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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 원전' 공방 속에 묻혀선 안 되는 것들

[취재파일] '북한 원전' 공방 속에 묻혀선 안 되는 것들
● "'Pohjois'가 무슨 뜻이지?"

월성원전 폐쇄 의혹 공소장에서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파일목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Pohjois' 라는 의문의 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 파일이 들어 있던 폴더 이름('60 Pohjois')이었다.

"포조이스 라고 읽어야 되나" "이런 영어 단어도 있나" 하는 생각에 사전을 찾아보니 없는 단어였다. 산업부 직원이 삭제한 폴더 이름이라면 뭔가 감출 것이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한글 단어를 해당 알파벳으로 바꿔놓은 것일까? 하지만 생각해봐도 'ㅔ(p)'라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럼 거꾸로 읽으면 단어가 되는 것일까? 부족한 지식 탓에 연이어 생겨난 의문 속에서 결국 'Pohjois'는 '북쪽'을 뜻하는 핀란드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SBS '끝까지 판다'팀이 지난달 28일 월성 원전 폐쇄 의혹과 관련한 공소장을 단독 입수해 공개한 뒤 정치권을 중심으로 후폭풍이 거세다. 제1야당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정권이 비밀리에 북한에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며 "정권의 운명을 흔들 이적행위" 라고 총공세에 나섰고,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턱없는 억측"이라며 "국민의힘이 선거를 앞두고 '신북풍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야당 비판에 가세했고,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에서 건넨 USB 내용이 무엇이었냐는 문제로까지 불이 옮겨붙는 모양새다.

● 납득 어려운 산업부 해명

문건을 생산한 주체인 산업부는 "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부처에서 논의한 아이디어 차원에 불과하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북한 원전 건설 실현 가능성 등을 고려해보면 그런 해명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디어 차원의 문서라면서 버전을 업데이트 시킨다거나 '동 보고서는 내부검토 자료고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이라고 명시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한 탈원전을 국정 과제로 내세운 정부에서 아무런 지시도 없이 담당부처 공무원이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논의한다는 것도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문건 작성 경위와 삭제 과정을 둘러싼 의혹은 문서를 복원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파일삭제

● SBS가 제기한 문제는 북한 원전만이 아니다

북한 원전 건설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현재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파일 중 '끝까지 판다'팀이 제기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의 동향을 산업부에서 사전에 어떻게 파악했는지, 경찰에만 제출했다는 집회신청서가 어떻게 산업부 공무원 컴퓨터에서 발견될 수 있었는지 등 '사찰 의혹' 또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삭제된 파일 가운데에는 산업부가 한국수력원자력 노조 동향을 파악한 문건까지 나왔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와 관련, '청와대와 산업부의 교감' 의혹 또한 심각한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산업부 공무원들의 공소장에는 산업부가 원전 폐쇄 결정 20여일 전 청와대에 폐쇄 결정을 보고 했다고 나와 있다. 경제성 평가가 나오기도 전이고 원전 폐쇄 여부를 결정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들에게 이사회 일정 통보도 되지 않았던 시점이다.

북한 원전 건설 의혹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며 정치권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야당에선 "청와대와 여당의 은폐", 청와대와 여당은 "무책임한 의혹 제기"를 각각 내세우며 서로의 주장만 앞세우고 있다.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여부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 원전 건설 의혹의 그림자가 정쟁의 소재로 이용되면서 자칫 '민간단체 사찰' 의혹과 청와대-산업부 교감 의혹 등이 가려지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해당 사안을 취재했던 기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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