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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동물 괴롭히는 당신, 불행해질 겁니다

이보영│핀란드 살이 22년째. 세 아이의 엄마이자 작가.

"영혼의 치유를 위해 인류가 탄생하기 이전의 낙원 상태로 가장 손쉽게 되돌아가는 길은, 아직도 그 낙원 세계에 속해 있는 동물 '개'와 어울리는 것이다."
 

- 『인간, 개를 만나다』 중에서 -



지난해 말 핀란드 반려동물협회는 사람을 살려낸 영웅적 활동을 펼친 충견(忠犬)들을 선발해서 '올해의 영웅견'상을 수여했다. 벌써 20년 넘게 이어지는 연말 행사다. 비글을 14년 동안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 보호자로서 '올해의 영웅견' 기사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다. 특히 올해는 핀란드 공항에서 코로나 환자를 후각을 통해 가려낸 4마리의 코로나견에게 특별 영웅상이 주어졌다. 이 개들은 후각으로 암 환자를 가려내는 특수 훈련을 받던 중 코로나가 터지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들의 코로나 판별 능력은 놀랍게도 웬만한 장비를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photo by Jukka Patynen

'올해의 영웅견'에 오른 반려견들의 활약상도 또한 대단했다. 추운 겨울날 실종된 치매를 앓는 주인의 아버지를 극적으로 찾아낸 잡종견 안나, 기찻길 옆을 위험하게 배회하던 3세 실종 어린이를 이웃집 부부에게 찾아 준 벨기에 말리노이즈(Malinois) 종(種) 라파엘라, 창문이 갑자기 깨져 파편이 사방으로 날리기 직전 잠자던 주인을 극적으로 깨워 피신시킨 잡종견 나나, 화재를 조기에 발견하고 가족을 깨운 뒤 아이들이 구조될 때까지 그 앞에서 자신의 몸으로 불길을 막아낸 불도그 빌마, 잠을 자다가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진 주인아주머니의 긴급 상황을 자신의 몸을 침대 속으로 들이밀며 옆에서 자던 남편에게 알려 주인의 목숨을 구한 핀란드 스피츠종(種) 킬레까지.

미국의 한 저명한 언론인은 "평균적으로, 개가 사람보다 낫다." (The average dog is a nicer person than the average person)는 풍자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충직함만은 개가 인간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주인을 향한 개들의 사랑은 다행히 짝사랑은 아니다. 핀란드에서는 개를 '4개의 다리를 가진 친구' (핀란드어: nelijalkainen ystävä)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핀란드 반려동물 보호자는 친구를 넘어 거의 가족처럼 개를 대한다. 핀란드 반려동물협회가 '개를 너무 사람처럼 대하는 것도 개에게 좋지 않다'는 주의사항을 홈페이지에 적어 놓을 정도이다.

핀란드에 처음 도착했던 90년대 말, 어디에나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개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들 사이의 힘의 역학 관계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셰퍼드를 기르는 마당 넓은 멋진 단독주택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의 벽면이 신기하게도 개 사진으로만 다 채워져 있었다. 개 정면 사진, 개 측면 사진, 개 근접 사진 등, 그것도 모두 사진관에서 확대한 멋진 컬러 사진이었다. 아무리 반려동물 가족이라 해도 거실에 부부 결혼사진이나 갓 태어난 딸아이의 사진 아닌, 개 사진만 잔뜩 걸어 놓은 것이 사실 당시에는 꽤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족 구성원의 사진을 거실에 거는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말이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애완견'보다 '동반자' 혹은 '짝'이라는 의미를 가진 반려견(伴侶犬)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개의 지위가 격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반려견 수가 많아지는 만큼 유기견 수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혹자는 요즈음의 강아지 입양 붐에 대해 코로나가 풀리면 또 유기견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핀란드에서는 유기견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적은 거의 없다. 가족은 버리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유기견 문제 외에도 아직 빈틈이 많은 동물보호법도 계속 공론화되고 있다. 얼마 전 한국 언론에서 견주가 줄에 매달아 공중에 돌리는 쥐불놀이로 반려견을 학대한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다. 안타깝지만 한동안 격리 보호 조치됐던 반려견은 다시 그 주인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으론 학대당한 강아지를 격리 보호하더라도 견주가 반환을 요구하면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사유재산이어서 강제로 소유권을 뺏을 수 없다.

'쥐불놀이 학대' 주인 곁으로 결국 돌아간 반려견.

핀란드에서는 이런 동물 학대가 발생하면 사안에 따라 자기가 기르던 동물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동물 소유나 양육이 한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금지된다. 자격이 되는 사람만이 동물을 기르고 돌볼 자격이 있다는 것이 원칙이다.

요즘 핀란드에선 '원헬스(One Health)'라는 개념이 대세다. 사람의 건강-복지가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동물의 건강-복지와 밀접하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반려견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미용 시술(귀와 꼬리 변형 등)까지 모두 금지됐다. 심지어 핀란드 가축 농가에서는 돼지 꼬리조차 자르지 않는다.

동물이 받는 스트레스가 돌고 돌아
언젠가는 우리 인간을 역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물이 행복하면
인간도 더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 조사가 바탕이 된 탄탄한 기반을 가진 믿음이다. 이런 그들의 믿음에 나도 같이 손을 얹어본다.

#인-잇 #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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