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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귀멸의 칼날'과 능력주의 사회

[인-잇] '귀멸의 칼날'과 능력주의 사회

Max | 뭐라도 써야지. 방송사 짬밥 좀 먹은 저널리스트, 프로듀서.

SBS 뉴스

작성 2021.02.07 11:07 수정 2021.02.07 17:5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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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 '귀멸의 칼날'과 능력주의 사회

저패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이 한국에서도 흥행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팬층이 나름 두터운 걸로 알고 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도 아닌데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네요. 저는 평소에도 주로 주말 조조 영화를 보는데, 코로나 시대라서 꼭 보고 싶은 영화가 나오면 주말 첫 회에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의 좌석을 예매하곤 했습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을 그렇게 봤는데 전체 관람객은 6명이었죠.

그런데 지난 주말 오전 9시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좌석은 퐁당퐁당이었지만 관람석 중앙 부분이 꽤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이런 상영 시간대에는 가운데가 아닌 옆 부분 좌석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어쨌든 그렇게 <귀멸의 칼날>을 보았습니다.


귀멸의 칼날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의 원작은 2016년 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일본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된 만화입니다. 평소라면 안 봤을 영화입니다. '귀멸의 칼날'이라는 제목과 오리지널 포스터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제 기호와는 거리가 멀고 망가를 원작으로 한 저패니메이션을 즐겨보는 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일본에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19년 만에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도대체 어떤 영화 길래?"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혈귀와 이를 물리치려는 검사 집단 귀살대의 대결을 그린 만화입니다. 영화 초반, 제 취향이 아니어서 내용에 몰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요. 저는 캐릭터들의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와 만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들이 조금씩 거슬렸습니다만, 그날 온 대부분의 관객들은(젊은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표현과 작화에 익숙하고 바로 그 점을 즐기러 온 것 같았습니다. 액션신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더군요.

박진감 넘치는 활극인 이 영화에는 약간 신파적 설정과 함께 교훈적인 장면들도 곳곳에 나옵니다. 어찌 보면 '구린' 대목인데 평소와는 좀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캐릭터로서 혈귀를 죽이는 귀살대 최강 검사인 렌고쿠 코쥬로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의 렌코쿠에게 묻습니다. "왜 네가 강하게 태어났는지 알고 있느냐?"

"너는 강하게 태어났다. 강하게 태어난 건 약한 사람을 도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딱 과거 소년 만화에 나올 만한 너무나 평범하고 하나마나한 소리 같은 이 대사가 여느 때와는 좀 다르게 들렸습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출간된 책들이 만든 큰 지적 흐름 중 하나인 '능력주의' (Meritocracy)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능력주의 신엘리트의 세계를 그린 셰이머스 라만 칸의 <특권>이 2019년 말 출간되며 시작한 이 흐름은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 (원제: 능력주의의 등장), 대니얼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 (원제: 능력주의 함정), 박권일, 홍세화 등의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원제: 능력주의의 폭정)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10여 년 전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로 불 붙인 정의로움에 대한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정의'→'공정'→'능력주의'로 핵심 개념어를 바꿔가며 진화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신문마다 능력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성찰하는 칼럼들도 줄을 이었습니다. 강우일 주교는 '이 세상에 공정이 가능할까' 라는 칼럼을, 김민권 경희대 교수는 '누가 능력주의를 미화했는가' 라는 칼럼을 한겨레 신문에 썼고, 강남순 교수는 '능력위주사회의 위험, 겸허와 연대의 윤리로 넘어서야'라는 칼럼을 중앙일보에, 김호기 교수는 '기회'의 공정 vs '결과'의 공정…능력주의의 빛과 그늘'이라는 칼럼을 한국일보에 각각 기고하며 능력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이들의 논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능력주의 자체의 문제점. 세습적 신분이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보상이 결정되는 능력주의는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능력 또한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라, 타고나거나, 음양으로 사회적 도움을 받았거나, 본래 가치와 상관없이 특정 시대가 요구하는 임의적 기준에 의해 높이 평가받는 것일 수 있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개인화한다는 겁니다. 둘째, 능력주의 토대가 되는 공정한 출발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 버렸다는 겁니다. '개천용'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반면 책 제목처럼 '엘리트 세습'은 용이하게 되면서 신분제와 세습제에 반기를 들었던 능력주의가 점차 세습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칼럼들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958년 '능력주의' (메리토크라시)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마이클 영은 당초 이 용어를 부정적인 뜻으로 썼는데 언제부턴가 이 말이 현대사회에서 공정성을 담보하는 긍정적인 뉘앙스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 자체가 '능력주의는 완벽하게 공정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면서 불공정을 '분식'하거나 일종의 '면죄부'처럼 쓰이고 있다는 방증인 듯합니다.

귀멸의 칼날
<귀멸의 칼날>의 배경은 능력주의란 말이 생겨나기 30여 년 전인 일본 다이쇼 시대(1916~23)입니다. 멸귀 잡는 귀살대의 최강 검사 렌코쿠는 한마디로 '능력자'입니다. 그는 불굴의 의지를 타고 났고 단련을 거듭해 검술에도 능합니다. 능력이 있고 탤런트가 있습니다. 탤런트의 어원은 그리스어 탈란톤으로 무게를 재는 단위 또는 화폐 단위였다고 하지요. 성경에는 여행을 떠나는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돈)를 맡긴다는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가 나오는데 달란트의 의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신이 인간에게) 잠시 맡겨 둔 것'(entrusted)으로 풀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선물'의 영어 표현인 기프트(gift) 역시 재능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요. 재능이나 능력은 내가 잘나서, 오로지 나의 노력만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선물 받은 것, 운 좋게도 나에게 맡겨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 바탕한 개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렌코쿠의 어머니가 렌코쿠에게 들려준 이야기 – 강하게 태어난 것은 약자를 도우라는 의미-는 탤런트와 능력, 나아가 공정함에 대한 오래된 생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그 대목이 새삼스럽게 들린 이유입니다. 내가 받은 능력, 재능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쉽지 않은 자각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보편정서에 반하는 쉽지 않은 깨달음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능력이 아닌 추첨으로 공직자를 선발했다고 하지요. 물론 보완장치는 있었지 만요. 현대를 만들어오고 지탱하고 있는 능력주의. 신화를 넘어 그 한계가 노출된 상황이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시스템이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에 바탕 해 있기 때문이지요.

재능을 타고 났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엄청나게 노력해 인간 최고의 능력자에 오른 렌코쿠는 멸귀를 쫓아내고 사람들을 구해낸 뒤 어머니의 혼령을 보며 자신이 할 일을 다 이루었냐고 묻습니다. 훌륭하게 해냈다는 답변을 듣자 미소를 지으며 앉은 채로 숨을 거두는 렌코쿠. 만화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만화 같이만 들리지 않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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