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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웃'이 문을 닫는다 (1)

[취재파일] '이웃'이 문을 닫는다 (1)

- 세월호 치유공간 '이웃' 이영하 대표 인터뷰

류란 기자 peacemaker@sbs.co.kr

작성 2021.01.13 09:01 수정 2021.01.17 13: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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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이웃이 문을 닫는다 (1)
기자의 말
: 지난해 말, 세월호 가족들의 치유공간 '이웃'이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로 송별회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알음알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이웃이 이렇게 조용히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쓸쓸하고 허무하기까지 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또 이런 공간이 나타날 수 있을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내용일지라도 기록해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일,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는 이웃에 들렀다. 이웃의 탄생과 끝을 모두 지켜본 이영하 대표를 만나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그 기록이다.

'이웃'이 문을 닫는다. 2014년 9월 문을 열었으니 6년 5개월 만이다.

이웃에 가면 끼니 때가 아니어도 밥 한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으면 금세 소반 위에 따뜻한 밥과 국, 정갈한 찬이 나온다. 내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밥은 그냥 나온다. 한 상 마칠 때까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밥을 먹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는 대신, 하던 일에 집중할 뿐이다. 누군가는 담소를 나누며 산처럼 쌓인 실 뭉텅이 옆에서 뜨개를 했고, 누군가는 주방에서 그릇을 정리하고 나물을 다듬었다.


식사를 마친 뒤엔 주방에 상을 가져다주면 그만이다. 가던 길을 다시 가도 좋고, 좀 더 머물러 있어도 된다. 낯 익은 사람이 보이면 옆자리에 앉아 두런두런 대화에 참여하고, 커피 한 잔 만들어 몇 시간이고 멍을 때리며 앉아 있기도 한다. 이웃에선 같이, 또 따로 시간을 보내는 게 가능했다. 모든 게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규칙 없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이웃을 찾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껴지는 이 강력하고 안전한 위로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근거리에서 나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낌새로, 기운으로 서로의 상태를 살피고 지지한다. 말 없이 건네진 밥 한 상엔 수많은 이들이 건네는 안부 인사가 담겨 있었다.

이영하/ 치유공간 '이웃' 대표 : 누구라도 오시면 늘 밥상을 차려요. 오래 하다 보니까 주로 어느 요일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알죠. 그 전엔 몇 사람이 오는지 막 신경이 곤두섰는데

기자 : 혹시 준비한 양이 부족하면 어떡하지.

이영하 대표 : 네, 다행히 저희 실장님이 그런 게 빠르셔요. 수요일은 밥을 좀더 많이 하고, 어느 어느 날은 얼마만큼 준비하면 된다. 뭐 정 없으면 누룽지라도 끓이면 되니까. 안면 있는 분들이 주로 오세요. 어머님들이 많이 오는 날은 스물 몇 명 이렇게 오시거든요. 고정 멤버는 한 10명 정도 되고, 나머지는 들쭉날쭉이에요. 사고 난 직후에 보고 통 못 봤는데 몇 년 만에 오신 어머님, 잘 오시다가 1년간 뜸했는데 다시 나오기 시작하는 어머님도 계세요. '아이고, 어떻게 오셨어요?' '오랜만이네요?' 이러면 '여기는 늘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나가다가 들어와봤다'고 하시거든요. 여기 닫으려고 하니 제일 걱정되는 게 가끔 오시는 유가족 엄마들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들르셨는데 이웃이 문 닫고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무슨 감정이 들겠어요. 혹여라도 소식 못 듣고 오는 분 있을까봐 걱정이 돼요.

몇 주 전부터 어머님들한테 연락 드려서 저희 문 닫는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 있어요. 반응은 "올 게 왔다", "많이 버텼다". 가족들은 예감하고 있었어요. 3년 전부터 "우리 송년회해요, 엄마들 오세요" 그러면 "이제 문 닫는 거야?" 이러세요. "아니 왜 문을 닫아요?" 하면 "다 모이라고 하는 게 쫑파티 하자는 건 줄 알았지". 저희나 가족들이나 날 받아 놓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조마조마 버티다 여기까지 왔어요.


이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데엔 특히 '생일 모임'이 계기가 됐다.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생전 생일이 되면 가족과 친구,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아이를 떠올리고 기억을 공유했다. 영화 '생일(2019, 감독: 이종언)'의 모티프가 된 자리이기도 했다.

[…] 영화의 정점인 생일 모임 장면은 '앎'의 모임이기도 하다. 실제로 안산의 '치유공간 이웃'에서 생일 모임을 한 이유가 그렇다. 당시 모임에 참여한 시인들은 희생 학생의 생전 이야기에 오래도록 귀 기울인 다음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를 써 생일잔치 때 공개했다. 장기간에 걸쳐 생일 모임을 준비한 공동체는 아이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된다. 몰랐던 걸 알게 되기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떠난 자식을 위해 편지를 써오거나 기억을 꺼내놓는 친구가 누구인지 눈여겨보면서 공동체와 연결된다. 순남처럼 자신의 감옥에 웅크리고 있던 부모들도 조금씩 도움을 받는다. 극중 대사처럼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수호는 눈치가 좀 없어서 친구네 집 음식을 바닥냈고,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날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양보한 뒤 다른 친구를 구하러 물속으로 들어갔다.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얘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각자 갖고 있던 기억을 털어놓고 앎으로써 애도를 출발시킨다. 나는 몰랐던 타인의 앎이 모이고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던 애도는 형태를 갖춘다.[1]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기자 : 최근에도 아이들 생일 모임을 챙겼나요?

이영하 대표 : 생일 모임은 이제 거의 하지 않아요. 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좀.

기자: 아직도 이런 것 하느냐 같은 시선.

이영하 대표 : 그런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들이 아이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세요. 언제나 가장 하고 싶은 게 아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주변 반응에 상처 받은 일이 많다 보니까요. 또, 생일 모임을 하면 친구들도 불렀는데 이젠 친구들을 부른다는 게 좀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기자 : 친구들이 대학 다니느라 도시를 떠나 있을 수도 있고요.

이영하 대표 : 미안한 것도 있고 두려운 것도 있고, 여러 가지 마음인 거죠. 그래서 3년 전부터는 엄마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마이 데이'라는 행사를 해 왔어요.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주인공이 돼서 이야기하는 거죠. 아이를 떠나 보내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얘기를 듣고 싶다, 그렇게 모셔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나 싶다가도 결국 아이 얘기가 나와요. 또 버티고 있는 자기 심정, 남겨진 가족 간의 이야기들이 나오죠. 어머님들이 처음엔 망설이는데 하고 나면 참 좋아하세요. 막연하게 짐작으로만 알던 유가족의 마음을 자세히 듣게 돼요. 동네 주민이나 자원활동가들, 그리고 이 어머님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 싶은 관련 기관 담당자들이 주로 오세요.


기자 : 일반화할 수 없지만 이 시점에 2021년, 엄마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친구들이 살아 있었다면 대학교 4학년쯤 됐겠네요.

이영하 대표 : 같다면 같고, 또 다르다면 다르고요. 하지만 예전만큼 어머님들 우는 모습을 많이 보지는 않죠.

기자 : 그래요.

이영하 대표 : 한 3년 정도까지는 밥 하다가 돌아보면 한 분이 울고 계시고, 또 잠깐 다른 데 갔다가 오면 또 한 분이 울고 계시고, 그랬어요. 지금도 우는 어머님이 간간이 있어요. 하지만 어느 날은 한 분도 안 우시는 날이 있어요. 한 사람이 울면 모두가 울게 되니까 서로 배려하느라 참기도 하세요. 울음이 터지면 그날은 일상 생활을 하기 어렵거든요. 다른 가족들이 내가 운 걸 알고 마음 쓸까 봐 걱정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 달라진 점은, 2~3년 전쯤부터는 늘 반복되던 이야기가 조금 멈췄다는 거예요. 항상 나오는 레퍼토리가 있거든요.

기자 : 아이에 대해서? 아이의 기억에 대해서?

이영하 대표 : 어머님들 대부분 검안소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아이가 처음 물에서 나왔을 때, 아이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그 장면, 아이를 찾기까지 애가 탔던 과정을 얘기하죠. 무슨 옷을 입었는지, 몸에 어떤 반점이 있는지를 얘기하고 확인하던 일, 전광판에 뭐가 뜰 때마다 내 아이인가 싶어서 쫓아갔던 일들. 그때 보았던 아이의 모습과 장례 과정을 무한 반복해서 말씀하세요. 느리게 장면이 흘러가는 영화처럼 아주 세밀하고 자세하게 얘기하거든요. 아이에게서 났던 냄새, 그때의 소리, 울부짖는 나를 잡아주던 손의 느낌, 까무룩 기절하던 순간의 전등 불빛까지 세밀하게 떠올리면서요. 거의 모든 엄마들이 그랬어요. 그래서 여기 자원활동가들은 다 외울 정도예요. 누구 어머님 아들은 언제, 또 누구 어머님 딸은 며칠 만에 나왔는지, 누구는 까무라치셨고. 뭐 그런 것들이요.

기자 :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보니 게워내야 했던 것이죠.

이영하 대표 : 계속 말해야만, 끊임없이 말해야만 숨이라도 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견딜 수 없던 그 순간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체육관에서 밤낮 아이가 발견되길 기다리며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잖아요. 체육관에서 한꺼번에 많은 엄마아빠들이 통곡하던 그 소리가 지금도 자꾸 떠올라 괴롭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열 번 넘게 말했어도 처음 하는 것처럼 똑같이 반복해서 말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봤어요. 한 엄마가 말하면, 그 다음 엄마가, 또 그 다음 엄마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요. 듣는 사람도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그걸 계속 듣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같이 울고.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한 동안은 테이프 늘어지겠다 싶을 정도로 똑같이 여러 번 듣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뜸해지더라고요. 서서히 조금씩. 이제는 간간이 나와요. 그래도 마이 데이 하면서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통은 그대로예요.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지낸 시간도 그만큼 길어진 거죠. 더 보고 싶고, 더 만지고 싶고.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잊어가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내 아픔에 동의하고 공감해 주는 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큰 쓸쓸함, 상실감 그런 게 자리하고 있죠.


기자 : 이웃이 문을 닫아도, 공공기관 같은 데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진행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한편으로는 성격이 많이 달라서. 이를 테면, 어머님들이 공공기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영하 대표 : 저는 공공기관이 앞으로 이웃이 해왔던 역할까지 해주길 바라요. 성격이 다르지만 그 기관들도 오랜 기간 함께해 온 곳이니 유가족의 마음을 잘 알 거예요. 물론 접근 방법이 많이 다르기는 하죠. 공공기관은 병원 모드니까요.

기자 : 뭔가 답을 줘야 할 것 같고.

이영하 대표 : 유가족을 환자, 치료의 대상자로 보니까요.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그 정점에는 의사가 있어요. 의사의 치료를 기본으로 나머지 프로그램들을 병행하는 거라 조금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케어를 받으면 나아져야 하는 문제, 이렇게 접근하는 거죠. 저희는 치료자가 없는 구조였어요. 너와 내가 같고, 내가 너보다 나을 거 없고.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가 기본 전제였어요. 할 수 있는 건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어주는 것. 그게 밥일 때도 있고, 뜨개를 같이 하는 거일 수도 있고.

함께 먹는 밥도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치유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에서도 저희처럼 밥을 먹어요. 그런데 거기선 밥을 먹기 전에 내 이름을 밝히고 서명을 해야 하는 거예요. 식수 인원에 들어가야 하고, 미리 얘기를 해 두지 않으면 밥을 못 먹을 수도 있고. 물질로서 '밥'을 먹는 행위는 같은데, 그게 정확히 같을 수 없죠. 구내식당 같은 데에서 먹는 것이랑 비슷할 느낌일 테니까요. 공공의 재원이 들어가니 행정적 절차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직원분들도 다행히 많이 계시고요.


기자 : 이웃에 오시는 엄마들이 뜨개를 꾸준히 하시게 된 배경이 있었나요.

이영하 대표 : 처음에 뜨개 선생님으로 오셨던 자매 분이 계세요. 와락(* 쌍용차 노동자들의 심리치유센터)에서 오래 봉사활동 하셨던 분들이에요. 와락도 뜨개 모임을 했거든요. 처음에 저희도 한 번 해보자 하면서 가볍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머님들이 그렇게 열광적으로 하실 줄은 몰랐어요. 밤낮으로 뜨는 거예요.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뭘까' 싶었어요.

사고 직후에는 유가족들이,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는 그런 상태였어요. 미칠 것 같이 불안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로 뜬 눈으로 밤을 새웠거든요. 그런 때에 뜨개를 잡으면 잠시라도 정신을 집중하고 멈출 수 있는 거예요. 뜨개가 묘한 것이 반복적인 단순 동작이지만, 몰입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라 그때만큼은 잠시 집중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촉감이 있는 실을 만지는 거라 아이를 만지고 싶은 마음을 뜨개로 대체하는 것도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뜨개 모임은 하루 종일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가 되기도 해요. 차 한 잔 두고는 그렇게 길게 얘기 못하지만 뜨개를 잡고 있으면 정말이지 하루 종일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거든요. 참사 이후에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는 분들도 있어요. 유가족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인들로부터 얻는 상처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서 같은 아픔 가지고 있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이게 되고, 서로 소식도 알게 되죠. 유가족으로 살며 겪었던 난처한 순간들, 괴로움에 대해 얘기하면서 서로들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알게 되고요. 뜨개 모임이 만남의 터미널 같은 역할을 했던 터라, 많이들 아쉬워 하세요. 이웃이 없어지면 앞으로는 어디서 만나지, 하면서요.


(2편에 계속)

※ 다음 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취재파일] '이웃'이 문을 닫는다 (2)
▶ [취재파일]'이웃'이 문을 닫는다 (3)

[1] <생일> 애도의 정서를 나누다, 씨네21, 송형국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2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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