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인-잇] 또 말실수를 해버렸다, 난 뭐가 문제일까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인-잇] 또 말실수를 해버렸다, 난 뭐가 문제일까
속상하다.

내가 회의 때 한 말이 이상하게 왜곡되어 내 귀에 다시 들어온다.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을까를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은 사례가 떠올랐다.

# 사례 1
거래처와 회의가 끝나고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주 접촉이 있는 분들이 아니어서 식사 분위기가 썰렁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합류한 한 분이 매우 유쾌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특이한 경험담, 업무 중의 에피소드, 시류를 풍자한 유머 등을 식사시간 내내 끊임없이 얘기를 했다. 말솜씨도 좋아서 듣다 보니 거기에 푹 빠져들었다. 나는 안도한 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보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분 너무 말이 많았다. 거의 두세 시간 동안 혼자서 끊임없이 얘기를 하니 나중에는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어쨌든 저렇게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끊을 수는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중 귀가 확 열리는 말이 들렸다. 내가 듣기에는 그쪽 회사 대외비인 것 같다. 저분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다(황급히 주워 담으려고는 했다). 사실 여부는 나중에 좀 더 따지더라도 이거… 우리 회사 입장에선 횡재다.

# 사례 2
친구에게 얼마 전 그 친구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A 직원으로 인한 소동을 전해 들었다. 경력직 A의 입 때문에 그 회사 간부 B가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린 이야기이다. A가 입사한 후 이런저런 자리에서 동료들에게 자기가 마치 B를 잘 알고 특별한 관계임을 대놓고 은근슬쩍 얘기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소문은 직원들에게 알음알음 다 펴졌고 이 상황에서 우연찮게 B가 A를 챙겨주는 것 같은 언행을 한 것이다(무슨 관계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서로 아는 사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일이 부풀려지고 덧붙여지면서 A가 B의 백으로 입사한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게 되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회사의 시스템상 B 때문에 A를 채용하기는 어렵다고는 하는데 뭐가 진실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A의 쓸데없는 말 때문에 본인도 B도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함은 누구나 다 아는데
나를 포함해 일부 사람들은 왜 이런 실언을 할까?


일단 말이 많아서이다. 나 같은 경우는 회의를 주관하는 일이 잦다 보니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안이 있을 때 특히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자신의 의사를, 열이 오른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게 되는데 이때 자칫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직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오해받을 수 있는 적절치 못한 말이 부지불식간 툭 튀어 나오게 된다. 바로 이 말실수로 인해 업무에 대한 나의 열정에 대한 평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로 주변에 소문이 나게 된다.

또 내가 말실수를 하는 이유는 내가 모든 것을 안다는 우월감 때문에 그렇다. 내가 상사이고 회사 생활도 더 많이 했다는 상대적 우월감은 직원들을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즉 직원들이 무엇을 말하기 전에 뻔한 얘기라고 말을 끊고 직원들이 어떤 애로사항을 말하려고 할 때도 마음속으로 '내가 다 이미 겪은 일이야' 하면서 상대의 감정(상태)을 함부로 예단한다. 이런 정신 상태에서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은 말들이 나오기 십상이다. 숟가락 옆에 젓가락이 있듯이 우월감은 항상 실언을 옆에 둔다.

실언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례 1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리드하려는 마음이 강한 사람은 말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미팅, 회식 혹은 강연회 등에서 자신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 주려다 보니 의욕이 과해지거나 감정이 격화되어 공개된 자리에서 하면 안 될 얘기 혹은 위험천만한 본인의 생각을 용감하게 내뱉기 마련이다. 이 무모한 용기 때문에 공개되면 안 될 영업 비밀, 내부정보 같은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사례 2에서 A는 왜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썼을까? 추정해보면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서 혹은 본인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일 것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피해의식 혹은 과한 과시욕 때문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는 건데 이것은 과거의 상처 혹은 현재의 불안감으로 인한 내면의 혼동스러운 심리가 작용해서 그렇다. 그 불안전한 심리가 자신을 드러내야 할 자리에서 불필요한 말을 하게 한 셈이다.

어쨌든 나의 경우나 사례 1, 2 경우의 공통점은 TOO MUCH TALK이다. 말을 많이 하면 실언을 하게 마련이다. 실언은 구설수(口舌數)를 불러온다. 구설수란 말을 잘못해서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을 말한다. 수(數)는 여기서는 '운수'라는 뜻이란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번 내뱉은 말도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군더더기 한 마디 말로 인해 상당 기간 여러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노자는 이천 년 전에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하게 된다.(다언삭궁 多言數窮) /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희언자연 希言自然)"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직장생활하면서 입과 혀를 쉬게는 할 수 없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게 이런 일 저런 일이 회사에서 펑펑 터지는데 어떻게 중간 관리자가 입을 다물고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필요하면 하루 종일이라도 말을 해야 한다. 단지 말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을 명심하자. 회의를 하기 전, 사람을 만나기 전 "TOO MUCH TALK → 우월감, 과시욕 혹은 피해의식 발동 → 감정 격화 → 말실수(구설수) → 곤란한 상황"이 됨을 말이다.

아, 실언을 줄이는 방법이 또 있다. 말도 습관이다.
평소에 거친 말이 아닌 좋은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 본 글과 함께 읽어 볼 '인-잇', 만나보세요.

[인-잇] 책임 회피, 그 얄팍한 생존의 기술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