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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군대 보내야 했던 주지사…래리 호건이 말하는 바이든 취임식

● 의회 폭동과 코로나 후폭풍 짙은 바이든 취임식장

4년 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은 멀리서 TV로 지켜봤지만,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납니다. 트럼프 취임식은 워낙 백인 일색인 데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과 비교하면 환영 인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백인들로 가득한 워싱턴DC를 보는 것 자체가 취임식의 볼거리였습니다. 그렇게 일부 백인들의 큰 열망 속에 트럼프 정부는 출발했고, 그건 취임식 참석자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취임식은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볼 기회가 원천 봉쇄됐습니다. 취임식 장소가 의회 폭동으로 유린당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거라 워싱턴 전체에 쇠울타리가 둘러쳐 있었고, 인파 대신 내셔널몰에 배치된 성조기 수십만 개가 볼거리의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자타공인 세계 최악의 코로나 재난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 열리는 행사라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극도로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바이든 취임식

취임식장 내부도 참석 인원이 1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예전에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우리 정치권에서도 워싱턴에 출장 오는 인원도 상당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극도로 제한된 소수만 취임식장에 입장 가능했습니다. 취임식장 분위기와 함께 한국과 관련한 얘기를 전해줄 취임식 참석자를 찾다가 래리 호건(Larry Hogan) 메릴랜드주지사가 생각났습니다. 취임식이 진행 중일 때는 주지사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된 건가 영상을 다시 찾아봤는데, 호건 주지사가 존 벨 에드워드(John Bel Edwards) 루이지애나주지사 등과 취임식장에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위치를 자세히 보니 단상 위가 아니라 단상 아래 가장 앞줄쯤 배치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의전상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취임식 당일 50개 주 의사당에 대한 테러 경보도 발령된 상태라 주지사들이 취임식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큰 결단입니다. 이날 쿠오모 뉴욕주지사를 비롯한 일부 주지사들은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워싱턴행을 아예 포기했을 정도였습니다. 상원의원들도 대통령과 좀 멀기는 했지만 연단 위로 배치했는데, 어렵게 온 주지사들을 제일 앞이라지만 하단에 배치한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장갑과 방한복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던 샌더스 의원도 예전 같으면 상원의원 자격으로 신임 대통령과 훨씬 가까운 거리에 앉는 게 정상이었을 것 같습니다. 취임식장 참석 인원을 1천 명으로 제한하다 보니 통상적인 의전과는 다른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취임식장 분위기를 물어보기 위해 호건 주지사 측과 연락을 해봤는데, 일정을 조율하다 어렵게 화상 인터뷰 승낙을 받았습니다. 인터뷰한 날도 호건 주지사가 일정이 아주 많았는데, 한국 관련한 얘기를 묻고 싶다는 요청에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인터뷰에 응해줘 더욱 감사했습니다. 최근 스트릭랜드 민주당 하원의원부터 호건 메릴랜드주지사까지 줌 인터뷰를 해봤는데, 미국 정치권 인사들은 화상 인터뷰에 너무 익숙했습니다. 링크를 사전에 보내놓고 시간 정해서 들어오는 방식인데다 녹화도 자동으로 되니 취재기자 입장에서도 편리한 것도 사실입니다. 호건 주지사 공보실장이 사전에 카메라 위치 등을 미리 잡고 약속한 시간에 주지사가 바로 들어와서 밀도 있게 인터뷰가 가능했습니다. 이것도 코로나가 불러온 언론계 뉴노멀같습니다.

래리 호건-김수형 기자

● 국방부 승인 안 나서…주방위군 모아놓고 발만 동동 구른 호건

지난해 8월에 인터뷰한 이후 이번에 화상으로 다시 만난 호건 주지사는 체중이 좀 줄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건강해 보인다는 말에 "아내 유미가 건강한 식단을 준비해주고, 운동도 하게 해줘서 그렇다"고 공을 돌렸습니다. 부인에 대한 애정 표현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건 아무리 미국식 표현이라고 해도 보기 좋았던 건 사실입니다. 인터뷰 시작 전에 최근 출간된 한국어 자서전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는데, 한국 관련한 언급이 많아서 한국 독자들도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예상대로 호건 주지사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은 "예전과 굉장히 달랐다"고 회상했습니다. 의회 폭동과 코로나 때문에 대규모 축하 인파가 없는 취임식은 처음이라 본인도 현장에서 굉장히 낯설게 느꼈다고 합니다. 당일 날씨가 꽤 쌀쌀해서 기자들도 외부에서 취재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호건 주지사도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앉아 있기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취임식이 축제 분위기여서 아주 좋았다고 답변했습니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는 워싱턴DC와 거의 한 묶음이라고 봐도 됩니다. 딱 붙어 있는 지역이어서 어느 지역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다른 곳에서 쉽게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의회 폭동 당시 호건 주지사는 일본 대사와 화상 미팅 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회가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의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즉각 주방위군을 워싱턴DC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특정 주에 소속된 주방위군이 다른 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국방부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방위군을 보내겠다고 해도 국방부에서 결정을 내려주지 않아 주방위군이 대기만 하는 상황이 1시간 반이나 지속됐다고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 막판 장관 대행체제로 운영되던 미 국방부가 사실상 제 기능을 못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방위군이 투입되면서 의회 폭동은 신속하게 진압 가능했습니다. 의회 폭동 당일 야간에 저도 의사당 근처에 있었지만, 방위군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힘도 못 쓰고 의회 폭동 당일 오후 늦게부터 흩어진 건 방위군 덕분이라고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 방위군 파견

메릴랜드 주방위군은 취임식까지 워싱턴DC에 1천여 명이 파견됐습니다. 다른 주에서는 워싱턴DC로 오려면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해서 아무래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메릴랜드는 차로 몇 시간이면 도착 가능하기 때문에 메릴랜드 주방위군이 가장 먼저 입성한 것입니다. 메릴랜드 주방위군 현장 지휘 책임자가 흑인 원스타 여성 장군이었던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지사는 방위군의 사령관 역할을 겸하기도 해 호건 주지사는 취임식 전에 워싱턴DC에 와서 의사당에 근무하는 주방위군을 격려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취임식에 대규모 환영사절단을 파견하는 게 정상이었을 텐데, 주방위군을 보내야 했던 호건 주지사도 기가 막혔을 것 같습니다.

● "의회 폭동을 선동한 가장 큰 책임은 트럼프에게 있다"

호건 주지사가 의회 폭동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던 건 미국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의회 폭동 사태의 책임론에 대해서 묻자 호건 주지사는 조금도 주저 없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회 폭동을 선동한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화당이 거의 트럼프 당이었던 시절부터 줄기차게 트럼프의 잘못을 지적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던 호건 주지사다운 발언이었습니다. 투표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는 게 240년 넘게 이어지던 미국의 전통인데 그게 이번에 위협받았다는 사실에 호건 주지사는 분노했습니다. 트럼프가 부정 선거라는 근거 없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부추긴 게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호건 주지사는 설사 의견이 달라도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호건 주지사가 탄핵 재판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초지일관 트럼프의 잘못된 행동에 목소리를 내왔던 게 공화당 내 분위기에 일정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트럼프가 사고를 쳤을 때 공화당에서 쥐죽은 듯 아무도 목소리를 못 낼 때 호건 주지사만 거의 유일하게 그의 잘못이 왜 문제인지 말하는 걸 여러 차례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트럼프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한물간 트럼프 진영과 공화당 내부의 권력 갈등도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는 아예 공화당을 박차고 나가서 자신의 독자 정당을 만들려고 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대치 전선이 공화당 내부에서도 펼쳐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 방위군 파견

● 바이든의 입각 제의?…"바이든과 전화 통화 자주 했다"

미국에서는 당이 달라도 장관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에도 공화당 소속의 게이츠 국방장관도 그랬습니다. 다른 당 소속 장관을 임명하는 건 초당적으로 일한다는 점에서 좋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이 당선인 시절에는 호건 주지사도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거론을 자주 했었습니다(현재는 국토안보부 장관은 라틴계 마요르카스로 지명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하마평 기사가 나올 때 임기가 아직 2년이나 남은 메릴랜드주지사가 바이든 정부의 장관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었습니다.

이번에 인터뷰하면서 장관 입각 제의가 있었던 게 사실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호건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을 부통령 시절부터 자주 봤던 사이라며, 당은 다르지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언급했습니다. 당선된 이후에도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던 것도 사실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장관 제안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코로나 백신 보급 등을 놓고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고, 대책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관계에 대해서도 얘기한 게 있냐고 물어보니 아직까지는 없다며 곧 논의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호건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던진 통합의 화두에 대해서 크게 환영했습니다.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이 너무나 분열되고 분노에 가득 차 있는데, 이제 사람들을 통합해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갈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그동안 당이 달라도 상식에 기초해 초당적인 대처를 하자고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국민 통합을 통한 문제 해결을 약속한 게 좋았다고 답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트럼프 시대의 동맹은 한마디로 돈으로 환산되는 관계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갖은 난장판을 만들며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조금이라도 더 갈취하려고 시도했던 것부터,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려는 일본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호의적인 티를 내던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보며 그런 생각이 더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바이든은 취임사부터 동맹의 가치 복원을 내세워서 인상적이었는데, 호건 주지사도 앞으로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히 낙관적이었습니다. 한국이 동맹으로 가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에서도 한미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리라 전망했습니다. 자신도 메릴랜드주지사로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도울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미국 정치권에 한국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할 준비가 돼 있는 호건 주지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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