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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위안부는 매춘부"…하버드 교수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월드리포트] "위안부는 매춘부"…하버드 교수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 "성 노예 이야기는 완전한 소설(pure fiction)"…하버드 교수의 도발

미국의 최고 대학 하버드에 대한 판타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강렬합니다. 특히 변호사들이 다양한 직종에 진출해 있는 미국에서, 하버드 법대의 프리미엄은 강한 게 사실입니다. 사망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배럿 대법관이 하버드와 예일 법대 출신이 아닌 걸 가지고 파격이라고 표현하는 기사도 많았습니다. 하버드 법대라는 이름값에서 오는 권위 때문에 미국에서도 그 교수들의 말과 글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하버드 법대의 램지어 교수의 도발은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학술지에 실린 논문 <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과(3월 정식 출간 예정인데, 온라인 PDF 버전은 지금도 35달러 정도 내면 볼 수 있습니다.) 산케이의 해외판 선전지인 재팬 포워드에 실린 기고문 <Recovering the truth about the comfort women>이 논란의 대상입니다. 내용상의 큰 주제는 대동소이하지만 재팬 포워드에 실린 기고문은 대중을 상대로 한 글이라 램지어 교수의 속내가 훨씬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위안부 성 노예 이야기는 완전한 소설'이라고 돼 있습니다. 논문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게임 이론에 근거한 계약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돈을 많이 벌려는 매춘업자와 가급적 성매매 노동을 열심히 안 하려는 예비 매춘부가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용 계약을 맺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계약에 따라 여성들은 1,2년 일하는 조건으로 고액의 선급금을 받았고, 돈을 충분히 많이 벌면 계약 만료 전에 떠날 수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극우 인사들이 이런 한심한 글을 쓴다면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겠지만, 상대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의 교수라는 점에서 문제의 뿌리는 훨씬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이 전쟁 통에 끌려가 성 착취를 당한걸, 사실 그 소녀들이 돈을 벌려고 매춘 계약을 맺은 것뿐이라는 황당한 거짓말을 하버드 교수가 공식 논문에 발표했다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기고문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 확인하기 위해 하버드 법대 석지영 교수와 코네티컷 대학 역사학과의 알렉시스 더든 교수와 화상 인터뷰했습니다. 화상 회의 기술이 워낙 발전한데다 코로나로 화상 인터뷰에도 사람들이 익숙해지면서 미국에서 도저히 하루에 인터뷰할 수 없는 곳에 있는 두 사람의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 하버드 법대 석지영 교수의 분노…"노예 계약이 계약인가"

하버드 교수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인터뷰 캡처

하버드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하버드 교수 사회도 들썩거리고 있다는 건 주목해서 볼 부분입니다. 특히 석지영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기고문과 논문의 문제점에 대해 트위터에 13개 항목에 걸쳐 본인 생각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석 교수는 한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공부의 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법의 재발견> 등 책이 나와 있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발레리나를 꿈꾸다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도 다녔고, 예일대, 옥스퍼드 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뉴욕 맨해튼 검사,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 서기 등을 거쳐 실무 경력도 화려합니다.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하버드 로스쿨 종신 교수가 됐을 때가 지난 2010년이었는데, 당시 38살에 불과했습니다. 딸 가진 부모들이라면 롤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학업적인 성취를 많이 이룬 분입니다.

석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자마자 이메일을 보냈는데, 다음날 바로 인터뷰를 하겠다는 응답이 돌아왔습니다. 트위터에 글을 올린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본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어떤 생각인지 한국 시청자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석 교수는 법률 전문가답게 램지어 교수가 말하는 매춘 계약의 문제점부터 지적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사에 반해 강압 상태에서 맺은 계약은 계약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강압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인 기록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봤을 때 도저히 그렇게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석지영 교수는 트위터에도 이 부분을 자세히 써놨는데, 수천 명과 매춘을 해야 하는 여성들이 '의무'를 이행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램지어도 알고 있는 건데, 이건 다른 말로 '노예 계약이라고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난 뒤에는 가해자 쪽에서도 이를 잊고 미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사태도 그런 측면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전쟁 범죄를 자꾸 잊고 미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석 교수는 학문의 자유를 굉장히 강조했는데, 램지어 교수의 주장도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램지어 교수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관점이 명확했습니다.) 다만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성노예 상태였다는 걸 유엔과 국제 앰네스티 등이 이미 인정했고, 이를 일본 정부도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수용했는데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는 이를 뒤집을 근거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혀 설득력이 없는 근거로 논문을 써놨기 때문에 한마디로 '실패한 연구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를 공개반박한 뒤 당사자에게도 직접 왜 동의할 수 없는지 의사를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반응이 어땠냐고 물어봤는데, 아직 반응이 없었고 그렇게 하는 건 그의 권리라고 답했습니다. 석 교수는 말을 또박또박 천천히 하면서 단어를 하나하나 고민해 말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동료 교수 비판인 만큼 자신의 분노 수위를 적절한 선에서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성명을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 한때 램지어의 제자였던 코네티컷대 더든 교수 "출간돼서는 안 되는 논문"

하버드 교수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인터뷰 캡처

코네티컷 대학 역사학과 더든 교수는 시작부터 굉장히 친절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했다면 커피나 과자부터 대접하면서 인터뷰했을 텐데 화상으로 봐서 아쉽다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를 50분 가까이 했는데, 램지어 교수 논문에 대한 한편의 역사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논문의 연원과 문제점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목조목 지적했는데, 전혀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됐습니다. 한국계가 아닌 미국인 교수가 일본사와 한국사에 이렇게 관심이 많고, 또 잘 아는 분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더든 교수는 90년대 중반 시카고 대학에서 램지어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역사학 전공자였지만 일본법 강의를 들었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때도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 발언한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런 적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램지어 교수는 경제학으로 훈련된 법률 이론가여서 이런 역사학 분야는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더든 교수는 자신의 비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오는 게 절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여전히 자신과 램지어 교수와 관계는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이 인터넷에 등재된 지난해 12월에 더든 교수에게 직접 이메일로 논문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램지어 교수의 기고문과 논문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생각해야한다고 더든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기고문이야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 미국의 폭스뉴스나 브레이트바트에 나오는 가짜 뉴스처럼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의 영역인 학술지에 실리는 것은 전혀 얘기가 다르다고 강조했습니다. 학술 논문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자신도 알지만(그래서 사람들이 놀리는 것도 안다며 웃었습니다.) 엄정한 팩트만을 담는 학술 논문에 이런 허위 사실이 나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논문 전체가 오류와 실수로 가득 차 있어서 학술 논문으로 출간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더든 교수는 이 논문이 과연 'Peer review'(동료들의 논문 평가)를 제대로 거친 건지 의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리뷰를 했다면 이 논문의 출간을 막았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재팬 포워드에 실린 램지어 교수의 기고문을 보고는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전쟁 성노예 스토리가 완전한 소설이라고 램지어가 말한 데 대해서는, '학자가 그런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고 답했습니다. 램지어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일본 정부로부터 나오는 수많은 문건이 있고, 실존하는 증거가 있으며, 당시 사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는 겁니다. 물론 전쟁 통에도 계약을 맺은 위안부가 있을 수는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율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일부 문헌적인 기록과 사료를 가지고(램지어 교수 논문의 참고 문헌은 대부분 일본 측 기록입니다. 참고문헌에 등장하는 일부 한국인 저자의 자료는 대부분 위안부 왜곡에 활용되는 문제 서적들입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각색해 전체 위안부 피해자들이 사실은 전부 매춘부였다고 일반화시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습니다. 더든 교수는 인터뷰 내내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는데, 안타까움과 황당함이 느껴졌습니다.

더든 교수는 또, 램지어가 논문에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만 콕 집어서 매춘 계약을 맺었다고 한 건 너무 황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타이완, 필리핀,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수많은 곳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강제 동원했지만 그걸 모두 빼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격돌(smackdown)로 만들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건 솔직하지 못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학술 영역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더든 교수는 이 문제를 흑인 노예 문제에 대입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상이 흑인을 노예 삼으려 데려오면서 계약서를 쓰면 이걸 계약이라고 볼 수 있겠냐는 겁니다. 석지영 교수와 마찬가지로 더든 교수도, 램지어 논문은 계약의 의미를 끔찍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더든 교수는, 가장 속상한 것은 일부 우익들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버드라는 이름값을 이용해서 '이 논문은 하버드 교수가 쓴 것이니 옳고, 나머지는 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일본인들도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 자체가 불공평한 일이라고 개탄했습니다. 하버드의 이름에 너무 세게 먹칠을 해놔서 자신이 아는 하버드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 "인터뷰 안 한다"…거듭된 램지어 교수의 인터뷰 거부

위안부 매춘부라 주장한 마크 램지어 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문제의 논문을 낸 램지어 교수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습니다. 하버드 교지인 크림슨에는 학생들과 자신의 논문과 관련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했지만, SBS 인터뷰 요청은 결국 거부했습니다. 사무실에 전화도 여러 차례 해보고 이메일도 계속 보내면서 결국 답은 받았지만 처음에는 완곡하게 거부하다 나중에는 단호하게 "인터뷰 안 한다"는 답을 듣게 됐습니다. 논쟁적인 주제로 자신의 소신을 담아 논문까지 냈지만, 언론 인터뷰 자체를 피하는 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무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트럼프 탄핵 재판이라는 초미의 관심사가 펼쳐지는 상황이라 경황이 없는 면도 있습니다. 다만 다른 한일 갈등은 당사자들의 싸움이라고 미국 매체들이 한발 빠져 있을 수 있다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는 인류 보편 인권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대부분 미국 주류 언론에서 언급조차 안 한다는 건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 인권 운동이라는 것이 너무 국내용에 머문 게 아닐까 아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 정부 출범에 맞춰 우리 정부도 해외에서 위안부 피해자 인권 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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