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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금태섭,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

[그, 사람] 금태섭,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spring84@sbs.co.kr

작성 2021.01.23 08:29 수정 2021.01.25 18: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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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그, 사람] 금태섭,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
1. 형식은 탈당이지만 사실은 추방이었다. 공수처법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하고 재심을 요청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다섯 달 동안 결정을 미뤘다. 당 대표가 이해찬에서 이낙연으로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도부가 교체돼도 이렇다면 이 당은 희망이 없다고 봤다. 지난해 10월 탈당계를 냈다.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이 사람을 내치는 민주당 태도는 매정했다. 그래도 한 때 한솥밥을 먹은 사람인데 그를 향해 이죽거리고 냉소를 퍼부었다. '본인에게도 잘 되고 당에도 잘 된 일'이라는 정청래의 말은 적지 않은 민주당원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다. 사실 금태섭의 마음도 그 이전에 이미 민주당을 떠나 있었다.

-탈당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이해찬 대표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을 하죠. 언젠가 이해찬 대표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나는 눈이 나빠서 책을 못 봐' 이러시는 거예요. 대신 유튜브를 본다면서 김어준이 하는 유튜브는 다 봤다면서 김어준이 민주당을 위해 큰일을 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때 정말 실망했습니다. 사실은 그때 탈당할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김어준을 민주당의 브레인으로 생각하는 당 대표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안에서 고칠 수 없는 수준이다라는 느낌이 그 때 확 들었거든요."

그렇게 찬바람 부는 광야로 나섰다. 이런 처지가 되면 마음에 독기를 품기 마련인데 그의 표정이나 말은 그리 독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자신을 사실상 쫓아낸 이해찬 대표에 대해서도 그렇다. 비판은 하는데 사적인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를 평가해달라고 했더니 과거에 갇혀 있는 정부라고 규정했다. 격한 단어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밋밋했다. 그런데 그 말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싸하게 매운 말이다.

그사람
"기본적으로 이 정부는 참여정부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목적의 전부인 거 같아요. 참여정부 때 부동산 정책에서 대실패를 한 김수현 실장을 다시 쓰는 것도 그렇고 검찰의 주요 포스트에 참여정부 때 청와대 특감반장했던 사람들을 쓰는 것도 저는 그게 뭐하는 건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어젠다 세팅도 그렇구요. 친이로 구분되는 정치인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했는데 거기와 전쟁을 벌인 것도 저는 사감(私感)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민주당에 대한 충성심이 누구에 못지 않다고 했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당의 핵심 당론인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고, 조국 장관을 공격하는 그의 행동은 전형적인 내부 총질이었다. 민주당 이름을 빌려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민주당에서 오래 버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굳이 민주당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사람같기도 하다. 당장은 머리 둘 데 없어 허전하겠지만 그로서는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린 후련함도 없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일 텐데 집권 세력 안에서 그의 탈당을 불길한 징후로 읽는 사람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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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슬픈 연극을 통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정화를 맛본다. 그것이 비극을 통한 카타르시스 효과다. 그런데 금태섭이 주인공인 비극을 통해서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어렵다. 재선에 실패하고 당에서 사실상 쫓겨났으니 비극의 주인공인 것은 틀림없다. 비극의 절정은 금태섭이 국민의힘 의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였다. 마치 귀순 병사의 강연 같은 느낌이다. 비탄에 빠진 주인공의 모습을 바라는 관객들의 기대를 이 사람은 보기 좋게 배신한다. 그는 눈물 흘리지도 않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애써 호소하지도 않는다. 연기에 능한 사람이라면 눈물 한 바가지는 쏟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는 몇 번의 파안대소로 자신의 속내를 대신했다.

이 사람에게 눈물, 비통, 분노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3시간 정도 자신의 삶을 집중적으로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한 순간 눈에서 불꽃이 튀거나 눈자위가 촉촉해지는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그런 것을 끝내 보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차분했고 핏대를 세우거나 목청이 올라가는 일도 없었다. '굉장히'라는 말을 어조사 쓰듯 습관처럼 썼지만 감정을 과장하기는커녕 감정 표현 자체에 인색했다.

두 시간 만에 2만 개가 넘는 문자 폭탄을 받은 적이 있다. 2만 개의 주먹, 아니 2만 개의 칼을 맞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문자 폭탄 세례를 받아낸 휴대폰을 그가 보여줬다. 그 날 이후로 문자 수신 기능에 장애가 있다는데 고치는 게 어렵단다. 이 사람만큼이나 핸드폰도 내상이 깊은 것이다. 문자 폭탄을 받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자 자신의 느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가 검찰에 있을 때 한 선배가 TV 토론회에 나갔습니다. 상대방이 조국 교수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선배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 선배가 성격이 굉장히 강한 분인데 댓글을 보고 정말 의기소침해 하더라고요.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게 눈에 보였습니다."

댓글 공격을 대하는 이 사람의 태도는 조금 독특했다. 댓글 내용에 분노와 공포, 얼굴을 감춘 비겁한 공격자에 대한 혐오, 복수에 대한 욕구, 그 어떤 것도 표시하지 않았다. 법 전문가이니 법을 들어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도 한데 단 한번도 고소 고발을 한 적이 없다.

"그 댓글을 보고 화를 안 내는 이유는 댓글을 보내는 사람들의 목적은 여기서 옳다는 증명을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인해전술을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서는 절대 싸워서는 안되는 겁니다. 물론 화도 나고 이거를 뭔가 반박하거나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저는 그 책임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싸움을 부추기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낙연 대표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3. 그가 2006년 9월 한겨레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란 글을 실명으로 기고했다. 그는 이 글 한 편 만으로 기억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수사 기관에 가면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피의자가 수사에 협조할 의무는 없다, 모든 것을 변호사에게 맡기라는 요지였다. 지금 읽어봐도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고 이런 글을 써서 언론에 기고할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 새벽에 금태섭의 환하게 웃는 사진과 함께 실린 이 기고문을 본 검찰 수뇌부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된 행동이었다. 단 한 방으로 검찰이라는 막강한 조직에 균열을 내겠다는 1인 쿠데타이자 반란이었다.

"반란이라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다만 내가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건 발상의 전환이 될 만한 일을 벌이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조직에 균열을 하나 일으켜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거죠. 그렇게 하는 게 검찰 전체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금태섭의 검사 시절을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그를 조직의 1% 안에 드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기억했다. 글솜씨와 머리 좋은 것으로 검찰 내에서 유명했다. 금태섭 본인도 평검사들이 갈 수 있는 가장 핫한 자리에 있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검사였다. 검찰 역사상 가장 큰 행사였던 세계검사협회 서울총회를 실무적으로 총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지만 한 외국 검찰총장이 "현미경으로 찾아봐도 결점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을 만큼 행사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이례적으로 긴 3년 6개월 대검찰청 근무를 마치고 서울 중앙지검으로 배치되었을 때 그는 부부장 승진을 눈앞에 둔 상태였다. 그런 그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행동이 한순간의 충동이나 영웅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금태섭은 검사가 되면 한 5년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배우자. 그 동안은 비판하거나 따지지 말자. 그 뒤에 뭔가 일을 하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뒤에 뭔가 하자는 게 한겨레 기고문인 셈이다. 그의 행동은 적어도 10년 이상의 준비와 도모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기고문과 함께 실을 사진을 광화문 유명 스튜디오에 가서 찍을 만큼 그의 행동은 철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그는 검찰 수뇌부에서 어떻게 나올지,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까지 머리에 넣어 두고 있었다.

"대검에서 근무하면서 검찰 수뇌부의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잘 알고 있었죠. 이게 터지면 누구는 어떻게 발언하고 누구는 어떻게 발언할 것인지 다 예상했습니다. 아마 불쾌하더라도 계속 쓰게는 할 거다, 이걸 못 쓰게 막아 평검사 영웅 만들어주지는 않을 거다, 대신 인사에서 불이익을 줄 거다, 시골로 몇 번 돌리면서 물을 먹일 거다, 그러면 나는 시골 검사로 평범하게 살거나 이것으로 내 법조 인생은 끝나겠다 싶었습니다. 희생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것으로 이름도 얻고 정의의 사도가 되고 그런 생각은 없었습니다."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이 격노했다. 불과 두 달 전 정상명 총장은 유럽 출장에 금태섭을 수행원으로 데려갔다. 금태섭에 대한 신임이 깊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중간에 낀 임채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성욱 형사4부장만 죽을 맛이었다. 대검 수뇌부는 그에게 공개 반성문을 요구했다.

"저 때문에 고통 받는 조성욱 부장을 생각해서 그냥 대검이 작성해서 보내준 반성문을 올릴까도 고민했는데 그렇게 하면 제 인생이 달라질 정도로 심리적으로 안 좋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이건 안 쓰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라고 했어요. 조성욱 부장이 '그래, 네가 그리 생각하면 하지 마라' 그러더라고요."

10회로 예고했던 그의 기고문은 결국 1회로 끝났고 그것으로 그의 검사 인생도 끝났다. 글 한 편과 검사 인생을 바꾼 것이다. 한 검사의 돌출 행동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금태섭에게는 인생을 건 승부였다. 그의 말대로 실패한 기획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압박에 굽히지는 않았다. 이 사건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일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조직에 대한 애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말도 이때 나왔다.

이 사람이 지금 사용되고 있는 검찰 CI를 만든 주역이다. 검찰 마크는 대나무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인데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올곧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굽히지는 않는다는 검찰 마크가 왠지 그의 인생을 예고하는 거 같다.

그사람
4. 어떤 사람은 분노로, 어떤 사람은 욕망으로, 어떤 사람은 속죄를 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고 하는데 당신은 왜 정치를 하는지 물었다. 이 사회에 대한 죄책감에 가까운 책임감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지 못해서 정치를 한다고 했다. 이런 대답은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뒤에 이어진 답은 귀에 쏙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정치를 잘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적성에도 맞는다고 했다. 그가 뭘 잘한다고 말한 것은 정치가 유일했다. 정치를 잘 할 수 있으니 잘하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를 하겠다는 말이다.

"저는 소통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정치 지도자들이 앞에 나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지 받고 하는 거 말고...우리는 그게 안 되는데 저는 그 점에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안철수와 문재인을 예로 들어가며 그는 자신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안철수, 문재인 이런 분들이 나올 때마다 항상 나오는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학습능력이 너무 좋다,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다. 이런 어떻게 보면 우상화 같은 과정만 있으니까 우리 정치가 유권자를 대표하지 못하는 겁니다. 저는 그런 것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3선 정도를 하면 그 뒤에는 물러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긴 한데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은 그리 명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는 뚜렷하고 확실했다.

"우리나라처럼 의리를 중요시하는 문화는 없다고 봅니다. 친구가 잘못해도 같이 비를 맞아준다고 하면 좋아하는 그런 거...그러면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고 편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부정적인 의미의) 의리 문화를 깨는 정치인이 필요한 거 아닌가. 자유주의, 개인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치인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밝힐 예정이라고 했다. 왜 이 시점에 당신이어야 하느냐, 당신이 시장 되면 뭐가 달라지느냐고 물었는데 이 대목에서 그의 답은 다소 추상적이었다. 그의 추상적인 답을 나름 풀어서 이해하자면 이렇다.

이번 선거는 현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는 선거다.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중요한 선거다. 그렇다면 현 정부에서 가장 큰 핍박을 받은 내가 이 선거에 출마할 자격이 있는 거고, 내가 선거에서 당선되면 이 정부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나왔고 나를 찍어줄 것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려는 거다.

거의 모든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머리에 남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깃발을 들었는데 그 깃발 아래 모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이 사람 역시 이 깃발을 언제까지 들고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의 깃발에는 자유주의, 다원주의, 소통 같은 단어들이 새겨져 있다. 무슨 말인지, 그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데 그가 보여주는 청사진이 썩 선명한 것은 아니다.

5. 안철수, 조국, 금태섭은 어딘가 닮았다. 잘 배운 사람들이고 능력이 있고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돈 걱정이 없어 보이는 부자들이라는 것도 닮았다. 정치인 이전에 셀럽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공통점이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금태섭 삶을 이야기할 때 조국과 안철수는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차갑게 돌아섰지만 이 사람에게 안철수가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2012년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며 직장 때려 치고 자기 돈 써가며 신나게 일했지만 어느 순간 안철수의 '철수' 선언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2012년 안철수 진영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돌아본 <나는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는 책은 지금도 읽어볼 만하다. 일종의 반성문인데 여기에는 안철수라는 이름이 숱하게 나오지만 금태섭은 '나는 이렇게 해서 안철수에게 신뢰와 믿음 애정을 얻었다'라는 식의 표현을 단 한 군데에서도 하지 않는다. 그는 공평동 빌딩에 있던 안철수 캠프를 한사코 <진심캠프>라고 부른다. 안철수 개인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꿈꾸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임을 강조하려는 뜻이다. 자신이 안철수 측근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 책을 쓸 때는 이미 안철수와의 관계가 어긋난 시점이기도 하지만 이 생각은 그의 본심에 가까워 보인다.

"어떤 일의 성공을 위해서 누구를 돕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측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용어의 뉘앙스가 전근대적인 군신 관계를 연상시켰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언짢았다…측근으로 지칭되는 기사를 보고 화가 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중

안철수에 대한 비판을 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을 아꼈다. 욕할수록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안철수가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로 비판을 대신했다.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사람은 비슷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멀어지고 갈등이 깊어질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조국은 정치가 이대로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가 처음 찾아간 사람이었고, 자신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기도 했다. 검찰에 있을 때 여러 차례 일을 함께 했고 '현 정부 초기에만 하더라도 굉장히 친해서 여러가지 일을 서로 의논하던' 사이였다. 그가 편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조국 교수를 부부동반으로 자기 집에 초대한 적도 있을 만큼 허물 없는 사이였다. 이런 인연 때문에 조국 사태가 터졌을 때 그의 고민이 깊었다.

"사실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냥 조금 멋지게 폼 나게 고민하는 척하면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게 많았어요. 박주민 의원이 저희 앞에서 자기는 조국하고 특수 관계라서 뭘 못한다고 하기에 아니 나는 지도 교수인데 더 이상 특수 관계가 어딨냐…"

적어도 수십, 수백만 명의 조국 지지자들이 이를 갈며 그의 말을 들었고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조국 반대자들이 글자 획수까지 헤아리며 그의 질문에 귀 기울였다. 더 많은 국민들은 그의 말에서 복잡한 조국 사태의 본질을 찾으려 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조국 청문회를 하는 동안 재선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고 했다.

6.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누구 못지 않게 화를 낼 일이 많았을 텐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목청을 높이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몸싸움이 적지 않고 삿대질은 다반사인법사위에서 활약했지만 그가 이런 싸움에 엮이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오죽했으면 당의 한 선배 의원이 이런 말을 했을까. "금 의원도 가끔은 소리도 좀 지르고 그래. 한 번도 나서질 않네."

얼굴을 붉히는 일도 거의 없다. 화를 내는 데도 공과 사의 구별 원칙이 지켜져야 한단다.

"저는 공사 구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으로서 화를 내야 된다고 생각하면 화를 내지만 그냥 화가 난다 그러면 그거는 사적인 문제니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할 때 이 사람과 함께 팀을 꾸릴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민주당에 있을 때 '조-금-박-해'라는 말이 있었다. 당 내에서 소수 의견을 이야기하는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이 하나의 묶음으로 묶이는 것은 맞는데 이 사람들이 서로를 동지로 여기는지는 의문이다. 정치를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의 존재는 필수적인 것인데 금태섭에게는 그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당을 떠날 때 이 사람과 행동을 같이 한 사람이 없고 하다못해 지구당에서 이 사람을 따라 탈당을 선언한 사람도 없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제가 전화를 해서 다른 의원들에게 당을 나간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당에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그러면 전화하는 것 자체가 폐가 되겠더라고요…불확실한 상황에서 (친한 당원들에게) 광야로 같이 나가자고 그랬다가 혹시 실패하면 그 사람들한테 뭐가 되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지역구 경선에서 거의 무명이라 할 수 있는 강선우에게 참패했다. 어딘가 구멍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큰 구멍이 나 있었다는 이야기다. 공중에 붕 떠 있었다, 겉만 번드르르했지 속사정은 엉망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금태섭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금태섭이 아주 열심히 지역구를 챙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역구 관리가 엉망은 아니었다고 했다. 당무감사에서 전국에서 2위를 했을 만큼 지역구 관리도 제대로 했다는 말도 주변에서 했지만 경선에서 완패를 당한 만큼 그런 말은 변명 밖에 안 된다. 이 사람 나름대로 패인을 분석했을 텐데 결국 가슴보다는 머리로 정치를 하는 사람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물론 배신자로 규정된 이상 민주당 안에서 그 누구도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금태섭 과거 사진
7. 이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한다. 한마디로 욕심이 많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출신이니 능력을 갖추었고 아버지가 판사, 장인은 손자들에게 강남의 큰집을 물려준 재력가다.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다. 검사 출신에 국회의원을 거쳤으니 권력을 즐긴 적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권력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십자가가 있는 법이니 이 사람에게 아픈 부분이나 약한 부분이 없을 리 없겠으나 외형으로만 보면 이만한 스펙과 경력을 갖춘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사회에 아직 정치적 세력으로 자리잡지는 않았지만 이전 보수 세력과는 확연히 다른 계급이 있다. 이들은 좋은 부모를 만나 고학력의 스펙을 갖추고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에 종사한다. 재력이 탄탄하고 남의 평판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들이다. 서초동 법조 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된 법조계 인사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이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고 대한민국 최고 재벌도 이들 앞에서 쩔쩔 맨다. 요즘 시대에 귀족이란 표현은 안 어울리지만 이들은 '서초동 귀족'이라 불리기도 한다. 당신은 새로운 신흥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 아니냐고 물었다.

"제 친구들 중에도 진짜 거기 귀족들이 있는데 제가 서초동 귀족이라고 하면 그 친구들이 웃을 거 같습니다. 그 분들은 저보다 성적도 훨씬 뛰어나고 엘리트적이고 인성도 좋고 다 좋은데 저만큼 말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 분들 중에 정계에 진출해서 저보다 훨씬 칭찬 받은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저처럼 이야기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금태섭 과거 사진
1986년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는 이른바 386 세대의 느낌이 전혀 없다. 386세대와 언어가 다르고 정서를 공유하지도 않는 거 같다고 했더니 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이 대부분 운동권이었고 정치권에서 만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386세대라는 것이다. '386 세대'와 '엘리트 법조인'이라는 두 단어를 엮어 이 사람의 정체성을 물어보았다. 그의 이러저러한 답이 이어진 뒤에 이런 말이 나왔다. 이 말을 그는 가장 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게 많은 사람들이 주류다, 귀족스럽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조국 사태 때 과연 운동권 출신 중에서 누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가, 누가 성 소수자 축제에 매년 나갔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고 그거는 밖에서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저 나름대로는 굉장한 갈등과 희생이 있는 거죠."

7. 지난 2019년 1년 동안 한겨레신문에 격주로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분량이 원고지 27매 정도로 결코 짧은 글이 아닌데 이 사람은 마감시간을 놓치는 일 없이 2주에 한 번씩 모두 24회를 연재했다. 이 정도의 분량이라면 한 명이 전담해서 쓰기도 제법 빠듯한데 조국 사태,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바쁜 의정 활동 중에서 이 글을 썼다니 놀라울 뿐이다. 다른 사람이 써준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글쓰기라면 자타 공인의 실력자인 이 사람도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던 모양이다. 이만한 지면을 현역 의원에게 맡긴 언론사도 대단하고 그 넓은 지면을 메우면서도 야당의 항의가 없었다니 여야간 균형을 지킨 그의 능력과 노력도 놀랍다.

금태섭의 글은 몇 편만 읽어봐도 이 사람의 글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복문이 거의 없는 단문에 단락 나누기에 민감한 글이다. 글은 말하듯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디케의 눈>이라는 책은 지난 2007년 처음 나온 이후 지금까지 18쇄를 찍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잘 팔리는 책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낸 책이 6권인데 절판 된 책은 아직 없다고 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작가가 꿈이라는 이 사람 말은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 사람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사람
한남동 주택가 다소 좁은 골목길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공부 열심히 하는 연구자의 서재 같은 분위기였다. 의원회관에서 나오면서 많이 정리했는데 지금도 3천 권 정도의 책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 가운데 안 읽은 책도 많다고 했지만 장식용으로 꽂아 둔 책은 없어 보였다. 책이 재산이라고 생각한 아버지, 평생을 책과 함께 한 어머니 덕이겠는데 애독가이자 장서가이다.

"남이 어떤 책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그 책이 없으면 화가 나죠. 남들이 이야기하는 책들은 대부분 삽니다."

금태섭 스스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보냐-보수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따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특히 정치권에서 여야 간에 의미 있는 정책적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념을 지향하지 않으니 당신이 이론가로 보이지 않는 거 같다고 했더니 약간 내뱉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은 진보란다. 당신이 물으니 답을 하긴 하지만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 당신도 그 답을 정말 듣기 원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행동이 중요하지 말로 하는 진보가 뭐가 그리 대수냐는 모습이다.

8. 정치인도 아이돌 스타처럼 소비되는 시대다. 정치권에 등장한 이후 이 사람은 전형적인 정치권 아이돌 스타의 길을 걸어 왔다. 어느 순간 반짝하다가 빠르게 잊혀진 정치인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이 사람을 지도자 감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배부르고 등 따스운 삶이 지겨워 정치나 한 번 해볼까 하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보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는 죄책감에 가까울 정도로 우리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이 사람은 언제든지 '나는 이것 아니어도 할 일 많아'라고 말하며 툴툴 털고 일어설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본인이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남들이 몇 년에 걸쳐 했을 고생을 압축적으로 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굴곡이 적은 인생이다. 아니, 굴곡의 크기가 작게 보이는 인생이다. 낙선마저도 이 사람에게는 그리 큰 시련으로 보이지 않는다. 같은 성공을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극적으로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금태섭은 후자다. 그에게는 성공이 커 보이지 않고 실패도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바탕이 웅숭 깊기 때문이다. 재주에 가려서 잘 안 보여서 그렇지 이 사람의 바탕이 넓고 깊다.

금태섭 과거 사진
이 사람에게 질문을 핑계 삼아 훈수 놓듯 몇 마디 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됐다. 프로 기사에게 아마추어 3급쯤 되는 사람이 어설프게 훈수한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 다소 황당한 수준의 반란을 꾀한 사람, 여당에서 쓴 소리 하다가 쫓겨난 소장파 의원, 금수저로 태어난 재기 넘치는 강남 좌파 이런 정도로 쉽게 봐 넘길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한 일이 쉬워 보였다. 그가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비명을 지르지 않고, 분노를 폭발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말을 편하게 한다고 그의 삶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사람 쉽게 볼 일 아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야 될 사람이 이 사람만은 아닐 테지만 이 사람의 미래는 주목할 만하다.

(이 글의 인터뷰는 1월 19일 한남동 금태섭 사무실에서 양만희 논설위원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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