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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강제 키스' 장본인, 도쿄올림픽 보스 됐다

[취재파일] '강제 키스' 장본인, 도쿄올림픽 보스 됐다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1.02.19 09: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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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강제 키스 장본인, 도쿄올림픽 보스 됐다
오는 7월 23일에 개막할 예정인 2020 도쿄올림픽이 잇단 잡음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사상 처음으로 1년이나 연기됐지만, 여전히 일본 국민의 80%는 취소 또는 연기를 주장하고 있고, 또 각종 올림픽 예선전도 제대로 치러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아야 할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마저 설상가상으로 각종 논란에 휩싸여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일본 총리 출신인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여자가 많으면 (말이 길어져) 회의가 끝나지 않는다"는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지난 12일 사퇴했습니다. 문제는 후임자였습니다. 모리 위원장이 여성 무시 망언으로 물러난 만큼 후임자는 양성 평등과 인권 존중 정신이 투철한 인물이 선임돼야 하는 게 상식적입니다.

하지만 도쿄조직위원회의 선택은 이른바 '강제 키스' 논란의 당사자인 하시모토 세이코(57세) 도쿄올림픽 담당 장관이었습니다. 현직 장관이 조직위원장을 겸할 수 없기 때문에 하시모토 세이코는 장관직에서 사퇴하고 도쿄 조직위 수장에 올랐습니다.

하시모토 세이코는 동하계 올림픽에 모두 7번 출전한 스포츠 스타 출신 정치인입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에서 동메달을 따냈는데 이는 일본 동계올림픽 사상 여성 선수로는 최초의 메달이었습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등 3차례 하계올림픽에는 사이클 선수로 출전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시모토 세이코 일본 올림픽 담당상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1995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2008∼2009년 아소 다로 내각에서는 외무성 부대신을 역임했습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 때는 일본 선수단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영웅 출신의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던 하시모토 씨는 2014년 이른바 '강제 키스' 논란을 일으키며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슈칸분슌>(週間文春)은 2014년 8월 하시모토 세이코 일본 빙상연맹 회장이 일본의 유명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다카하시 다이스케에게 강제로 입을 맞췄다며 사진과 함께 보도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다카하시는 2010년 2월 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에서 일본 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을 따냈고 그해 3월에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우승까지 거머쥔 스타 선수입니다.

'강제 키스' 논란 당시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4 소치동계올림픽 폐막 바로 다음날인 2월 24일 일본 선수단 회식 자리에서 하시모토 회장이 다카하시에게 다가와 강제로 키스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시모토는 당시 50살로 일본 빙상연맹 회장인 데다 자녀를 여섯이나 두고 있는 기혼자였던 반면 다카하시는 아들뻘에 불과한 29살이었기 때문에 비난의 강도는 더 높았습니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두 사람은 강제 키스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일본 언론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사이가 사실상 상사와 부하의 이른바 '갑을 관계'여서 다카하시가 키스를 저지할 수도 없었고 그 이후에 '강제 키스'임을 시인할 수도 없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쉽게 말해 하시모토가 자신의 직분을 이용해 '갑질성 성추행'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었습니다.

강제키스 논란 당시 일본 언론 보도 (사진=일본 '슈칸분춘'(주간문춘))
이런 결정적 흠결에도 하시모토는 2019년 9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낙점을 받아 올림픽 담당상에 선임됐습니다. 이후 큰 문제없이 직무를 수행해오면서 '강제 키스' 사건은 점차 일본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조직위원장에 오르면서 과거의 행적이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입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왜 하필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성추행' 논란을 빚은 하시모토를 굳이 위원장으로 선택했는지, 또 하시모토는 왜 현직 장관직에서 사퇴하면서까지 위원장직을 수락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2020 도쿄올림픽의 얼굴입니다. 어찌 보면 장관보다는 국내외 언론은 물론 국제 스포츠계에 노출될 기회가 훨씬 많습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환영사를 하는 사람도 조직위원장입니다. 아들뻘인 젊은 선수에게 사실상 '성추행'을 한 장본인이 올림픽 조직위원장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올림픽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본 유명 법률사무소 소장인 기토 마사키 변호사는 "성희롱 문제가 있어, 젠더 문제가 된 모리의 후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트위터로 지적했습니다. 트위터에는 하시모토가 다카하시로 추정되는 인물을 끌어안고 키스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다수 게시됐습니다.

주간지 '슈칸분슌'은 지난 17일 발매된 최신호에서 "하시모토 씨의 성추행은 다카하시 한 건이 아니다"며 피해자 중 한 명인 전직 여성 의원이 하시모토는 술에 취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입을 맞추는 버릇이 있다는 증언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가뜩이나 어수선한 가운데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성화 봉송마저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일찌감치 올림픽 개최 반대 의사를 나타낸 마루야마 다쓰야 일본 시마네현 지사는 오는 5월 성화 봉송에 협력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성화는 오는 3월 25일 후쿠시마를 출발해 개막일인 7월 23일까지 일본 전역을 돌 예정인데 마루야마 지사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성화 봉송 거부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일본의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도쿄올림픽 1년 연기가 결정되기 일주일 전인 지난해 3월 "올림픽은 40년마다 문제가 생겼다. 1940년 도쿄하계올림픽과 같은 해 삿포로 동계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고, 1980년 모스크바하계올림픽도 당시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국가들이 대거 참가하지 않았다"며 2020 도쿄올림픽을 '저주받은 올림픽'으로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일본 고위 관료로는 보기 드물게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일본 사격(클레이) 대표팀 선수로 출전한 아소 부총리는 그동안 잦은 망언으로 '망언 제조기'로도 불리는데 요즘 돌아가는 도쿄 조직위와 일본 내 사정을 고려하면 그의 '저주받은 올림픽' 발언만은 망언이 아니라 '족집게 예언'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사진=일본 '슈칸분춘'(주간문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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