누가 됐든 검사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말판 위 말에 불과하다"라고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검찰 내부 분위기와는 무관하게 대검 감찰부는 관련 진상 조사에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대검 감찰부는 특정 재소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인데, 아직 조사 전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해당 재소자를 조사할 예정인데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인지 또는 재소자가 조사에 불응하고 있어 못하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수사팀 검사들에 대한 조사도 예상되는 수순입니다. 다만, 대검 감찰부 내부에 임 연구관의 감찰 업무 수행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간부들도 있어 내부 의견 조율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앞으로 한 전 총리 재판 관련 위증 교사 의혹 수사를 놓고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 임 연구관 등이 윤석열 총장이나 조남관 대검차장 등 참모진과 부딪힐 가능성도 높습니다. 추후 어떠한 방식으로든 알려지게 될 대검 감찰부의 진상 조사 결과를 보면, 두 전·현직 법무장관이 임 연구관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른바 '임은정 카드'를 내세운 안목이 정확했는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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