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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를 어떻게 번역할까?

[취재파일]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를 어떻게 번역할까?

'시시콜콜'한 북한 이야기

김아영 기자 nina@sbs.co.kr

작성 2021.02.19 11:17 수정 2021.02.19 12: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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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상황을 좌우하는 큰 뉴스는 아니지만, 살펴보면 나름대로 흥미 있는 북한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북한이 이달 들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영문 표기를 'chairman'에서 'president'로 바꿨습니다.

"프레지던트 킴"

이 표현을 듣고 북한 최고지도자를 떠올리는 것은 아직은 낯선 일입니다. 이 단어를 흔히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에겐 더욱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물론, 영어 단어만 바꿨을 뿐 북한 자체적으로는 여전히 '국무위원장'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원래 말과 글, 그리고 번역문 사이에는 이런 차이들이 존재합니다. 오늘(19일)은 그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실리는 글들을 모두 영어로 번역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국이 전 세계에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북한 역시도 자신들의 입장을 외부에 알리는 것에 그만큼 신경을 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영매체로 발표하는 거의 모든 담화가 영어로 번역된다는 것,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북한 특유의 낯선 표현들,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요? 워낙 자극적이어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문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2019년 8월 16일 북한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서 내놓은 비난 표현입니다. 다른 언어로 연상하기 쉽지 않을 법한 이런 독특한 표현을 북한은 어떻게 번역했을까요? 당시 북한 매체가 적은 실제 문구는 이렇습니다.

"…make the boiled head of a cow provoke a side-splitting laughter."

'삶은 소의 머리(the boiled head of a cow)' 같은 표현을 그대로 살린 점에서 직역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head' 머리를 뜻하는 이 단어가 속어의 뉘앙스까지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뉘앙스를 100% 살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처신머리 골라할 줄 모르는 데서는 둘째로 가라면 섭섭해할 특등 머저리들"

지난달 발표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입니다. 북한의 열병식 정황을 발표한 합참에 비난의 입장을 냈었습니다.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
남측에 대한 담화이지만, 이런 것들도 역시나 영문으로 발표됩니다. 그대로 옮기기에는 다소 민망한 위 표현을 북한은 어떻게 옮겼을까요?

"They are the idiot and top the world's list in misbehavior."

번역했다고 해서 유쾌한 내용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분명히 차이는 있습니다.

번역된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면 "그들은 바보들이고, 잘못된 행동에서는 세계 1위입니다" 이 정도 수준일 것입니다. 처음 표현에 비하면 다소 순하게 느껴집니다.

북한식 영어가 말의 맛을 다 못 살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독특해서 외신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2017년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불렀을 때가 단적인 예입니다. 영문 성명에는 'the mentally deranged U.S. dotard'라고 명시되었는데 'dotard'라는 단어가 워낙 고어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도 뜻을 검색해 봐야 했을 만큼 낯선 단어였습니다.

물론, 이런 이질감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말과 글의 맛을 영어로 다 살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더 독특한 북한식 표현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사진=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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