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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쓰내치' 시대…폐기물 폭탄 맞은 땅 주인들

[취재파일] '내쓰내치' 시대…폐기물 폭탄 맞은 땅 주인들

박찬범 기자 cbcb@sbs.co.kr

작성 2021.01.18 10:36 수정 2021.01.18 10: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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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 내쓰내치!

'내돈내산'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 돈 주고 내가 산'의 줄임말입니다. 이 말은 제품 후기 글을 쓸 때 많이 사용됩니다. 주로 작성자의 솔직함을 강조할 때 씁니다. 내가 쓴 후기 글은 업체로부터 광고비를 받고 쓴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쓰레기는 어떨까요? 쓰레기도 '내쓰내치'입니다. '내 쓰레기, 내가 치운다'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쓰레기가 생기면 처리 비용이 발생합니다. 내가 쓰레기를 발생시켰다면, 내가 처리 비용을 내는 게 마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지불하고 산 종량제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지자체는 매립장과 소각장 등 관련 시설을 운영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불법 투기 폐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폐기물을 몰래 버렸다면, 그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고 처리 비용을 내도록 하는 게 당연한 수순입니다. 하지만 버린 사람 따로, 치워야 할 사람 따로 있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땅 임대해줬다가 1만 3천 톤 폐기물 '폭탄'

2016년 발생한 한 사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김형주 씨는 가족들과 함께 파주에 있는 땅을 공동 소유하고 있습니다. 해당 땅은 '잡종지'로 분류돼 있어 활용 가치가 낮습니다. 위치는 유동 인구가 적은 한적한 시골입니다.

김 씨 가족에게 한 수출업자가 접근했습니다. 본인이 수출업을 하는데, 물건을 잠시 보관해둘 땅이 필요하다며 임차해달라고 했습니다. 김 씨 가족은 별 의심 없이 땅을 임대해주었습니다.

3개월이 지나 마을 이장님으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빌려준 땅이 온갖 폐기물 천지가 됐다고 합니다. 김 씨 가족은 당시 빌려준 땅 근처에 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자주 이곳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냥 임차인이 잘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김 씨 가족이 2016년 10월 현장에 찾아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5m 높이의 각종 폐기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폐기물 불법 투기 일당

이런 피해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보고됐습니다. 수법은 동일합니다. '불법 투기' 일당은 점조직으로 운영됩니다.

이들 일당은 폐기물 처리업체로부터 폐기물을 넘겨받습니다. 그리고 폐기물을 다른 곳으로 옮길 운반책을 모집합니다. 이와 동시에 폐기물을 투기할 장소를 물색합니다. 주로 인적이 드문 농어촌 마을의 땅을 노립니다. 그리고 명의만을 빌려줄 바지사장을 영입합니다. 바지사장은 땅 주인에게 접근해 임대 계약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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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임대 계약이 성사되면 해당 땅에 장벽을 설치합니다.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밖에서 볼 수 없도록 만듭니다. 그런 다음 주로 새벽에 덤프트럭에 폐기물을 싣고 옵니다. 만약 땅 주인에게 들키면 폐기물 처리업자, 운반업자 등은 잠적합니다.

땅 주인이 계약 당사자인 바지사장을 잡아도 당장 해결 가능한 건 없습니다. 땅 주인이 이들을 신고하면, 폐기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폐기물을 처리하는 건 별도의 문제입니다.

● 땅 주인, 처리 비용 30억 원 떠안을 위기

땅 주인은 바지사장, 운반업자, 처리업자 등 몇 명이 잡히자 처음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버린 사람을 잡았으니까 이들이 다시 치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버린 폐기물은 4년이 넘도록 아직 방치돼 있습니다. 처리 비용이 얼마인지 견적을 내봤더니 3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김 씨 가족 땅에 폐기물을 버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만 13명입니다. 이들에게 폐기물을 넘긴 폐기물 처리업체는 5곳으로 추정됩니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는데, 왜 피해자인 김 씨 가족들이 폐기물 처리 비용을 떠안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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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시 "토지 소유주, 폐기물 전량 치워라"

김 씨 가족은 파주시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폐기물 전량을 치우라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김 씨 가족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버린 사람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김 씨 가족이 다 치우려면 최소 30억 원이 필요합니다.


● 사람 잡는 〈폐기물관리법 48조 1항 9호〉

파주시의 행정명령은 사실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습니다. 폐기물관리법 48조 1항 9호 때문입니다. 9호에는 지자체가 폐기물 처리 명령을 '토지 소유주'에게도 내릴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토지 소유주가 '부적정 폐기물'에 귀책 사유가 있든 없든 처리 명령 대상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 파주시는 왜 토지 소유주에게 명령을 내렸을까?

폐기물관리법 48조 1항 1~8호에는 폐기물을 버리거나 운반한 사람에게도 조치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파주시는 9호에 근거해 땅 주인에게 조치 명령을 내렸습니다. 토지 소유주에게 조치 명령을 내리는 게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폐기물을 불법 투기한 일당은 실형을 살고 있거나 잠적했습니다. 설령 주소지가 파악되고 연락이 된다고 해도 폐기물 처리를 이행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폐기물은 여러 업체가 가담해 함께 벌인 짓입니다. 그래서 한 업체에게 폐기물 전량을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도 애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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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가 불법 투기업체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불법 투기에 가담한 일부 업체에도 조치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예상대로 이들은 처리할 능력도 없고, 대부분이 처리할 의지도 없습니다.

결국 지자체 입장에서는 가장 만만한 토지 소유주를 고르게 됩니다. 토지 소유주를 상대로 폐기물 처리 조치 명령을 내리고, 이행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합니다. 지자체 예산으로 폐기물을 치운 뒤 토지 소유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합니다. 나중에는 재산 압류까지 가능합니다.

● 문 대통령 "불법 폐기물 연내 처리하라"…발등에 불 떨어진 환경부

불법 투기 폐기물 현장 중 하나인 경북 의성 '쓰레기산'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9년 4월, 전국에 쌓인 불법 폐기물을 연내에 모두 처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환경부는 대통령 지시에 폐기물 처리 속도를 올렸습니다. 각 지자체에 관내 폐기물을 조속히 처리하도록 요구했습니다.

환경부는 지난 2019년 2월 전수조사 결과 전국에 남은 불법 폐기물이 120.3만 톤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환경부는 이 가운데 113.9만 톤을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별도로 전수조사 이후 43.1만 톤이 추가 발생했고, 18.7만 톤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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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폐기물 처리 실적의 그림자…피해자에 전가된 처리 비용

지난해 11월 기준, 132.6만 톤을 치웠고, 29만 톤 정도가 남은 상황입니다.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치웠을까요? 버린 사람들이 다 치운 것일까요? 이 가운데 일부는 피해자인 땅 주인들이 치운 것입니다. 일부는 지자체가 예산으로 치우고, 땅 주인에게 구상권 청구를 앞두고 있는 경우입니다. 일부 땅 주인은 순식간에 수십 억 원의 빚더미를 떠안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 "폐기물관리법 48조 개정하자"

폐기물관리법 48조를 1항 9호를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토지 소유주에게 처리를 명령할 수 있는 부분을 손보자는 것입니다. 국회에서는 이 같은 취지로 폐기물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서범수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가 됐습니다.

'다만, 토지 사용을 허용한 용도와 다르게 토지가 사용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부적정처리폐기물의 발생에 대하여 토지 소유자의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는 제외한다'라는 문구를 넣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김 씨 일가족은 땅을 한 번 잘못 임대해줬다가 온갖 송사에 휘말렸습니다. 지금은 폐기물을 버린 이들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씨 가족은 또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파주시를 상대로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한 상황입니다. 다시는 김 씨 가족처럼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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