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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무례함이 당근에 '생채기', 아재의 당근마켓 참관기

[깊은EYE] 무례함이 당근에 '생채기', 아재의 당근마켓 참관기

고철종(논설위원) 기자 sbskcj@sbs.co.kr

작성 2021.02.15 18:22 수정 2021.03.05 11: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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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않게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난감한 건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좁은 집으로 가야 한다는 거다. 여기저기 묻혀 있을 정체모를 물건들을 많이 버려야 한다. 가끔 이런 상황을 맞을 때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얼마나 많이 쟁여놓고 사는 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대부분 당장 쓸 곳이 없지만, 버리긴 아까운 물건들이다.

"엄마, 당근마켓! 거기다 팔면 돼요!"

딸의 제안에 아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관심을 보인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니니?"
"아냐. 요즘 얼마나 '핫'한데."

들어본 적이 있다. 모녀가 바로 당근 마케팅에 착수한다. 딸이 침대보를 가져오더니 거실 책장에 세로로 길게 펼친 뒤 화분과 옷, 건강용품, 장식 바구니, 그릇 같은 걸 놓고선 보기 좋게 찍어댄다. 영락없이 허접한 스튜디오다.

반나절이 지나면서 마케팅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도 엄연한 마켓이다. 까탈스런 소비자들이 당연히 있다. 높이와 폭이 얼마인가, 흠집 부위를 찍어 달라, 다른 것을 끼워 팔아라, 반값택배로 보내라, 온갖 요구가 쇄도한다.

즉각적인 반응에 처음에는 반색하던 아내가 줄자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짜증을 낸다.

"아파트 후문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당신이 저거 들고 따라가 줘요."

드디어 첫 판매. 아내가 불안해하던 터라 대형 화분을 들고 아파트 후문 공터 쪽으로 아내를 따라갔다. 공터 쪽에는 우리 말고 SUV 한 대가 서 있다. 30대 남자 한 명이 운전석에서 창문을 열고 우리를 빼꼼히 쳐다본다.

저 사람인가?
이내 외면하는 걸 보니 아닌 모양이다. 조수석에 커다란 쇼핑백이 놓인 걸 보니 저 사람도 당근마켓에 뭘 팔러 나온 걸까. 약속시간이 5분이 지났는데 사러 온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바람맞는 거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길 가에 뻘쭘하게 서 있기가 점점 불편해질 무렵, 아까부터 길 건너편에 정차해있던 승용차에서 중년 여성이 내리더니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화분 팔러 나오신 거죠?"

아마도 우리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해가 됐다. 아내가 처음 하는 당근 판매에 불안해하는 것처럼, 다른 여성들도 낯선 사람과의 대면거래가 아무래도 조심스럽고 불안할 듯했다.

이후 당근 판매는 깜짝 놀랄 정도로 활황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게 싸게 파는 거였지만, 그래도 얼마간의 비용을 치르는 것이니, 사는 사람도 물건을 함부로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번째로 당근 판매를 도운 건, 장독을 판매할 때였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아내를 따라 장독을 낑낑거리며 들고 가는데,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더니 말을 건넨다.

"당근?"

당황했다. 할머니께서 갑자기 날 보고 당근이라니. 아하! 이 할머니가 구매자구나.

나와 할머니가 대화하는 걸 보고 아내가 갔던 길을 되돌아와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이 바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얼굴을 모르니 물건을 보고 눈치껏 알아채는 것이다. 뒤이어 저쪽에서 건장한 청년이 뛰어와 장독을 건네받았다. 할머니의 손자였다.

당근거래는 여성들이 혼자 오는 경우보다 대부분 남성과 대동하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무거운 물건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안전 이유가 큰 듯하다.

당근 거래가 마냥 신기하거나 즐거움만으로 가득 찬 건 아니었다. 아파트 지하창고에 방치해 두었던 자전거를 팔려다 보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수 십 분간 세척을 한 뒤 차 트렁크에 흠집을 내가며 싣고 가서 수리업체에서 펑크를 때우고, 밖에서 사진까지 찍는 수고를 하다 보니까 차라리 그냥 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전자제품은 또 어떤가.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를 연결선이나 부속품을 찾다 보면 시간과 품이 너무 든다.

"그래도 내가 아끼던 물건을 새 주인이 기분 좋게 쓰면 좋잖아요!"

아내의 말에 동의했다. 한 때 내게 기쁨을 주던 물건이기에 남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런 수고로움을 거치다 보니 제법 많은 물건이 팔렸고, 집안이 휑하게 정리되는 가운데, 당근 초보인 아내와 딸의 판매 수완도 늘어갔다.

한 달 가까이 아내와 딸아이의 당근 거래를 보고 개인적으로는 깜짝 놀랐다. 수많은 첨단 거래방법과 기기묘묘한 앱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렇게 절묘하게 시민들의 생활경제를 유효하게 파고든 수단이 있었을까.

당근마켓 (사진=당근마켓 제공)
본인에게 큰 쓸모가 없지만, 남들에겐 효용성이 뛰어난 물건을 파격적인 가격에 유통시키면서 서로가 이득을 보는 시스템. 거래되는 물건의 입장에서도 좋다. 공짜로 주면 함부로 할 텐데 적은 돈이라도 지불하고 샀으니 구매자가 그 값만큼 아낄 터이다.

항상 그렇듯 인기가 있으면 그늘도 만들어진다. 그럴듯한 유통방식이 나왔다가 활개 치는 사기범들의 농간에 신뢰를 잃었던 전례를 반면교사로 이를 걸러내는 시스템이 필수로 보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간의 신뢰와 예의다. 물건을 판매하면서 가끔 아내와 딸의 넋두리가 들렸다.

"아유! 5천 원짜리 사겠다면서 꼼꼼하게 포장해서 편의점 택배로 보내라네. 택배비는 못 주겠다면서."

딸이 그 불만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말도 마세요. 약속시간 지키라고 독촉 문자까지 보냈던 사람이 약속 장소에 안 나와서 연락했더니, 그 시간에 딴 데 있다면서 못 사겠으니 딴 데 팔라는 거예요."

실제로 이런 일이 많을까 싶어 여러 인터넷 카페를 확인하니 구매 매너가 거래 의욕을 꺾는다는 불만이 봇물이다. 이른바 '노쇼'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무료 나눔 하려 했는데 집 앞까지 가져오라든지, 여성인 줄 알고 개인정보만 캐묻는다든지, 안 깎아준다며 돈을 던지듯 주고 가버린다든지, 백화점 매장 직원이나 택배기사 대하듯 한다든지, 값싼 중고물품에 과도한 포장과 사후 서비스를 요구한다든지 온갖 유형의 불만들이 나열돼 있었다.

특히 선의로 무료 나눔을 했던 일부 이용자들은 상대방의 터무니없는 무례함에 혀를 내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마치 돈 주고 버려야 할 물건을 내가 가져가 주니 감사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하는 이도 있다는 거였다.

국내 중고시장 규모는 최근 5년 새 5배로 성장해 현재 20조 원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중고거래는 판매자와 구매자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자원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오염을 줄이는 측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시장이 커지다 보면 그와 비례해 문제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 사기거래와 같은 범죄행위는 법이나 기술로 억제할 일이다. 그에 더해 무례함과 비매너 역시 시장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거래에 나서면 당근이 더욱 맛날 듯하다. 
 

(사진=당근마켓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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