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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안 무섭다는 거짓말

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덜컹거리는 구조차 안에서 나는 깊은 무력감을 경험한다. 멀미는 나를 더욱 힘없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뒷자리의 온도, 옷에 베인 불 냄새, 차의 흔들림, 혼이 빠져나간 몸. 멀미하기에 이만큼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 아무도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불을 끄고 돌아가는 길인데 나만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차창 유리에 머리를 콩콩 처박고 있었다. 초점 없이 창밖을 보며 나에게 속삭인다.

"아… 답이 없다… 답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인잇-현장사진

작은 시골집이었다. 야간에 화재 신고를 받고 최대한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했지만 불은 이미 가옥 전체에 번져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불 냄새가 가득한 게 눈을 감고 찾아가라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구조차에서 내려 개인 도끼와 방화문 파괴기 등을 챙겨 길을 나섰다. 시골 마을은 길이 좁고 구부러져서 구조차를 현장까지 바짝 댈 수가 없다. 펌프차들이 최대한 가까이 진입하고 그다음 구급차, 구조차는 늘 멀찌감치 대고 걸어간다. 마을에 가득한 불 냄새와 피워 오르는 연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화재현장 앞에는 펌프차에서 내린 소방관들이 호스를 전개하고 펌프차의 수압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점에 방수 준비가 되어 굵은 물줄기가 불꽃을 향해 쏟아졌다.

"구조대 인명 검색!"

구조대의 주임무는 화재현장에서 혹시 못 빠져나온 사람이 있는지 검색을 하고 구조해내는 것이다. 보통 구조대 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건물 주인이나 관계자에게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인명 검색 여부를 판단하여 지휘관이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번 화재는 목조 골재로 된 시골집에 불이 삽시간에 번진 터라 현장에 도착하는 동안 화재현장에 대한 정보가 마땅히 없었다.

관창(물 호스 머리)을 하나 들고 건물로 진입을 했다. 불과 연기로 가득 찬 건물 안쪽을 불나방처럼 돌아다니다 보면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매뉴얼상 꼭 2인 1조로 관창을 들고 건물 안에 진입을 한다. 이 집은 초입부터 하얀 연기와 수증기에 휩싸여 시야를 전혀 내주지 않았다. 어깨에 멘 휴대용 탐조등을 켰지만 앞은 전혀 보이지 않고 빛이 연기에 분산되어 흡사 희미한 과거의 기억 속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다. 기억을 더듬 듯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더듬으며 혹시 연기를 마시고 쓰러진 사람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손으로 더듬으면서 방의 윤곽을 머리로 그려보지만 쉽지가 않았다. 이 정도 높이면 분명 침대가 될 텐데 하여 더듬다가 갑자기 화염이 얼굴을 덮쳐 귀가 데인 듯 뜨거워졌다. (화재 속에선 귀가 온도에 먼저 반응한다.) 뭔진 모르겠지만 사람이 없는 건 확실했다. 방향을 틀어 왼쪽을 더듬어 갔다. 어느 둥그런 물체를 더듬다 빛을 비춰보니 LPG가스통이었다. 너무 놀라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이쯤이면 방의 끝에 다다른 듯했다. 나는 들어왔던 동선을 거꾸로 이동해 방을 빠져나왔다. 옆방으로 가는 길목은 마치 도자기를 굽은 토기 방 같았다. 다른 루트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곳엔 다른 소방관들이 들어와 천장과 벽면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있어 내가 여기서 타 죽을 일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안을 나는 또다시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불길은 모두 잡혔고 모락모락 수증기만 피어났다. 구조대는 마지막으로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으며 불씨를 찾아 진화를 했다. 시골엔 여전히 나무 골격에 기와를 얹은 구조가 많다 보니 불이 어디에서 시작이 되었든 가장 위쪽인 지붕에 불씨가 남게 된다. 그 불씨마저 완전히 꺼졌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화재가 완전히 진화되었다고 판정한다. 화재는 진화되었고 현장대응단은 구조대 복귀를 명령했다. 구조차로 복귀한 우리는 차 앞에서 서로 격려하며 방화복을 벗었다.

"반장님 수고했어요!!"

"아 예. 반장님도 고생 많았어요. 옷이 엉망이네요. 에잇."

그 말을 듣고 나도 고개를 숙여 옷 상태를 봤다. 옷만 보면 혼자 불 다 끄고 온 사람처럼 재를 온통 뒤집어써 발끝부터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방화복을 벗고 구조차 뒷자리에 올라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좀 전에 화재현장의 기억이 찾아와 곧 다른 의미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 앞에서 아주 잠시 망설였다. 왠지 눈앞에 화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불이 꺼지고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없어진다. 저 집 안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면 내가 빨리 들어갈수록 살아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내가 위험해질 확률도 높아진다. 내가 하는 일은 혹시 있을 생존자의 위험과 나의 위험을 시소 양 끝단에 놓고 늘 나의 위험 쪽으로 무게를 싣는 일이다. 우린 보통 사람들이 등을 지고 피하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하듯 들어가지만 소방관도 사람이기에 고민도 되고 두렵기도 하다.

예전 소방학교에서 군대 동기가 해준 말들이 떠올랐다. 소방학교에서 신입 소방사 과정에 있을 때 드론 교육을 받으러 온 군대 동기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모인 술자리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야 00광역시는 사건이 많다며? 맨날 사고현장 나가고 불 끄러 다니면 엄청 힘들겠다" 내가 물었다.

"그냥 특전사 때랑 똑같지 뭐."

"얘 구조대 차선임이야. 우리 중에 제일 오래됐잖아."

특전 병아리 시절 땐 덩치도 작고 순딩 순딩했던 친구가 지금은 10년 차 베테랑 구조대원이란다. 몸도 헐크가 되어 술잔을 들어 올린 땐 팔뚝까지 걷어올린 남방 끝자락이 터질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럼 너는 이제 불에 들어가도 안 무섭겠다. 그치?" 내가 물었다.

"안 무섭긴~ 매번 무섭지. 낙하산 타는 거랑 똑같아."

베테랑 동기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대답해주었다. 낙하산 부대로 불리는 특전사는 입대와 동시에 정기적으로 낙하산 강하를 한다. 첫 강하는 800m 상공에서 우물쭈물 대다가 교관 발차기에 밀려서 뛰어내렸고 그 후론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뛰어내렸다. 공중에서 낙하산 펴지는 시간을 수로 센다. '1만, 2만, 3만, 4만, 산개 검사'를 외쳐야 하지만 4년 동안 '1만'과 함께 비명을 지르다 제대를 했다. 그만큼 매번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었다. 내가 근무한 지역대에 한국 강하 기네스를 보유하고 계신 원사님이 계셨는데 그분도 강하 전엔 매번 무섭고 떨린다고 말씀하셨다.

소방관 소방차 (사진=픽사베이)

그때 들었던 동기의 말을 오늘도 현장에서 느껴보니 이건 시간이 지난다고 느는 건 아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망설임이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내 지인들은 멋진 일을 선택했다며 엄지를 치켜든다. 그들 앞에선 늠름한 척하고, 불 속에선 또 장님처럼 헤맬 내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고 무기력해졌다. 나는 매번 나의 위험에 무게를 싣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진실의 순간에 나의 모습은 이렇게 나약하고 불안하다. 공도 10년 굴리면 구력이란 게 생긴다고, 소방관 일도 나중엔 그 관성으로 하는 거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당장은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업체에 요청했던 면체(호흡 마스크) 교체용 렌즈가 도착해 있었다. 5개 요청했는데 6개가 들어 있는 게 하나는 서비스로 넣어준 듯했다. 먼지가 잔뜩 묻은 내 면체를 꺼내어 닦다가 보니 렌즈에 잔기스가 잔뜩 난 게 보였다. '이래서 안 보였나?' 싶어 렌즈 옆에 나사를 풀어 새 걸로 갈아 끼웠다. 김 서림 방지 필름도 안쪽에 붙이고 나니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기념으로 한번 써보고 차고에 나가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려 보니 훨씬 선명한 게 느껴졌다. 라식 수술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적어도 다음 화재엔 앞이 더 잘 보일 것 같아 조금 힘이 났다. 좋아지겠지. 내가 아니면 장비라도 좋아지겠지 국가직 됐으니까. 집에 가서 치킨 시켜 먹으면 기분은 좀 좋아지겠지. 그냥 그렇게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다시 힘을 낸다.

#인-잇 #인잇 #시골소방관심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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