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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백신' 떠맡은 일본 고노 장관, '블록' 날리기도 선수급

연초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떠올라…'백신' 딛고 차기 총리로 급부상?

[월드리포트] '백신' 떠맡은 일본 고노 장관, '블록' 날리기도 선수급
아베 전 총리의 1년 남은 자민당 총재 임기를 물려받은 일본 스가 내각이 집권 4개월을 넘겼습니다. 집권 초기에는 7년 8개월 장기 집권한 아베 총리를 대신한 새 내각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스가 내각은 행정 악습 탈피와 부처 칸막이 해소, 디지털 개혁 등을 내거는 등 적극적인 개혁 의지를 보였고, 이에 부응해 내각 지지율이 70% 이상으로 치솟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여행 촉진책(Go To Travel)'으로 살리겠다며 대대적으로 추진했고, 대형 이동통신사를 압박해 통신 요금 인하를 끌어내는 등 민생을 챙기는 모습도 초반 지지율 상승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시 코로나로 돌아왔습니다. 겨울이 되면서 일본에도 3차 유행의 높은 파도가 찾아왔습니다. 스가 총리는 경제 살리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행 촉진책을 고집하다가 결국 여론에 밀려 지난 연말부터 일시 중단했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일본 전역의 '감염 폭발' 상황은 별로 진전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 8일 도쿄 등 수도권 4개 광역지자체에, 그리고 13일에는 오사카와 교토 등 7개 지자체에 긴급사태를 발령했습니다. 중국과 한국, 동남아시아 등 인근 국가로부터 유학생과 주재원, 산업연수생을 입국시키던 특별입국제도(비즈니스트랙)도 일본 내 감염 확산과 변이 바이러스 유입을 우려한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의 압박에 중단했습니다. 그 사이 지지율은 아베 전 총리의 사임 직전인 30%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기자회견과 국회 질의에서의 잇단 말실수, 국민에게는 5인 이상 회식을 자제해달라고 해놓고 정작 총리 본인은 도쿄 긴자의 고급 음식점에서 7명과 회식을 한 일 등, 스가 내각 지지율 하락은 꼭 코로나 재확산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스가 일본 총리 (좌) -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 (우)

달달한 케이크를 좋아하는 소박한 '레이와(令和) 아저씨'로 집권 초기에 인기를 끌었던 스가 총리에 대한 지지가 꺼지면서 최근 급부상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입니다. '급부상'이라고는 했지만, 지난 아베 정권에서 외무상과 방위상을 지낸 '고인 물' 장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스가 내각에서는 핵심 각료에서 살짝 벗어나 행정개혁을 담당했는데, 특유의 저돌적이고 갈등에 맞서는 캐릭터로 '고노 장관은 일을 좀 하는구나'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줬습니다. 정부 관청에서 윗선으로 올라가며 줄줄이 찍는 '결재 도장'을 없애는 정책을 추진한 게 대표적입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총리부터 우리의 장관급인 내각 각료까지 모두 현역 국회의원입니다. 집권당의 총재가 정부 수반인 총리가 되고, 총리가 동료 선후배 의원 가운데 장관(일본에서는 '대신')을 지명합니다. 정부 수반은 국민이 직접 뽑지 못하지만, 장관이 될 수도 있는 의원은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관리는 물론 전반적인 '인기'를 늘 신경씁니다. 다만 이런 인기 관리는 뭔가 '나서서' 하기보다는, 욕 먹을 짓을 최소화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이런 생각으로 평소 언행을 조심하고 늘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죠.

가나가와현을 지역구로 둔 고노 다로 행정개혁상(가나가와 15구, 8선)은 조금 다릅니다. 일단 SNS 활동이 상당히 자주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고노 장관의 SNS(주로 트위터입니다)에 대해서는 예전에도 취재파일( ▶ 日 장관의 기묘한 SNS 활용법…그가 믿는 것은?) 로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정치인 가운데서는 아베 전 총리에 이어 구독자 수 2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고노 장관의 트위터 프로필

사실 트위터에서의 고노 장관은 꾸준한 '이용자 차단'으로도 악명을 날리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비판적인 글을 날리는 이용자는 당연하고, 별로 차단당할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차단을 당했다는 이용자도 많습니다. 트위터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이른바 '에고 서치ego search'를 해서 그 결과를 차단에 종종 반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트위터의 규칙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만, '차단block'은 '당신과는 어떤 의사소통도 하지 않겠다'는 상당히 극단적인 행위입니다. 누군가가 트위터로 하는 말이 불편하거나 듣기 싫으면, 구독을 중단하거나 본인의 타임라인에 상대의 트윗을 노출하지 않는 '뮤트mute' 기능을 사용하면 될 일입니다. 그래서, 고노 장관이 이렇게 '차단'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당신은 아웃'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정치 행위'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이렇게 트위터 상에서 고노 장관에게 차단당한 사람들의 쓴웃음 섞인 이야기가 도쿄신문에 실렸습니다. 고노 장관이 '차단'을 날린 사람들은 주로 저널리스트나 작가 등 나름의 발신력을 갖춘 사람들일 거라고 추측되지만, 실제로는 일반인도 많았습니다. 고노 장관이 외무상이었던 지난 2019년에 일본에서 아프리카 국가 정상을 초청해 열린 회의에서 외무성이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을 줄세워 놓고 정상들을 맞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걸 보고 '좋지 않다'고 트위터에 올린 오사카의 한 디자이너(61세 남성)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노 장관으로부터 차단을 당했다고 합니다. 고노 장관은 심지어 본인의 트윗에 '좋아요(트위터에서는 하트 모양)'를 누른 사람에게도 가차없이 차단을 날리기도 하니, 차단의 기준이 꼭 '본인 비판'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고노 장관의 '기이한' 트위터 생활은 그렇다치고, 최근 스가 총리가 고노 장관에게 감투를 하나 더 씌워줬습니다. 고노를 일본 정부의 '백신 접종 담당' 장관에 임명한 겁니다. 코로나 대응으로 벌어놓았던 지지율을 다 까먹은 스가 총리가, 추진력 하나만큼은 국민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고노 장관에게 코로나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백신 접종' 관련 업무를 맡기며 긴급 구원을 요청한 모양새입니다. 새 감투를 받은 고노 장관은 처음 이틀 동안은 '공부할 게 많다'며 언론의 관심을 솜씨 좋게 피하더니 지난 주 중반부터는 기존에 일본 정부가 제시해 오던 백신 수급 계획을 일단 부정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6월까지 접종 대상이 되는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백신 수량을 확보하겠다'는 21일 사카이 마나부 내각관방 부장관의 기자회견 발언이 틀렸다며 수정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아직 공급 스케줄이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의 백신 공급계획이 '발이 맞지 않는다'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백신 담당 장관으로 임명된 고노 장관이 포부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 일본 총리관저 코로나 정보 트위터)

코로나 수습의 '핵심'인 백신까지 담당하게 된 고노 장관의 행보에 일본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백척간두에 몰린 도쿄 올림픽은 물론, 늦어도 올 가을에는 총선과 자민당 총재 선거를 치러야 하는 지금의 스가 정권의 운명까지 사실상 고노 장관에게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되면 차기 총리부터 안되면 가을 총선 '낙선'까지, 일본 정치인 가운데 고노 장관만큼이나 파란만장한 2021년이 예고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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