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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파일] 19년째 그대로인 화학물질 기준…고시만 빨리 했더라면

LG디스플레이에서 벌어진 일 ③

[단독][취재파일] 19년째 그대로인 화학물질 기준…고시만 빨리 했더라면
<출근(出勤) : 일터로 근무하러 나가거나 나옴>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모두 출근을 합니다. <퇴근(退勤) : 일터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거나 돌아옴> 업무를 마치면 퇴근을 합니다. 업무에 따라 시간을 다를 수 있지만,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출근은 했지만,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1월 13일, 파주 LG디스플레이 8공장에서 일하다 화학물질을 뒤집어쓴 작업자들입니다. 이들은 작업장에서 유해 물질인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TMAH)을 온몸에 뒤집어써, 5주째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사고 이후 집에 돌아오지 못한 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작업장에서 사고가 있을 거라곤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겁니다. 누구나 사고를 예견하고 출근하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들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업장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 노동자들이 뒤집어쓴 화학물질 TMAH는 무엇인가

수산화테트라메틸암모늄, TMAH는 반도체 공정 등 전자산업 등에서 현상액이나 세척제 등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입니다. 응집을 막기 위한 계면활성제로도 사용됩니다. 보통 작업장에서는 TMAH를 물 등 다른 액체에 희석해 사용합니다. 필요에 따라 농도를 조절하는 겁니다.

이 물질이 인체에 노출되면, 심각한 위험을 끼칠 수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TMAH가 피부와 접촉할 경우 화상은 물론, 신경과 근육에 손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 '(TMAH에) 노출 시 단기간에 호흡곤란을 일으키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물질의 유해성, 위험성을 명시했습니다. 이 물질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급성 독성 물질, 위험 물질로 분류돼있습니다. 이에 별도의 장소에 보관해야 하고, 작업 시 비상구를 설치해야 하며 누출 방지를 위해 적절한 방호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돼있습니다.

출처 : 산업안전보건공단

국립환경과학원이 지정한 TMAH의 유독성 인정 기준 농도는 25%입니다. 농도 25%가 넘는 TMAH 희석액에 한해서 유독성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다루는 물질이 '유독물' 인지에 따라 작업 분류도 나눠집니다. LG 디스플레이는 화학물질 다루는 작업을 '일반작업'과 '위험작업'으로 분류하는데, 실제로 1월 13일, 노 동자들이 수행한 작업은 '일반작업'으로 분류됐습니다. 노동자들이 다룬 TMAH 희석액의 농도가 25%를 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기준 농도 1/10 수준인데 5주째 의식불명

사고 당시 누출된 TMAH의 농도는 2.38%입니다. 국립환경과학원 기준 농도인 25%의 1/10배에도 못 미칩니다. 그런데 이 물질을 온몸에 뒤집어쓴 노동자 2명은 5주째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병상에 있습니다. 환경부 기준대로라면 농도 2.38% TMAH는 유독물이 아닌데, 왜 노동자 2명이 깨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사고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 국립환경과학원은 유독성 인정 기준을 25%에서 1%로 변경했습니다. 농도 1% 이상인 희석액에 한해서만 유독성을 인정하기로 한 겁니다. 기준이 대폭 강화된 건데, 이 기준은 아직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독물질 지정고시 전'이기 때문입니다. 즉, 기준을 강화하긴 했지만 법령이 개정되지 않아 유독성 인정 기준은 25% 그대로인 셈입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유독물질 고시 개정은 6월 이후에 완료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노동자들이 뒤집어쓴 TMAH의 농도(2.38%)는 강화된 기준인 1%의 2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아직 유독물질 고시 개정이 되지 않아 농도 2.38%의 TMAH는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1%를 넘을 경우 인체에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의견 수렴과 법령 개정 등 밟아야 할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작업장에서 적용되지 못한 겁니다. 때문에 LG 디스플레이가 지정한 81개의 유독물질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반복되는 TMAH 누출사고, 19년째 기준 그대로

'25% 기준'은 지난 2002년도에 설정됐습니다. 이 기준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고 19년째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작업장에서 발생한 TMAH 누출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 지난 2011년 12월, 경기도의 한 사업장에서 TMAH 누출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당시 TMAH가 함유된 세척제를 테스트하던 39살 남성의 양쪽 손과 팔, 다리에 물질이 누출됐고, 노동자는 '피부 접촉에 의한 급성 TMAH 중독'으로 숨졌습니다.

2. 2012년 4월 충북 음성의 현상액 제조회사에서도 TMAH 누출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작업자가 탱크로리 세척 작업 후 남아 있는 TMAH 용액을 제거하기 위해 호스 끝의 볼트, 너트를 분리하던 중 갑자기 용액이 분사돼 TMAH가 누출된 겁니다. 이 물질이 노동자의 얼굴, 목에 묻어 호흡곤란으로 숨졌습니다.

두 사고 모두 이번에 발생한 LG 디스플레이 사고와 유사합니다. 노동자가 TMAH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겁니다. 두 건의 사망사고가 있었지만 유독성 인정 기준은 여전히 25%입니다. 현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기준이 19년째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 안일한 기준이 작업장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위험상황

LG 디스플레이는 작업의 위험성에 따라 일반/위험 작업으로 분류합니다. 이에 따라 작업자에게 지급되는 보호장비도 달라집니다. TMAH의 위험성으로 미루어 보아 '이 작업은 위험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 TMAH를 다루는 작업은 일반작업입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기준 상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으니 위험작업으로 분류되지 않은 겁니다.

사고 당일 작업자들에게 지급된 보호구

일반작업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실제 작업자들에게는 불침투성 전신 보호복이 아니라 안전모, 보안경, 방독마스크, 내화학토시 등 간이 보호구만 지급됐습니다. 그래서 유독물질이 누출됐을 때 신체 보호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유독성 인정 기준이 1%로 적용돼 해당 작업이 위험작업으로 분류됐다면 어땠을까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전신 보호복을 입고 작업했을 겁니다.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기준이 적용돼, 사고가 계속되는 있는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 [취재파일①] 40일째 의식 없는 협력업체 노동자 2명…밸브는 열려 있었나?
▶ [취재파일②] 화학물질 누출 25분 뒤 신고, 골든타임은 지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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