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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자농구 대표팀 전주원 감독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모든 걸 쏟아붓겠다"

[취재파일] 여자농구 대표팀 전주원 감독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모든 걸 쏟아붓겠다"
동·하계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사상 한국인 최초 여성 사령탑에 오른 전주원 감독은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선임 후 쇄도하는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일단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고, 올림픽이 열린다 해도 목표를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여자농구는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의 업적을 이룬 이후 올림픽 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8강에 그쳤고,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시드니올림픽 이후 21년 만에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서는 전주원 감독은 SBS와 전화 통화에서 성적을 떠나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붓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은 WKBL리그가 진행 중이니까 3월 중순 이후 대표팀 소집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센터 자원이 박지수 선수밖에 없어서 걱정이에요. 박지수는 우리나라에서 몇십 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센터인데 지수를 받쳐줄 장신 선수가 없어요. 188cm 이상 되는 선수가 같이 골 밑에서 같이 좀 버텨줘야 지수도 버겁지 않고 시너지가 날 텐데 그게 많이 아쉽죠. 박지수의 수비와 리바운드 능력은 올림픽 무대에서도 A급이라고 봐요. 이미 WNBA에서도 입증이 됐거든요. 한국 농구의 장점인 스피드와 조직력에 박지수의 높이와 패스웍을 잘 살리는 전략을 구상해봐야죠."

전주원 대표팀 사진

전주원은 말 그대로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 입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주역인 그녀는 대한민국 남녀를 통틀어 올림픽 무대에서 트리플더블을 작성한 1호 선수이고, 출산 후 현역으로 복귀해 프로팀 우승을 일궈낸 1호 선수이기도 합니다. '천재 가드'로 명성을 떨치다 은퇴 후엔 프로팀의 코치로 10년 동안 무려 8번의 우승을 일궈내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화려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감독 데뷔전이 될 도쿄올림픽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 선수들과 같이 만들어가야죠. 국가대표팀은 손발을 맞춰볼 수 있는 연습 기간이 짧기 때문에 선수들의 장점을 어떻게 잘 조합해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죠. 결국 감독-코치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저와 이미선 코치 모두 WKBL 리그에서 선수부터 코치까지 경험하면서 선수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능력치를 극대화해서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본선에는 12개국이 출전해 4팀씩 3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벌입니다.
각 조의 1, 2위 팀들과 3위 팀들 중 상위 두 팀이 8강에 진출하는데 전망은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본선 진출 12개국은 세계 1위 미국, 2위 호주, 3위 스페인, 4위 캐나다, 5위 프랑스, 6위 벨기에, 8위 세르비아, 9위 중국 10위 일본(개최국), 14위 나이지리아, 19위 한국, 22위 푸에르토리코입니다.

다음 달 초 열리는 본선 조 추첨은 12개 나라를 4개 시드그룹으로 분류해 3개 조로 편성하는데, 우리나라는 최하위 그룹에 속해 상위 시드그룹의 강팀들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조별리그에서 세계 랭킹 10위 이내 국가를 상대로 최소한 1승을 거둬야 8강행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팀은 하위 그룹이니까 어차피 조 추첨에서는 기대할 게 하나도 없어요. 예전에는 조 편성을 2개 조로 나눴기 때문에 운 좋으면 강팀을 피할 수 있었는데 이젠 3개 조로 나눠서 무조건 강팀과 붙게 돼 있잖아요. 오직 실력으로 강팀들의 벽을 넘어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거나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시드니올림픽 때 한국 여자농구가 4강 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모두 예선 탈락이라고 생각했죠. 도쿄올림픽에서도 전력을 탓하기보다는 한국 농구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을 살려 앞만 보고 '"돌격, 앞으로!"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또 나오지 말란 법 없잖아요?"

전주원은 선수 시절 천재성과 함께 '악바리' 근성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91년 실업팀 현대 여자농구단 입단 이후 해마다 농구대잔치 베스트 5와 어시스트 1위를 거의 독차지했고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1997년과 1999년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4강 진출 때는 쿠바전에서 10득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올림픽 농구 사상 남녀를 통틀어 최초의 트리플더블 주인공이 됐습니다. 프로 출범 이후에도 1999년 여름, 2000년 겨울, 2003년 여름리그 등에서 어시스트 1위를 차지했고 출산 때문에 2004년 한 차례 은퇴했다가 2005년 여름리그에 복귀해서도 7시즌 연속 어시스트 1위를 차지하며 소속팀 신한은행을 우승으로 이끄는 투혼과 근성을 보여줬습니다.

전주원

"제가 은퇴하고 2004년 9월에 딸을 낳았는데 이듬해 봄에 신한은행 구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선수로 다시 뛰어 달라고.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했죠. 출산한 지 6개월도 안 지났는데 어떻게 몸을 만들어요? 구단에서는 경기장에 나오기만 해달라, 딱 1분 만이라도 좋으니 코트에 서 있기만 해 달라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두려웠어요. '은퇴-출산 후 복귀'는 아무도 안 한 일이고 내가 처음인데 할 거면 잘해야지 복귀해서 잘 못 하면 그동안 쌓아놓은 게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까 봐.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복귀를 결심했고 다시 운동 시작한 지 두 달 반 만에 여름리그를 치렀는데 결국 우승까지 했어요. 당시에 제 전투력은 최고치였던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잘 못 하면 모든 '엄마'들이 욕을 먹을까 봐, 추락하기 싫어서 정신 집중이 엄청 잘 됐어요. '너는 집에나 있지 왜 나왔니?' 이런 소리 듣기 싫어서 진짜 죽도록 했던 것 같아요."

전주원은 40세까지 현역으로 코트를 누볐습니다. 31세에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37세에 왼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데 이어 38세에 왼쪽 무릎 연골 제거 수술까지 받고도 초인적인 재활 운동으로 버티며 정신력과 투혼의 극한을 보여줬습니다.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아요. 정말 이를 악물고 재활 운동을 했어요.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해서 통증을 줄이면서 두 시즌을 더 뛰었죠."

전 감독은 선수 때는 팀에서 합숙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만 딸의 얼굴을 봤다며 딸의 어린 시절 엄마가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딸 아이가 어릴 때는 낮잠 잘 때 엄마가 못 가게 꼭 엄마 지갑을 품고 잤어요. 헤어질 때마다 가슴 아프고 서로 울기도 많이 울었죠. 그런데 6살쯤 되니까 딸이 알아요. 엄마가 농구선수라 경기하러 가야 한대요. 그때부터는 보채지 않았어요. 지금 고등학생인데 작년에 엄마가 늘 자랑스럽다고 처음 얘기하더라고요. 그 얘길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죠. 되게 미안했어요, 딸한테."

프로팀 코치 10년을 하는 동안 몇몇 구단으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고도 아직 배울 것이 많다며 고사했던 그녀는 농구 원로들의 권유와 설득으로 대표팀 감독직은 고사할 수 없었다며 올림픽 무대 한국 여성 1호 사령탑이라는 자리의 무게감을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주원

"여성 감독이라서 안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민들께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선수들과 힘을 합해 정말 모든 걸 쏟아붓겠습니다."

전화 인터뷰를 마치면서, 딸은 운동 안 시키냐고 묻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딸은 운동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과정이 너무 힘들고 성공 확률도 높지 않거든요. 우리 딸 장래희망은 간호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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