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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던져진 트럼프 탄핵 주사위…권력 암투 휩싸인 워싱턴

[월드리포트] 던져진 트럼프 탄핵 주사위…권력 암투 휩싸인 워싱턴
● 10명의 공화당 반란표…공포에 질린 트럼프

미국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되리라고 모두 예상했지만, 공화당 표가 10표나 나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2019년 12월 말,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촉발됐던 1차 탄핵 표결 당시 공화당의 반란표는 전무했었습니다. 당시에는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가 표 단속을 엄청나게 해서 탄핵 철벽 수비를 했지만, 이번에는 사실상 의원들의 소신 투표를 방치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리즈 체니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공화당 하원의 넘버3 리즈 체니(체니 전 부통령의 딸)까지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을 하면서 공화당 내 다른 탄핵 찬성 의원들까지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체니의 반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회 폭동 당일 시위대를 자극하는 연설을 하면서, 체니의 이름을 거론하며 "체니 같은 의원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당시 체니 의원은 연설을 못 들었는데, 분기탱천한 아버지 체니 전 부통령의 전화를 받고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성난 시위대의 먹잇감으로 체니 의원을 던진 셈인데, 체니 의원이 결심을 한 게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리즈 체니는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의장 후보로도 거론될 정도로 당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하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후광으로 의원이 된 이른바 '트럼프 키즈'들의 막무가내식 옹호론도 있었지만, 1차 탄핵에 비하면 트럼프 옹호 발언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북한식 용비어천가를 하면 트럼프가 트위터로 칭찬하고,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트위터의 순환 고리가 있었는데, 이제 SNS를 못하니 트럼프 대통령도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도 폭력 사태에 대한 트럼프 책임론을 분명히 인정했습니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이 극좌 안티파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증거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가 즉각적으로 폭도들을 비난했어야 했다고 공개 비판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조사도 안 끝났는데 탄핵을 하는 게 나라를 더 분열시킬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트럼프와 임기 내내 동맹 관계였던 하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의 발언이었기 때문에 더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에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시위대는 폭력과 파괴행위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왜 갑자기 이 시간에 이걸 내나 했는데, 알고 보니 하원의 공화당 이탈표를 막기 위한 안간힘이었습니다. 임기 내내 트럼프 충성파로 활동하던 짐 조던 의원이 이 성명서를 본회의장에서 낭독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매카시가 하라는 대로 했으니, 탄핵 반대해줘'라고 간청하는 성명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던져진 탄핵 주사위는 거둬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뭐가 문제인지 선뜻 이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안이 복잡했지만, 의회 폭동 사태는 의원들이 몸소 당사자로 겪은 일이라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총과 플라스틱 수갑까지 들고 다니던 폭도들에 공화당 의원들도 납치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여당 의원들도 마냥 트럼프 옹호를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명은 직접 녹화한 동영상으로도 공개됐습니다. 프롬프터를 보면서 읽어 내려간 영상인데, 폭력과 파괴 행위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자신의 책임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저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트럼프 지지자 아니다'는 걸 강조하고 있었는데, 뒤집어 보면 폭도들이 안티파라고 우기는 음모론자들의 말을 또 그대로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럼프 연설은 원고나 프롬프터를 보고 하는 것과 즉흥 연설을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즉흥 연설에는 진심이 담겼지만, 원고를 보고하는 연설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당장 어제만 해도 텍사스 알라모 국경 장벽에 가기 전 기자들 문답을 즉석에서 받으면서 의회가 탄핵을 추진하면 국민적인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 도발적인 얘기를 쏟아냈습니다. 지지자들에게 '나 탄핵당하면 봉기하라'는 선동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장벽 앞에서는 탄핵이 바이든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프롬프터 보고하는 연설에는 시위대 폭력에 대한 비난 등 평소 트럼프가 거의 말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걸 보면, 백악관 참모 누군가가 원고를 만들고 그걸 발표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미국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워싱턴의 거대한 권력 암투…주목되는 '꺼삐딴 매코널'의 행보

트럼프 탄핵의 키는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이 거의 대부분 말로 다 드러나는 트럼프와 달리 매코널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입니다. 1942년생으로 1985년부터 상원 의원으로 활동한 노회한 정치 9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악관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면서도 어느 정권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은 극대화하는 소설 속 '꺼삐딴 리'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1차 탄핵 당시 매코널은 트럼프 구사대의 선봉대장이었습니다. 청문회 증인 합의도 제대로 안 해주는 식으로 민주당의 예봉을 시의 적절하게 꺾었습니다. 코로나 예산안도 특유의 협상술로 민주당이 지치게 만들어 결국 자기 의견을 관철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외부에 별로 드러나지도 않으면서 항상 막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입니다. 보수 성향의 판사를 2백 명 가까이 임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자신의 의원실 인턴을 했던 인물도 있었습니다. 경력이 너무 짧아 자격이 안 된다는 미국 변호사 협회의 반대 의견에도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매코널의 의사 결정은 공화당의 이익으로 포장된 자신의 이해관계가 최대한 반영될 거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매코널의 변심은 부인 일레인 차오(Elaine Chao) 교통부 장관의 사퇴를 보면서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차오 장관은 의회 폭동 사태에 대해 "충격적이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나를 깊이 당혹스럽게 만들었다"며 사퇴의 변을 남겼습니다. 사실 그녀는 난파선 트럼프 호에서 가장 먼저 구명정으로 뛰어내린 순발력 있는 장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임 결정은 공화당 권력 핵심인 매코널과 사전 상의 없이 했으리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사임하는 타이밍까지 남편의 조언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오는 사임 전까지는 트럼프와 임기를 함께한 코드가 맞는 장수 장관이었습니다. 부인이 내각 장관이 된 매코널과 여당의 화력 지원을 받는 트럼프 모두 이해관계가 맞는 그런 인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회한 매코널은 민심의 흐름을 보며 이제 더 이상 트럼프로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탄핵 사태 직후 Quinnipiac University가 조사한 트럼프 지지율은 3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정도로는 다음 대선의 얼굴로 내세우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매코널은 속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유력지에 이번 사태가 탄핵 사유에 해당된다는 점을 슬쩍슬쩍 흘리는 중입니다. 그러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탄핵안 논의는 바이든 취임 이후라고 못 박았습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보장해주겠다는 사인이었습니다. 시간을 벌어놓고 판단하겠다는 건데 역시 수가 높은 정치인다운 행동이었습니다. 일단 시간만 벌어도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이번 사안을 정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트럼프가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서 미 방송사 ABC는 가정을 전제로 셀프 사면을 거론했습니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규정에 얽매이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1차 탄핵 때 트럼프 수호신 역할을 했던 백악관 법률 고문 팻 시펄로니(Pat Cipollone)도 셀프 사면은 안 된다고 계속 뜯어말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면을 강행하면 사임할 거 같다는 게 ABC 백악관 출입기자 조나단 칼의 전망이기도 합니다. 지금 자신은 물론 아들, 딸까지 수사 선상에 올랐거나 오를 사람이고, 탄핵안 가결 직후 해고되기는 했지만 음모론을 앞장서 말했던 줄리아니도 사면을 기대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일각에서는 자진사퇴 이후 펜스가 사면해주는 것도 거론됩니다. 탄핵안이 하원에서 통과돼 셀프 사면을 못 한다고 하니, 임기를 며칠 남기고 순발력 있게 사임하고, 펜스 부통령을 잘 설득해 사면을 받는 방안을 말합니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지만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바이든과 사면을 협상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충신이었던 펜스를 설득하는 게 더 쉬워 보입니다.

이렇게 셀프 사면과 준셀프 사면은 실행될 경우 모두 엄청난 논란을 부를 게 뻔합니다. 매코널은 성질 급한 트럼프가 이렇게 자기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벌어주면서, 차기 정부에서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탄핵 논의를 굴려가며, 바이든이 원하는 일을 다 하지 못하게 힘을 빼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이 트럼프를 차기 대선에 출마 못하게 하자고 나오면 매코널 입장에서는 'Why not?'이라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의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확정하면서, 트럼프와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상황입니다. 관계가 서먹해진 트럼프보다는 참신하고 지지율에서 앞서는 사람을 내세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트럼프 탄핵 재판이 상원에서 무죄로 나오고, 트럼프는 자기 지지자들을 규합하면서 후일을 도모할 가능성도 여전히 큽니다. 상원에서 공화당 반란표가 17표가 나와야 탄핵 확정인데, 현재로서는 이 정도 찬성표를 얻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화당의 기류가 1차 탄핵 때와는 크게 변했다는 겁니다. 의회 폭동 사태에 대한 의원들의 분노 지수가 상당히 높아서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만 사안이 굴러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점을 트럼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탄핵안에 대해 사실상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면을 받아도 수사 자체를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사 돈 문제부터 개인적인 여러 추문이 줄줄이 수사대기 중입니다. 억지로 사면을 받으면 특검보다 무섭다는 뉴욕 남부검찰청은 더 세게 수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워낙 적이 많은 트럼프는 퇴임 이후 수사가 쉬울 거라는 미국 언론들의 전망도 많습니다.

01.15 김수형 취재파일용_스탠딩

● 요새처럼 변한 워싱턴…총기 휴대 시작한 주 방위군

워싱턴이 최근 초비상 사태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벌써 교통 통제가 너무 심해서 보통 때보다 출근 시간이 두 배가 걸립니다. 기자증을 보여줘서 경찰이 통제구간을 열어주면 짧은 구간은 역주행까지 해가며 사무실에 나가는 상황입니다. 그것도 오늘부터는 사무실 주차장까지 폐쇄해버린다고 합니다. 한번 차를 가지고 들어오면 취임식 때까지 절대 차를 못 뺀다고 사전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 특파원들이 많은 내셔널 프레스 빌딩 옆에도 쇠 울타리가 쳐진 상황입니다.(워싱턴 생활을 하면서 여기까지 다 쇠 울타리로 막아버리는 건 처음 봤습니다)

연방 의회에 가보니 주 방위군들이 2, 3미터에 한 명씩 의회를 에워싸는 방식으로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어제부터는 총기를 휴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엉뚱한 짓을 하면 벌집이 될 각오를 해야 하는 살벌한 분위기입니다. 주 방위군들이 의회 내부에서 군복을 입고 잠을 자는 모습까지 그대로 공개됐습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인데, 폭동을 준비하고 있는 세력에게 '군인들이 이렇게 많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발산하고 있습니다. 의회로 통하는 주요 도로는 덤프트럭이 다 막아버렸고, 도로에 주차된 경찰차도 어찌나 많은지 길 따라가면서 숫자를 세다가 포기할 정도입니다. 악에 받친 트럼프 지지자들도 이번 주 일요일 아예 무장하고 나오라는 메시지를 돌리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난다면 거의 교전 수준의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에게 맞서는 무모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없기를, 이번에는 없기를 바랍니다.

미 의회 난입 사건

지난번 의회 폭동 사태도 되돌아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사에서 발견된 폭탄(Pipe Bomb)은 타이머가 부착된 진짜였다고 합니다. 타이머에 문제가 있었는지 터지지는 않았는데, 실제 그런 폭발이 있었다면 대참사가 벌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당사 주변에 늦은 시간까지 얼쩡거렸으니 식은땀이 흐를 정도입니다. 난사가 가능한 자동소총에 실탄을 한가득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미수에 그친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미국 수사 기관들은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시위 참가자들을 모두 찾아내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단순히 의사당에 들어간 시위대도 상당한 액수의 벌금이라도 물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난다고 휴대폰 찍어서 증거를 SNS에 다 올려줬으니 수사 기관 입장에서는 인터넷만 뒤져도 기소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보가 빗발쳐서 10만 건 이상 들어왔다고 합니다. 낸시 펠로시 의장 방에 무단으로 들어가 책상에 구둣발을 올린 사람은 살상 무기 소지까지 드러나 징역 11년까지 가능한 범죄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사상 초유의 의회 폭동과 그에 대한 살벌한 응징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아무쪼록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과 함께 이런 험한 장면을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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