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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동 인권 대모 "정인이 위한 변호인 있었다면"

[취재파일] 아동 인권 대모 "정인이 위한 변호인 있었다면"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인터뷰

정반석 기자 jbs@sbs.co.kr

작성 2021.01.18 11:41 수정 2021.01.18 13: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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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아동 학대 사망사건을 다룬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변호사 정엽이 동생 살인범으로 몰린 11살 언니를 변호하고 있는 모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애가 애를 그랬다는 게 지금 말이 됩니까?" "애가 자백을 했잖아." (영화 '어린 의뢰인' 중)


지난 2013년 칠곡 아동 학대사건. 8살 소녀가 멍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발로 차니까 동생이 죽었다는 자백을 근거로 11살 언니를 살인범으로 지목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사 결과에 이명숙 변호사를 중심으로 165명의 여성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숨진 아이의 변호인단이 구성됐습니다. 변호인단은 끈질긴 사실 확인 끝에 부모가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는 언니의 증언을 이끌어냈고, 새어머니의 폭행으로 아이가 숨진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칠곡 사건 7년 이후 숨진 정인이에겐 여전히 변호인이 없습니다. 재판에서 가해자인 부모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정작 숨진 정인이를 위한 변호인은 없는 겁니다. 세 차례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지만, 정인이는 숨지기 전에도 변호인의 도움은 받지 못했습니다. 2014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국선변호인 제도가 도입됐지만, 부모가 아이의 변호인 신청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국선변호인이 선임되는 경우는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특히, 정인이처럼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숨졌는데 도움을 줄 유족이 없는 경우, 검사가 공익 차원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주지 않으면 변호인 선임이 불가능합니다.

▶ 학대 부모에겐 있고 숨진 정인이에겐 없다

칠곡, 울산 사건에서 학대로 숨진 아이들을 변호하고, 세월호와 도가니, 조두순 사건에서 피해자 편에 섰던 이명숙 변호사는, 별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형량을 높이자는 식의 논의만 반복되고, 피해 아동을 돕기 위한 인력과 예산, 시스템은 제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명숙 변호사

"요즘 인터뷰 잘 안 해요. 언론이 아동 학대사건 때마다 찾지만 이후 대안이 제대로 마련된 건 없고.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이슈가 되니까 며칠 만에 법 통과된 것도 웃겨요. 얼마나 졸속 입법이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지 알 수 있죠." (이명숙 변호사 |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칠곡 사건 이후 8년, 정인이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되짚어 보며 어렵사리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 "칠곡 아동 학대 사망사건, 피해자 변호인단 없었으면 영원히 묻혔을 것"

Q. 칠곡 아동 학대사건, 학대로 숨진 아이를 변호하게 된 계기는?

A. 숨진 아이의 고모가 저희에게 도움을 청해 한국여성변호사회 차원으로 공동변호인단을 만들어서 피해자를 위한 변호인으로 활동했어요. 당시 검찰도 별 관심이 없었고요, 법원은 아예 피해자 변호사가 필요 없다, 검사가 있는데 왜 필요하냐라고, 재판에 참여하지도 못하게 법정에서도 퇴정시켜버렸습니다. 경찰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새어머니가 아이를 사망할 정도로 구타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고요.

Q. 당시 피해자 변호인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A. 동생을 때려 사망했단 말만 믿고 언니가 살인죄로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서 사건이 끝나버린 상황이었고, 새어머니는 아이 사망과는 관계없는 평소 가벼운 학대행위에 대해서만 판결받기 직전이었습니다. 변호인단으로 합류해 기록을 검토하고 언니나 고모,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와중에 새어머니의 학대로 사망한 사실을 밝혀내 다시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새어머니의 추가 학대행위에 대해 검찰이 다시 수사해 별도로 재판을 받으면서 형이 높아졌습니다. 만약 피해자 변호인단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추가 학대행위를 밝혀내지 못하고 언니의 구타로 동생이 사망한 것으로 사건은 영원히 묻혀버렸을 겁니다.

Q. 학대로 숨진 아이를 위한 국선변호인, 왜 필요한가요?

A.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 피해자를 위해서 친인척이나 도와주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나 공익 차원에서 검사가 사망한 피해아동을 위해서 변호인을 선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동은 자신을 위해서 변호할 수도 없고요. 논리적으로 어떤 일을 당했었는지 주장하고 증명하는 것이 힘듭니다. 국선변호인이 수사기록 등을 함께 지켜보면서 빠진 게 없는지, 모순된 게 없는지, 사망의 경위가 어떻게 된 건지 충분히 변호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형사나 검사는 수많은 사건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요. 아동 범죄 특징을 잘 알고, 아동 심리를 잘 아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국선변호인이 적극 활용되어야 합니다.

● "억울한 제2, 제3의 정인이 없도록 학대 피해 아동 국선변호인 적극 활용해야"

Q. 정인이는 두 차례 내사종결, 한 차례 '혐의 없음'으로 송치되는 과정에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경찰은 '조사 전에' 국선변호인 선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피해 아동 또는 법정대리인에게 알려야 합니다.

A. 이미 사망하고 없는 피해 아동에게 변호사 선임할래라고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정인이를 위한 공익 차원의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도록 도왔더라면 수사 단계에서 좀 더 많은 학대 행위가 밝혀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국선변호인이 기록을 같이 보고 의견을 제출하고 그랬더라면 내사종결이나 불기소 의견 검찰 송치로 안 끝나고 아동 학대로 처벌받았을 수도 있죠. 재판도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얼만든지 국선변호인을 지정해서 정인이를 위한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정인이 사건은 경찰이 사망사건으로 연결될 것을 예견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신고가 반복되거나 아이가 사망에 이른 예외적인 경우에는 내규를 두어 국선변호인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Q. 2016년 인권위가 학대 피해 아동 국선변호인 의무화를 권고했고, 2017년 고 노회찬 의원과 박범계 의원이 의무화 법안을 발의했지만 지난해 폐기됐습니다. 추정 비용은 매년 10억~20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A. 지금도 어딘가에서 정말 억울한 제2, 제3의 정인이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지도 못하고 살아있는 가해자인 부모들의 변명으로 일관된 빙산의 일각뿐인 조사를 받고 빙산의 일각뿐인 재판을 받아 가벼운 형으로 끝나버리는 게 대부분입니다. 억울한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타나지 않게끔 국선변호인도 적극 활용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 아동 전담 공무원들이 좀 더 전문화되길 기대해봅니다. 다만, 모든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해 국선변호인 제도가 활용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한 아동, 어린 미취학 아동, 입양된 아동 같은 아이들에 대해서 검찰이 선정 기준을 만들어 국선변호인 제도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된다거나, 상습성이 엿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사망한 피해 아동을 위한 변호인 없이는 재판을 할 수 없도록 법이 만들어지면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2017년 노회찬, 박범계 의원 등이 발의한 국선변호인 의무화 법안에 대한 국회 비용 추계서. 모든 학대 피해 아동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경우 연평균 14억 정도가 추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 "뚝딱 만드는 법으론 아이들 계속 죽어나갈 것…제대로 분석부터 해야"

Q. 검찰이나 법원에선 국선변호인이 전문성이 낮다거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A. 지금도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국선변호인 제도는 있지만, 아직 아동 심리나 아동 학대 범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하고, 많은 정보를 주고, 광범위한 사건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아동을 위한 변호인 제도를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데, 과거 영국을 방문했을 때 성폭력이나 학대받은 아동을 위한 국선변호인만 100명이 넘었습니다.

Q. 7년 전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까지 냈는데, 여전히 되풀이되는 아동 학대 비극 막으려면?

A. 영국은 클림비 사건 이후 1년 이상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무엇이 문제인지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한 뒤 아동경찰청을 만들었어요. 우리도 그런 식의 대안이 아니라면, 순식간에 뚝딱 만드는 법으론 아이들이 계속 죽어나갈 거예요. 우린 잠깐 시간 내서 모여 회의한 뒤 보고서를 냈지만, 클림비 위원회는 수백 명이 모여 전업으로 1년 이상 그 일만 했을 거예요. 일단 제대로 분석부터 해야 합니다. 전문가와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야죠.

정인이 부모 첫 재판 법정 삽화. 숨진 정인이를 위한 변호인은 없었다.
※ 변호사들은 "유족을 통해 선임되는 게 불가능해 정인이를 변호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말합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법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숨졌는데 신청할 유족이 전혀 없는 경우 변호사를 선정하는 것은 실무상 어려움이 있다. 사건의 특수성과 실익 등을 고려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양천경찰서에 지난 12일 "세 차례 정인이 학대 의심 신고 당시 국선변호인 신청 관련 언제, 누구에게 통지했는지" 문의했으나 이후 답변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정인이를 위한 변호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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