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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당신은 어떤 나무인가요…'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북적북적] 당신은 어떤 나무인가요…'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21.02.21 06:5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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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280: 당신은 어떤 나무인가요…'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무의 직경이 한 뼘 정도 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회양목이 그 정도의 직경을 가지려면 최소 5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느림보라는 별명이 꼭 어울리는 회양목. 그러나 그렇게 더디게 성장하는 동안 회양목은 그 속을 다지고 또 다져 그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단단함을 지닌다. 그리고 이 단단함은 귀한 가치를 지녀 도장을 만드는 훌륭한 재료로 쓰인다." - 회양목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에 나오는 여러 히어로 중 누굴 가장 좋아하시나요? 이런저런 매력이 있는 이들이 많은데 그중에 피규어로 갖고 싶다면 저는 단연 그루트입니다. 대사 하나로 모든 상황과 감정을 표현하는 촌철살인 "I'm Groot 아임 그루트." 찾아보니 '플로라 콜로수스' 종족이라고 하고 나무처럼 생긴 생명체라고도 하는데... 어쨌거나 나무가 말을 하고 움직이고 동료가 돼 함께 싸우는데 매우 귀엽습니다. 룰루랄라 나무처럼 살다가 악의 무리와 가끔 싸우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같은 대답 - 아임 그루트 -을 하면 답변 끝! 이라니. 오늘 소개하려는 책에 그루트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그루트와 근원이 멀지 않은 나무들이 잔뜩 나옵니다. 2001년 출간됐다가 20년이 지나 10만 부 판매 기념으로 올해 스페셜 에디션이 나온 책, 나무의사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입니다.

나무의사는 말 그대로 나무를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책의 저자 우종영 씨는 나무병원을 세워 아픈 나무를 돌보고 치료하는 나무의사입니다. 나무를 치료하고 돌보며 인생을 배우고 또 나무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인생 이야기를 나무에 빗대 풀어놨습니다. 책에는 모두 스물 다섯 그루의 나무가 등장합니다. 또 나무로부터 배운 삶의 지혜도 털어놓습니다.

"전국 어디든 5리마다 한 그루씩은 볼 수 있었다는 오리나무. 지금이야 어느 길을 나서건 도로 곳곳에 이정표가 있지만, 멀건 가깝건 두 다리가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옛날에는 길가의 오리나무를 세 가며 '내가 몇 리만큼 왔구나' 가늠하곤 했다... 오리나무를 볼 때마다, 삶의 길 한 모퉁이에서 쉬어 가라고 말하는 쉼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이가 마흔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꼭 오리나무 얘기를 꺼내곤 한다." - 오리나무

"예로부터 내려오는 자작나무에 관한 전설 하나.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조심스럽게 벗겨 내 그 위에 때 묻지 않은 연정의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단다. 이루지 못할 사랑일수록 자작나무로 만든 편지가 힘을 발휘한다나. 자작나무의 수피를 보면 그 전설이 왜 생겨났는지 이해가 간다. 겉보기와는 달리 자작나무의 수피는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를 어떻게 견뎌 낼까 싶을 정도로 무척 연하고 부드럽다... 부푼 마음을 안고 딸아이에게 자작나무의 전설을 얘기했더니 아이가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 -자작나무

"나는 그렇게 크게 자라는 밤나무를 대할 때마다 어울리지 않게도 세 살배기 꼬맹이가 떠오른다. 떼쓰고, 고집불통에다, 하는 일마다 미운 짓 투성이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익 한 번 웃어 주는 걸로 사람 마음을 행복하는 만드는 세 살 어린아이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밤나무는 그 거대하고 시원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하는 짓이 참 못돼 먹었다." - 밤나무


책에 등장하는 주목나무, 이팝나무, 소나무, 아까시나무, 동백나무, 조팝나무, 느티나무, 등나무, 생강나무, 모과나무, 노간주나무, 라일락, 대나무, 서어나무, 은행나무, 사위질빵, 개나리, 전나무, 자귀나무, 회화나무... 이름으로는 몰라도 함께 실린 사진과 설명을 보면 아 저 나무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저도 잊고 있던 그 나무에 얽힌 기억도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목련... 제가 다니던 대학의 단과대 건물 입구에 목련 한 그루가 있었는데 묘하게 그 목련은 다른 목련과는 달리 3~4월이 아니라 2월 중순이면 꽃을 피웠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미친 목련'. 일찍 피니 또 빨리 졌지요. 알고 보니 그 목련이 서 있던 자리는 건물 난방을 하면 그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 주위보다 온도가 높았습니다. 졸업 이후 학교에 가본 일이 많지 않아 지금은 그 목련이 아직도 미친 듯이 일찍 봄을 알리는지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련을 함께 추억할 당시 친구들도 소식 닿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죠.


"그가 좋아하는 목련나무를 아끼는 방식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자신이 돌볼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목련나무가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스스로 시련을 이겨내고 예쁜 꽃을 피워 내길 바라는 마음... 그의 말처럼 목련나무는 그가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천리포수목원을 지키며,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희고 고운 꽃을 활짝 피워 올린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마음은 남아 있는 것이다." - 목련

작가가 하나하나 풀어놓는 나무 이야기를 읽노라면 그 하나하나가 꼭 내 주변에 잠시 머물던,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 이야기라고 했지만 실은 사람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나무'라고 흔히 말하지만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수많은 나무들을 보니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건 실은 "저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같은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긴 시간 더디 자라며 결국엔 그 값어치를 발휘해 단단한 도장으로 쓰이는 회양목... 나는 기나긴 시간 동안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걸었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당장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가.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내 안에는 과연 기나긴 시간 더디면 더딘 대로 그렇게 노력해 온 무언가가 있는지를." - 회양목

*출판사 메이븐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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