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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PGA 정복하겠다던 고교생 김시우…"헛된 꿈이 아니었다"

[취재파일] PGA 정복하겠다던 고교생 김시우…"헛된 꿈이 아니었다"

김영성 기자 yskim@sbs.co.kr

작성 2021.01.26 08:00 수정 2021.02.01 11: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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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김시우 선수를 처음 만난 건 8년 전, 2013년 1월이었습니다.

당시 안양 신성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김시우는 여드름투성이 꿈 많은 청춘이었습니다.

2012년 12월 만 17세에 미국 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역대 최연소로 통과해 화제가 된 김시우는 SBS 취재 카메라 앞에서 몹시 수줍어하면서도 조곤조곤 할 말은 다 했습니다.

"타이거 우즈랑 같은 무대에서 뛴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우즈랑 같은 조에서 맞대결 해보고 싶다.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 4대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게 꿈"이라며 작은 목소리로 큰 포부를 밝혔고, 이 내용이 SBS 8뉴스 스포츠뉴스에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최연소 PGA 출전' 김시우 "우즈와 대결, 꿈 같아" (2013년 1월 11일)) 이 방송이 나갈 때만 해도 댓글에는 "PGA 투어 시드를 유지나 하면 다행", "PGA 투어 가서 1승이라도 할 수 있을까?", "꿈이라면 뭔들 못 꾸겠냐" 같은 비아냥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시우는 이런 비아냥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꿈을 향해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내디뎠고 마침내 만 21세였던 2016년 윈덤챔피언십에서 PGA 투어 데뷔 첫 우승을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으로 PGA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당시 이 뉴스는 박인비 선수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소식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7년 5월 김시우는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내로라하는 세계 톱랭커들을 모두 제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해 전 세계 골프계에 'SI WOO KIM'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렸습니다.

이후 3년이 넘도록 승수를 쌓지 못했고 어쩌다 찾아온 우승 기회는 번번이 최종라운드에서 흔들리며 날려버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2부 투어에서 올라온 3년 후배 임성재 선수가 무섭게 성장해 2019년 PGA 투어 신인상, 2020년 혼다클래식 우승, 마스터스 준우승 등으로 주목받으며 한국 남자골프의 대표주자로 떠올랐습니다.

절치부심하던 김시우는 3년 8개월 만의 우승으로 다시 자신감을 찾았고 PGA 통산 3승을 기록하며 자신이 롤모델로 꼽은 최경주 프로의 8승에 이어 한국인 최다승 2위에 올랐습니다.

(양용은-배상문 각 2승, 노승열-강성훈-임성재 각 1승) 우승 상금 120만 6천 달러, 13억 3천여만 원을 받은 김시우는 2013년 AT&T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 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후 164개 대회 출전 만에 통산 상금액이 1300만 달러, 143억 천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매니저의 대회장 출입이 금지돼 혼자 투어를 다니는 김시우는 우승 시상식 직후 다음 대회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이 열리는 샌디에이고로 이동했습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종 라운드에서의 김시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경기 중 표정 변화가 없어 포커페이스로 알려진 김시우는 PGA 투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 최종라운드를 앞두고는 너무 긴장돼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지난 3년 동안 2~3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었다. 그래서 최종라운드를 앞두고는 잠이 잘 안 왔다. 플레이어스 이후 여러 번의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항상 아쉽게 우승까지 하진 못했었다.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했고 우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우승이 매우 뜻깊다. 이 대회 이후에 자신감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 아주 행복하다." 김시우는 3라운드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최종라운드에는 공격적이지 않게 안전하게 플레이하겠다"고 말했는데, 막상 최종라운드 11번 홀(파5)에서는 예상을 깨고 공격적인 샷을 선택했습니다.

페어웨이서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는데 왼쪽에 물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불안해 보였는데 김시우 머릿속에는 다 계획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11번 홀에서 핀까지 남은 거리가 288야드여서 충분히 노려볼 만 했다. 왼 쪽에 물이 있기 때문에 왼쪽으로 빠지는 것보다는, 캐리가 좀 짧아도 충분히 굴러서 갈 수 있어서, 그래서 왼쪽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3번 우드를 잡지 않고, 안전하게, 드라이버는 절대 왼쪽으로 안 간다는 믿음이 있어서 드라이버를 쳐서 좀 캐리를 짧게 해서 언덕을 이용해서 더 내려가게 친 거다." 결국 그린 근처까지 공을 보낸 김시우는 어프로치를 홀 가까이 붙여 여기서 버디를 잡고 패트릭 캔틀레이와 불꽃 튀는 우승 경쟁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김시우는 종종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를 치곤 합니다.

2017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당시에도 3라운드 14번 홀에서 나무 밑 러프에서 핀까지 268야드를 남기고 드라이버로 낮게 깔아쳐 공을 그린에 올린 장면은 그 대회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회자됐었습니다.

그만큼 드라이버 샷에 자신이 있는 김시우였지만 캔틀레이에 1타 차로 앞서가던 마지막 18번 홀에서는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로 티샷을 날리는 더 안전하고도 노련한 선택을 했습니다.

결국 여기서 파를 지켜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김시우 선수의 경기 장면 이번 대회 장소인 PGA 내셔널 골프장은 김시우에게 17살 때 PGA 역대 최연소로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했던 좋은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전설적인 코스 디자이너 피트 다이가 설계한 스타디움 코스에서 김시우는 사흘 동안 보기 없는 무결점 플레이로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우선 이 골프장에 오면 항상 나한테는 좋은 기억이 있는데, 처음으로 PGA 투어에 오게 된 기회를 이 코스에서 얻었고, 내가 17살에 이 코스에 오면서 투어 Q-스쿨을 통과했기 때문에 정말 좋은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오면 자신감 있게 플레이했었는데, 이번 주에도 그때 기억을 살려서 조금 더 편안하게 플레이했던 것 같고, 이런 좋은 기억 때문에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우승으로 김시우는 세계랭킹을 96위에서 48위로 끌어올려 2년 5개월 만에 50위 안에 진입했습니다.

페덱스컵 포인트도 60계단 끌어 올려 9위로 올라섰고 지난해 만료됐던 마스터스 토너먼트 출전권을 다시 확보했습니다.

세계 17위인 임성재와 함께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도 높였습니다.

지난 리우올림픽에서 남자 골프는 안병훈과 왕정훈이 출전해 안병훈이 공동 11위, 왕정훈이 공동 4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열리기만 한다면 남녀골프 동반 메달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1995년생으로 올해 26살이 된 김시우는 최경주 선수의 한국인 최다승 8승 기록을 깰 수 있을 것 같냐는 PGA 투어의 질문에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우선 최경주 프로님이 쌓으신 업적이 워낙 많기 때문에 내가 최프로님 기록이나 승수까지는 생각을 못 하고, 내 목표는 이번 년도에 우승을 하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이르게 달성했다. 올해 목표는 투어 챔피언십까지 끝까지 가는 것, 그리고 또 우승을 추가했으면 좋겠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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