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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회사 생활, 편견에 빠지지 마세요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회사 생활, 편견에 빠지지 마세요
조직 개편으로 우리 지사 관할 지역이 넓어지면서 기존에 하지 않아도 되던 일을 하게 되었다. 지위와 봉급은 그대로인데 일만 많아지니 "싼값에 잘도 써먹네"라는 푸념을 공개적으로 했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무는 적극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살면서 생기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그러니 겉으로는 싫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엔돌핀이 솟아오름을 느낄 수밖에. 어쨌든 난 추가로 받은 지점을 어떻게 운영할지 구상하면서 오랜만에 기쁨이 깔린 긴장과 두려움, 초조함을 느꼈다.

그런데 세상사,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 마련이다. 나로선 생기를 얻었으나 큰 걱정거리로 마음의 평안을 잃었다. 큰 걱정거리? 이 지역 조직연합체의 집단 반발이 그것이다. 전임자 및 현 직원들에게 들어보니 그들은 회사와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집단이라는 것.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뭐든 회사도 이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러니 중간에 낀 현직 지점장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들과의 관계를 잘 설정하고 협상해서 회사의 규정과 지침을 그들이 준수하도록 해야 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점의 약점을 아는 그들은 합법과 불법을 교묘히 넘나들며 시도 때도 없이 지점장에게 폭언이 담긴 전화, 문자 투척을 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멈추겠다'는 협박성 멘트(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를 해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이 지역의 지점장들을 처음 보았을 때 그들의 얼굴과 정신 상태는 피폐 그 자체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마음이 평안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곧 이들, 그러니까 마치 도깨비, 악동, 악마와 같은 분들과 맞닥뜨려야 하니 말이다. 맥이 빠진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평정심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프랑스인 3분의 1이 봤다는 코미디 영화 '알로, 슈티'가 떠올랐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우체국장 필립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따뜻하고 여유로운 남부 프랑스로 전근을 계획한다. 하지만, 일이 꼬여 그가 발령받은 곳은 프랑스 최북단, 일명 '슈티'라 불리는 시골 '베르그'. 아무튼 프랑스인에게 그곳은 혹독한 추위와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들, 알아듣지 못할 방언 때문에 모두가 꺼리는 곳이다. (다음 줄거리는 하단에 기재)』


선입견 및 편견의 정의는 무엇일까? 선입견은 특정 대상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거나 타당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평가 혹은 판단함으로 인해 형성된 지식이나 이해의 틀을 의미하며,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둘 다 사물, 사항, 인물 등에 대해 미리 접한 정보나 자신이 처음 접했을 때 가진 지식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들 대상에 대해 이미 형성된 잘 변하지 않는 관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위의 영화 이야기에서 프랑스 북부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들이 사용하는 사투리 단어인 '슈티'는 일종의 편견이다. 그리고 '필립'은 그 선입관에 물들어 있는 나 자신이다. 필립은 슈티에 가기 전 그곳에 살았던 친척 및 서적 등을 통하여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데, 그곳은 발가락이 잘릴 정도로 춥고 주민들은 무식하고 하나밖에 모르며 술만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들만 있고 심한 사투리로 소통조차 안 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확신하게 된다. 선입관과 편견이 그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나도 필립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필립이 '슈티'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에 사로잡혀 그곳에 가기 싫어 마음고생을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조직연합체는 막무가내'라는 선입관과 편견에 빠져 그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심적 부담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큰 반전이 있다. 필립은 아이러니컬하게 슈티에서의 생활에 크게 만족해 이후 다시 전근 가야 할 때가 되자 떠남을 매우 아쉬워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결국 '나 혼자 죽자'며 기러기 가장이 되기로 결심한 '필립'. 그는 홀로 끔찍한 슈티로 향하는데…… (가기 싫은 마음에 고속도로에서 너무 저속 운전을 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떼이는 해프닝도 겪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상 가서 보니, 유쾌하고 따뜻한 마을 분위기와 독특하지만 정감 있는 방언까지…… '필립'은 처음의 날 선 자세가 무색하게 슈티 생활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중략) 이후 다시 필립은 전근을 가게 되는데 이때 그는 슈티와의 이별을 너무나 애석해한다.』


필립이 슈티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막상 가서 보니'였다. '막상 가서 보니'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씨, 생각보다 친절한 사람들, 생각보다 쉽고 유쾌하게 해결된 언어 문제. 다시 강조하지만 '막상 가 보니'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큰 걱정거리를 큰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막상 그들을 만나보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선입관과 편견이, 필립이 슈티를 몸소 경험하고 그것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듯이 나 역시 그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막상 만나기 전 그들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더 이상 확대재생산 하지 말아야겠다. 이것은 큰 걱정거리를 앞에 두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깨달음을 얻자 또 하나의 경구가 생각났다. 노자 13장에는 "큰 걱정거리를 내 생명(몸)처럼 귀하게 여겨라"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를 내 맘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큰 걱정거리가 있다. 고로 나는 생명(몸)이 있다"와 같은 의미이다(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명제의 발견은 이미 이천 년 전에 노자가 한 말이다). 생명은 귀중하다. 그런데 내가 왜 큰 걱정거리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려야 하나? 큰 걱정거리는 역설적이지만 내 생명수와 같은 것인데 말이다.

무엇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에서 오는 큰 걱정거리는 막상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내 생명처럼 귀하게 여긴다면, 걱정에서 오는 두려움, 불안함 같은 부정적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회사 일을 할 때 이 같은 이치를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겠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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