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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유령 블로그에 악마의 편집까지…이것이 과연 하버드 논문인가

[월드리포트] 유령 블로그에 악마의 편집까지…이것이 과연 하버드 논문인가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21.02.22 11:24 수정 2021.02.22 16:1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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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 밤낮으로 만든 글로벌 연합군의 '램지어 팩트 체크'

하버드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역사 왜곡 도발을 하면서 이와 관련한 미국 학계의 진실 공방은 매우 독특하고 의미 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학, 법학, 경제학 등 관련 학계가 들끓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학자들의 성명서와 검증 보고서가 계속 추가로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련 문제가 우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것이라 학자들의 논쟁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고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램지어 교수 논문 윤리위 검토_김수형 취파
며칠 전 보도한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앤드루 고든, 카터 애커트 교수의 반박문은 램지어 교수를 한방에 쓰러뜨렸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안부 매춘 계약서의 실체도 확인할 수 없었고, 3자의 진술조차 없다는 지적은 학자로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지만 램지어 교수는 아직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 뒤 일본 역사 연구자 5명이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학문적 부정행위로 논문 철회가 필요한 사건>이라는 제목을 달아 검증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8페이지에 불과하니 분량으로는 4배가 넘습니다. 이 보고서는 한마디로 '꼼짝마' 리포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보고서의 필진은 스탠리 노스웨스턴대 교수, 쉐퍼드 케임브리지대 연구원, 차타니 싱가포르대 교수, 암브라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교수, 첼시 시더 아오야마 가쿠인대 교수 등 5명입니다. 활동하는 국가도 미국, 아시아, 유럽 등으로 명실상부 글로벌한 역사학자들로 모두 일본사를 전문으로 하는 학계의 프로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차타니 교수는 트위터에 "우리 팀은 지난 2주간 말 그대로 밤낮으로 이 검증 보고서를 만들었다"며 "내가 이 일원인 게 자랑스럽다"고 적어놨습니다.

이 보고서는 크게 4가지 항목에 걸쳐 램지어 교수 논문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걸 시인하지 못한 문제 ▲직접 증거 사용의 문제 ▲간접 증거 사용의 문제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인용 실태를 큰 주제로 잡아 밑에 구체적인 사례를 나열하며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낱낱이 해체해놨습니다. 논문의 출처를 전부 뒤져보고 따라가며 팩트 체크를 했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연합군이 2주를 꼬박 투자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내용도 많지만 특히 문제가 심각한 문옥주 할머니 부분은 정리해보겠습니다.

● "가장 튀게 잘 살았던 문옥주"…출처는 위안부 모욕 글 모아놓은 유령 블로그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를 위안소 운영자와 매춘 계약을 맺어 실제 돈도 많이 받고 저축도 상당히 하며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처럼 논문에 묘사해놨습니다. 이 부분의 출처는 (KIH, 2016b)로 표현돼 있습니다. 하지만 논문 검증단이 이걸 따라가 보니 이건 정식 출판물도 아니고 그냥 국내 인터넷 블로그에 떠 있는 영어 번역문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램지어 교수 논문 윤리위 검토_김수형 취파
실제 링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이 블로그는 어느 극우 성향 인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여러 글을 모아놓은 국내 유령 사이트에 불과했습니다. Korea Institute of History(한국역사협회)라는 제목이 있는데 소개 페이지에는 관리자 사진도 없고, 이메일이 달랑 하나 걸려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 이메일에 실제 관리자가 있는지 질문을 보내 놨지만, 아직 답이 없습니다. 2016년에 39개의 글을 올린 뒤 활동 없이 버려진 이른바 '흉가 블로그'였습니다. 게시물들은 외부 링크를 많이 걸어놨는데, '일베'로 널리 알려진 극우 성향의 일간 베스트 사이트는 물론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게시판으로 연결되는 게 상당수였습니다. 내용은 하나같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체를 부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스가 나간 뒤 인터넷 댓글 중에 "망한 조별 과제도 블로그를 출처로 하지는 않는다"는 시청자 의견도 있었지만, 하버드 교수가 자신의 논문을 이런 식으로 쓴 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램지어 교수는 이 유령 블로그 글마저 악마의 편집을 했습니다. 유령 블로그에도 "나는 양곤에서 전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기는 했다. 물론 완전히 자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한국인 위안소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었다"고 표현돼 있었습니다. 자신이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라는 걸 유령 블로그도 표현을 해놨던 건데, 램지어 교수는 이 문장을 빼버리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부터 논문에 넣었습니다. "나는 인력거를 타고 쇼핑가는 게 재미있었다. 나는 양곤 시장에서 쇼핑하는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고 시작됩니다. 신체적인 억압 상태라는 걸 쏙 빼버리고 돈 벌어서 미얀마 양곤을 누비며 대놓고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니는 직업 매춘 여성처럼 보이게 하려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한 것입니다. 램지어 교수는 문옥주 할머니를 표현하면서 자신의 논문에 "기록이 남아 있는 한국 위안부 가운데 문옥주가 가장 튀게 잘 살았던 것으로 보였다"고 표현해놨습니다. 풍족한 생활을 영위한 사람이라는 약간의 비아냥거림까지 느껴지는 이 표현은 보는 것도 거슬립니다. 그것도 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악마의 편집까지 해가며 학자가 이런 표현을 논문에 써놨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만약 방송 기자가 전쟁 피해자를 인터뷰해 맥락을 이런 식으로 앞뒤를 자르고 방송에 낸다면 더 이상 기자직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로벌 학자들은 문옥주 할머니를 실제 인터뷰했던 모리카와 씨의 책을 일일이 뒤져서 전체 맥락이 무엇인지 서술해놨습니다. 보고서는 문 할머니가 1940년 만주의 위안소에 잡혀가 겪은 끔찍한 일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16살 소녀가 대구에서 잡혀와 만주에서 처음 자신이 위안부가 됐으며, 하루 20,30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걸 알게 됐을 때 하루 종일 울었다고 회고했습니다. <we would be forced to service them too. I cried every day. But as much as I cried, the men kept coming> 일본 헌병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곳을 탈출했지만, 1942년 문옥자 할머니는 해외에 있는 군 구내식당에 식모살이를 하러 가자는 꼬임에 넘어가 미얀마까지 가게 됐습니다. 출발하면서 항구에 집결했던 조선의 소녀들은 타이완, 사이공, 싱가포르, 양곤에 차례차례 내려야 했습니다. 문 할머니는 자신이 미얀마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곳에 가게 됐다고 합니다. (일전 인터뷰에서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런 어린 소녀들의 해외 이동은 일본 정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군인 가운데 한국말하는 사람들이 와서 "너 속아서 여기 왔다. 너 위안부로 가게 된 거야"라는 말을 듣고 진상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위안소 관리인들은 군인들을 상대하면 티켓을 받게 될 것이고, 그 티켓을 한국에 갈 때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노동의 대가라기보다는 그저 꼬드김에 불과했습니다. 학자들은 문 할머니가 매춘 계약을 맺고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나마 만주에서는 이런 티켓 따위도 받았다는 흔적이 없다고 담담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 할머니의 실제 회고록은 일련의 과정이 강압(force)과 사기(deception)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령 블로그는 물론 램지어 교수조차 논문에 문 할머니가 팁으로 돈을 많이 모았다고 써놨습니다. (I saved a considerable amount of money from tips). 위안소에서 주는 돈으로 모은 게 아니라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주는 돈을 모았다는 의미입니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문 할머니는 지옥굴을 탈출하기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모노세키 우체국에 입금된 이 돈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의해 문 할머니가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지급 거절당했습니다.

램지어 교수 논문 윤리위 검토_김수형 취파
결국 그 돈을 한 푼도 손에 못 만져본 채 문 할머니는 지난 1996년 사망했습니다. 비극적인 전쟁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모리카와 씨와 인터뷰를 통해 진상을 밝혔던 것인데,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자신의 공식에 맞추기 위해 피해자의 역사를 완전히 뒤틀어놨던 것입니다.(각 챕터별로 이런 왜곡 사례가 보고서에는 계속 나열돼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램지어의 논문은 학문적 사기라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의 진상 보고서에도 이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집필자 여러 명과 접촉했는데, 모두 화상 인터뷰는 거절했습니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에이미 스탠리 교수가 대표로 서면 답변을 짧게 보내줬는데 "논문이 실리는 국제 법경제 리뷰가 우리 보고서를 참고해 논문을 철회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에게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일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벌어진 '역사 왜곡 폭동'을 학자들의 방식으로 제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논문 초안 내리고 윤리위 가동…"엄격한 사실 확인 검토 진행"

램지어 교수 논문 윤리위 검토_김수형 취파
위안부 피해자 왜곡 논문과 별도로 램지어 교수의 하버드 토론 자료집의 심각한 문제는 이미 보도로 여러 차례 지적했습니다. 사실 수위로만 보면 토론 자료는 '혐한 논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간토 대지진 한국인 학살을 왜곡한 <자경단: 일본 경찰, 조선일 학살과 사립 보안업체>라는 제목의 토론 자료의 경우 정식 학술지로 출간하기로 했던 케임브리지 출판부가 사전 공개 사이트(SSRN)에서 우선 내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스라엘 히브루 대학 로스쿨의 앨론 해럴 교수가 편집장이었는데, 왜 이렇게 한 건지 이메일을 보냈더니 현지 시간 자정이 훨씬 넘었는데도 답을 보내줬습니다. 메일을 보내면서 이 문제는 이스라엘이 겪은 홀로코스트를 왜곡한 것과 비슷하게 한국인들이 받아들인다고 좀 세게 말을 했는데, 해럴 교수가 많이 놀란 느낌이었습니다. 그 늦은 시간에 답을 주리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인터뷰는 안 하겠다면서도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출간 전 논문의 사실 확인을 위한 엄격한 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논문은 절대로 초안처럼 실리지는 않는다고 확인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케임브리지 출판부의 편집인에게도 이메일을 넘겨서 답을 달라고 스스로 요청했는데, 매트 갤라웨이 선임 편집인은 "윤리위를 가동해서 검토 중이다"는 답을 보내줬습니다.

● 위안부 피해 당사국 한국…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이번 사안이 미국에서 벌어진 게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고,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흥행 요건을 갖춘 인물이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논문에 쓰려다 전 세계 학계가 연합해 이를 좌절시킨 것은 큰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는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확증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세계 학자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확인해준 것입니다. 국내 극우 인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증거를 왜곡하며 "일제의 강제 동원이 없었다, 위안부는 매춘부다"라는 램지어스러운 주장을 하더라도 이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좋은 선례를 남긴 셈이기도 합니다.

우리 학계가 이런 역사왜곡 시도에 대해서 가장 정교한 데이터와 사례를 가지고 반박문을 가장 빨리 내놨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램지어 교수라는 기이한 인물이 나왔을 때 그 사람이 일본의 후원을 받았고, 그 때문에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면서 흥분하고 분노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하버드 대학 자체가 거액을 기부한 목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미국 대학은 기업의 후원과 기부가 일상적인 상황입니다. 특히 돈이 안 되는 인문학은 미국도 기업의 후원 없이 교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는 학교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학문의 자유가 최우선시되고 그런 후원 기업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이런 학문적 반란은 학문으로 '팩폭'해가며 충분히 응수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당사국인 우리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면식도 없는 램지어 교수 사건에 왜 이렇게 매달리는지 자문해보면, 이 사람의 논문을 실제 보며 한국인으로서 마음 한 구석에 큰 상처를 입고 분노가 일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 국내 일부 극우 인사들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 일제 편들기를 하는 것일 뿐이고, 이들이 원하는 건 팩트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위안부 사건 자체를 감정적 난장판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정말 램지어 교수가 무슨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사태 초기 이메일을 보내면 "인터뷰 안 한다"는 메일은 거의 당일 바로 보내주곤 했는데, 요즘은 닷새 동안 7통의 이메일 보내고 어제 겨우 "인터뷰 안 한다"는 답 메일을 받았습니다. 만약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교수님이 인용한 그 블로그가 뭔지 알고 하신 거예요?"라고 정말로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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